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가 1862년에 그린 ‘삼등열차’
[매거진 esc] 남종영의 비행기 탐험
삼등열차의 어두운 객석에 한 가족이 앉아 있다. 젊은 엄마는 아기를 안은 채 어르는 데 정신이 없고, 노파는 퀭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노파의 손자로 보이는 소년은 지친 듯 쓰러져 잠을 잔다. 사람들은 엉겨 붙어 있지만 객석에 흐르는 것 우울한 침묵뿐이다. 그건 대도시의 이른 아침, 출근길 만원버스에 자욱하게 낀 안개 같은 정적과도 닮았다.
얼마 전 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을 봤다. 위 설명은 도미에가 1862년 그린 ‘삼등열차’다. ‘신문만평의 아버지’로 불리는 도미에는 자본주의 초기 서민의 생활상을 틈틈이 관찰해 여러 작품을 남겼다.
또 하나의 그림. 우아한 열차 안에는 단 두 쌍의 부부, 넷뿐이다. 지팡이를 든 남자는 창문으로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고, 나들이 복장을 한 여자는 신문을 읽는다. 옆의 부부도 우아한 모습이다. 여자는 고개를 젖히고 영화처럼 흘러가는 풍경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실크모자를 쓴 남자는 꼿꼿한 자세로 앉아 무언가를 생각한다. 이들 네 사람은 귀족인 듯 모두 하얀 장갑을 꼈다. 역시 오노레 도미에가 그린 이 작품의 제목은 ‘일등열차’다.
이 그림들이 그려진 1860년대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열차보다는 사륜마차가 대중적인 교통수단이었다. 서민들은 주로 걸었고, 아주 먼 거리일 때만 마차를 탔다. 지금의 고속버스쯤 되는 사륜 합승차인 ‘딜리전스’들은 여러 노선으로 지역과 지역을 연결했다.
딜리전스는 오늘날 작은 버스 크기 정도였다고 한다. 16명이 타는 이 합승마차는 두세 개의 칸막이로 객실을 나누었다. 객실마다 요금이 달랐고, 가장 싼 지붕 위의 3등실은 걷다 지친 서민들이 주로 이용했다. 일등실은 부르주아의 안락한 공간이었지만, 비바람에 젖는 삼등실은 서민들의 애환이 묻어난 곳이었다.
공간의 계급적 구분은 주거지뿐만 아니라 이렇게 교통수단에서도 나타난다. 강남과 강북으로 공간이 계급적으로 위계화돼 나타나듯 우등고속과 일반고속, 비행기의 좌석 구획은 도미에의 그림이 보여주는 역사적 전통을 따른다. 오노레 도미에가 대비시킨 두 그림을 본 순간, 즐겁기만 하던 비행여행이 낯설어졌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헐떡이는 거구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아마도 값싼 패스트푸드를 먹고 몸이 불었을지 모르는 그는, 19세기 중반 합승마차 지붕 위에 몸을 실은 파리의 노동자들처럼 괴로울 것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오노레 도미에가 그린 작품 ‘일등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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