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인간 반전
삼성전자 디자이너에서 목제선박 제작자로 변신한 최준영씨
삼성전자 디자이너에서 목제선박 제작자로 변신한 최준영씨
전자제품만 놓고 씨름한 건 아니었다. 골프채와 러시아 이동식 주유소 같은 야릇한 상품도 디자인했다. 그러다 1998년 삼성 아트&디자인 인스티튜트(SADI)의 교수로 발령이 났다. 임원으로 승진해야 겨우 주어지는 개인 집무실도 배정받았다. 아직 인생의 결말을 내기에는 조금 섭섭한, 서른살 초반 무렵의 일이다. 그 방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책상 서랍을 쭉 빼내 안쪽에 ‘39’라는 숫자를 써넣는 것이었다. 39살이 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새 꿈을 향해 달려보리라.
최준영씨는 2005년, 38살에 사표를 내고 태평양을 건넜다. 2년 동안 미국 노스웨스트 선박학교에서 목조 선박 만드는 공부를 하고 돌아와 종로에 ‘올리버 선박’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드디어 배 만드는 목수의 길을 시작한 것이다. 카누부터 15m 크기의 요트까지 직접 제작, 판매하기 시작했다.
누구든 의문을 품을 만한 선택이다. 듬직한 통장을 예비해두지 않고서야 어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목수의 길을 선택할까. 더구나 바닷가에 철조망이 즐비한 대한민국에서 레저용 배를 만들어 팔겠다는 결심은 엉뚱한 발상이 분명하다. 세계 조선업계를 호령하는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에 취업해 배를 디자인하겠다는 속셈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배를 디자인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생물’처럼 아름다운 배를 직접 손으로 만들고, 그 배를 팔아 자신의 생명도 이어가고 싶었다. 5년차인 올해 손익분기점을 ‘드디어’ 넘어섰다. 그동안 줄어드는 통장잔고에 아르바이트 취직도 했다. 망해도 먹고살 ‘총알’은 없었다는 뜻이다.
지난 10일 그를 만나러 가는 국도 위에서 한 가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배를 만들어 먹고살겠다면서 강원도 산골짜기로 회사를 옮긴 속셈은 무엇일까. 배를 만들어 파는 올리버 선박은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 2년 정규 과정에 주말 과정까지 겸하는 올리버 선박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박학교라면 모름지기 바닷가에 터를 잡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바닷가에서 배를 만든다면 내 기분은 좋을 텐데 판매를 생각하면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니죠. 바닷가에 온 사람은 맛있는 거 먹고 배 만드는 거 구경은 해도 선뜻 ‘이거 하나 삽시다’ 하진 않아요. 망하지 않으려면 선박 회사는 도로변에 있어야죠. 자재도 받아야 하고 만든 배도 트레일러로 실어 가야 하고.”
“배를 볼 때 저는
물에 잠기는 선체 하부를 봐요
곡선미가 너무 아름다워요” 남이 잘 보지 않는 부분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건 그의 천성이다. 배만 해도 그렇다. 어릴 적 가족들이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길 때 자신은 항구를 어슬렁거리며 배 구경에 빠졌다. “배를 볼 때 저는 물에 잠기는 선체 하부를 봐요. 건져놓은 배, 수리하려고 꺼내놓은 배의 선저 부위를 보면 곡선미가 너무 아름다워요.” 배의 형태적 아름다움에 매혹된 기억이 결국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디자인을 업으로 삼기는 했지만 어릴 적부터 그는 디자인보다 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삼성을 그만둘 무렵에는 “어설픈 배 한 척 정도는 만들 수준”이 되었다. 샤워실을 탑재한 7.5m짜리 배를 주문하면 대략 8.5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들어가는 공정을 즐기는 이유는 전적으로 ‘나무’의 매력 때문이다. 그는 나무 깎는 일을 ‘야생마 길들이기’에 비유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힘을 기준으로, 나무는 가공하기 가장 적합한 소재예요. 팔은 조금 아프지만 결국 원하는 모양으로 말을 잘 들어요.” 취미를 업으로 바꿀 때는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전망과 (돈을 불러들이는) 전략도 있었을 것이다. 외모는 푸근한 선장 같고 목소리는 성악가처럼 그윽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기대 이상으로 치밀했다. 인생에 대한 계산은 무엇이었을까? 아웃도어 산업의 미래를 바다에서 발견한 것일까?
