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공항에 살았을까. 에이피 연합
[매거진 esc] 남종영의 비행기 탐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우울할 때면 공항버스나 기차를 타고 히스로 공항에 간다고 쓴 적이 있다. 히스로 공항 제2터미널의 전망대나 르네상스 호텔의 꼭대기 층에서 비행기가 끊임없이 뜨고 내리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여행 안내서 <론리 플래닛>을 만든 토니 휠러도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가 공항 라운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노하라 히로시는 공항에서 산 사람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그를 멕시코시티의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의 노숙자로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공항에 도착한 노하라는 석 달여를 비행기가 뜨고 지는 곳에서 살았다.
1967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공항 노숙을 하기 직전까지 일본에서 빌딩 청소부로 일했다고 한다. 노하라는 제1터미널의 푸드코트 주변에서 기거했다. 염소처럼 기른 수염, 빨간 물을 들인 머리보다 오랫동안 샤워를 하지 않아 풍기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그는 이내 눈에 띄었다. 공항 당국은 그가 공항 미관을 해친다며 일본대사관의 조사를 요청했으나, 그는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퇴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적법한 여섯 달짜리 관광비자가 있었다.
공항에는 이내 그의 소문이 퍼졌다. 음식점과 면세점 직원, 환경미화원들은 그에게 햄버거와 커피, 담요를 가져다줬다.(영화 <터미널>은 공항 식구들에게 이웃 사랑의 계명을 가르쳐준 듯하다.) 노하라의 이야기는 시내에 퍼졌고, 여러 텔레비전은 그를 찾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노하라의 사인을 받았고, 그는 관광객들과 얘기를 나누며 지루함을 덜었다. 노하라의 미디어 노출 횟수가 잦아지자 공항 패스트푸드점들은 그에게 자사의 로고가 붙은 셔츠와 머그까지 줬다고 한다. 하지만 노하라는 왜 멕시코시티 공항을 떠나지 않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오전, 노하라는 홀연히 베니토 후아레스 공항을 떠났다. 언론은 곧바로 추적 작업에 들어갔고 멕시코 일간지 <레포르마>는 노하라가 일본인 여성 오유키의 아파트로 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신문에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깔끔한 모습으로 아파트 철문 앞에 서 있는 노하라의 사진이 실렸다. 오유키는 “노하라를 진짜 침대에 자도록 하기 위해 초대했다”고 말했고, 노하라는 그가 갑자기 공항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4년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 빅터 나보스키는 자신의 조국 크로코지아에서 일어난 쿠데타 때문에 비자가 무효가 돼 뉴욕의 제이에프케이 공항에서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된 반면 노하라는 자발적인 공항 노숙자였다. 영화 <터미널> 덕택에 노하라가 스타가 된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가 왜 공항에 머물렀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그는 단순히 빅터 나보스키를 흉내 낸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를 붙잡은 다른 힘이 공항에 있었던 것일까.
공항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가 거기서 무국적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출발했으되 도착하지 않은 공간, 일상을 떠났으되 새로운 일상으로 편입되지 않은 공간. 공항은 그런 경계에 있는 곳이다. 노하라는 한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은 터미널 2”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