“우리는 바다에 나가서 논다고 할 때 어선을 빌려 나가지 않습니까? 차로 치면 가족들이 드라이브 가면서 용달차 부르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우리 아이들 세대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고, 그 시대를 제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의 전망은 계산이라기보다 일종의 철학이자 희망이다. 그가 보는 바다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다. 밭과 길, 운동장의 기능. 지금까지 우리는 바다를 먹을 거 길러내는 밭의 기능으로만 대했다. 이제 공 차고 노는 운동장으로서 바다를 바라봐도 좋지 않을까. 최준영씨는 “생업 전선이나 산업 현장일 뿐인 우리나라 바다의 일부를 운동장으로 용도변경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바다도 운동장으로 완벽하다고 봅니다. 우리 바다가 만약에 오프로드처럼 거칠고 황량하다면 거기에 적합한 놀이가 있는 거죠. 자유로에서 오프로드할 수는 없잖아요. 하와이에 치명적인 파도가 치는 곳으로 세계 서퍼들이 모여드는 걸 보세요.”
애초부터 취업할 의사가 없던 한 사람(교수)을 빼고, 그의 희망에 승선한 2기생까지 모두 조선회사에 취업했다. 3기생까지 11명의 제자를 양성했는데, 올 9월 4기생은 예정자만 벌써 10명이다. 지금까지 생산, 판매한 배는 50여척.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의지’라고 말한다.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외부의 신호를 기다리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의 다른 길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되는 건 스스로 끌어내는 의지밖에 없어요. 의지가 흔들리면 끝장인 거죠.”
그는 힘들어도 일단 ‘스윙’을 해보라고 권한다. 포볼을 기다려 진루하는 행운을 구하느니 스윙을 해서 1루타든 3루타든 치는 게 중요하다. 50대 후반에 은퇴냐 명퇴냐를 고민할 때, 일찍 스윙을 해본 사람은 조금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다. 그는 38살에 스윙을 날렸고, 한번의 스윙 덕분에 동기들과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홈런이냐 1루타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스윙’을 날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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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올리버 선박 대표. 황희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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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기는 선체 하부를 봐요
곡선미가 너무 아름다워요” 남이 잘 보지 않는 부분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건 그의 천성이다. 배만 해도 그렇다. 어릴 적 가족들이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길 때 자신은 항구를 어슬렁거리며 배 구경에 빠졌다. “배를 볼 때 저는 물에 잠기는 선체 하부를 봐요. 건져놓은 배, 수리하려고 꺼내놓은 배의 선저 부위를 보면 곡선미가 너무 아름다워요.” 배의 형태적 아름다움에 매혹된 기억이 결국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디자인을 업으로 삼기는 했지만 어릴 적부터 그는 디자인보다 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삼성을 그만둘 무렵에는 “어설픈 배 한 척 정도는 만들 수준”이 되었다. 샤워실을 탑재한 7.5m짜리 배를 주문하면 대략 8.5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들어가는 공정을 즐기는 이유는 전적으로 ‘나무’의 매력 때문이다. 그는 나무 깎는 일을 ‘야생마 길들이기’에 비유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힘을 기준으로, 나무는 가공하기 가장 적합한 소재예요. 팔은 조금 아프지만 결국 원하는 모양으로 말을 잘 들어요.” 취미를 업으로 바꿀 때는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전망과 (돈을 불러들이는) 전략도 있었을 것이다. 외모는 푸근한 선장 같고 목소리는 성악가처럼 그윽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기대 이상으로 치밀했다. 인생에 대한 계산은 무엇이었을까? 아웃도어 산업의 미래를 바다에서 발견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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