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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능은 결단을 빨리 내린다는 것”

등록 2012-12-05 17:07수정 2012-12-08 13:34

스파출라웍스 오가원 대표
스파출라웍스 오가원 대표
[매거진 esc] 인간 반전
영화 프로듀서에서 천연화장품 제조자로 변신한 스파출라웍스 오가원 대표

profile

오가원 1999~2003년 강제규필름, 미로비전 등에서 해외마케팅.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 <행복>(2007) 프로듀서. 2009년~ 스파출라웍스 대표.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장대에 개봉한 지 1~2년 이상 된 화장품을 잔뜩 늘어놓고 산다. 피부를 촉촉하게 만들어주고 주름을 개선시키는 고농도 영양성분이 어떻게 그리 오랫동안 신선도를 유지하는지 궁금증을 가져본 적은 없는지. 비결은 페녹시에탄올, 파라벤류, 트리에탄올아민 같은 첨가성분 덕분이다. 이들은 피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을 위해 존재한다. 오래도록 유통을 하기 위해 들어간 성분이니 피부에 좋을 리 없다.

먹거리에서 유기농 제품이 인기를 끌듯, 화장품 시장에서도 피부에 유해한 첨가물을 빼고 만든 천연화장품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파출라웍스는 천연화장품 브랜드 중에서도 ‘화장품 다이어트’라는 색다른 표어를 내걸고 승승장구 중이다. 유해성분을 뺀 것은 물론 기초화장품 5종 세트 같은 화장품 과잉 사용에도 시비를 걸고 나섰다. 기초화장품은 한두 개면 충분하다는 것이 오가원(37) 대표의 설명이다. 화장품에 제조날짜를 명기해 6개월 유효기간을 고수한다. 재구매율 90%, 작년 대비 매출 10배를 기록중이다. 광고 하나 없이 고객들의 입소문만으로 판매율을 높이고 있다.

대학시절 미술 전공
포기하고 방송작가로
프로듀서 하면서
인맥관리 등에 한계 느껴

스파출라웍스가 세상에 나온 건 3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가면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숨어 있다. 오가원 대표의 전직은 영화 프로듀서다. 이하 감독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 허진호 감독의 <행복>(2007) 등에서 프로듀서로 일했고, 강제규필름과 미로비전에서 해외마케팅을 담당했다. 10여년을 영화계에서 누빈 유능한 일꾼은 누가 손가락질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 영화계를 떠났다. ‘자괴감’ 때문이었다.

“29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프로듀서로 데뷔했으니 이렇게 평생 영화 일을 하면서 먹고살 거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뒤늦게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창의적인 건 그나마 잘하는데 프로듀서에게 필요한 인맥 관리나 기타 등등의 재능이 많이 부족했다.”

그의 재능은 사실 재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누구보다 빨리 결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직장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화여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막상 학교에 가보니 교육과정도, 과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웠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타고난 예술적 재능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학교 앞 비디오방에 드나들며 영화를 두루 섭렵하는 것으로 예술적 결핍감을 채워나갔다. “인간에 대한 고민은 그림보다 영화에 더 많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당시엔 영화가 너무 좋았다.”

대학 4학년 때 화가의 길을 깨끗이 포기하고 방송작가를 거쳐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렇게 10여년을 살아온 그가 영화 프로듀서 일을 접은 데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 능력이 화폐와 잘 교환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10년간 열심히 일했는데 계산을 해보니 번 것보다 빚진 게 더 많았다. 내가 딴짓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즐겁게 일하지만 가난했고, 영화계 친구들도 다 가난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지만 후유증은 컸다. “나름 탄탄대로를 걷던 인생에서 유일하게 치명적 실패를 경험한 셈이다. 더구나 30대 후반에 좋아하던 일을 그만두었으니 정말 막막했다.”

그는 무작정 친한 친구가 사는 도쿄로 떠났다. 계획은 따로 없었다. 계획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너무 심심했다. 처절하리만치 고요한 일본 주택가에서 책을 읽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요리책을 많이 사갔는데 그중 우연히 딸려온 책이 천연화장품 만드는 법에 관한 것이었다. 운명이었을까. 당시 그는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이란 책을 읽었고, 화장품 속에 피부에 안 좋은 성분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 도쿄 친구가 두피에 지루성 피부염을 앓고 있었는데 천연 재료를 사용해 크림도 만들고 마사지도 해주면서 피부염을 고쳐줬더니 ‘약으로도 안 되던데 신기한 재능을 가졌다’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올리브를 구입해 수분크림을 만들었다. 생크림 같은 모양인데 발라보니 촉촉하고 느낌이 좋았다. “알고 보니 유통되는 화장품은 맥도널드 햄버거 같은 거였다. 프리미엄 화장품은 레스토랑 햄버거 정도. 그런데 나는 집밥을 해먹은 거였다. 당연히 좋을 수밖에.”

일본 여행 중
직접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준 천연화장품
팔라는 권유로 여기까지

혼자 쓰기 아까워 주변에 한 주걱씩 퍼줬더니 호응이 대단했다. 매번 달라고 하기 미안한지 아예 장사를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한 가지 문제는 방부제를 안 넣으니 며칠만 지나면 화장품이 상한다는 것. 사실 집에서 화장품을 만드는 건 위험한 부분도 많다. 만드는 과정에서 각종 세균에 노출될 확률이 크다. 국내법은 허가 없이 화장품을 제조하고 나눠 쓰는 것을 철저히 금지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레시피 개발에 몰두하면서 전문가들을 두루 만났다. 그러던 중 천연 한방방부제를 개발한 연구원을 알게 됐다. 두 사람은 지향점이 비슷했고 그들의 의기투합으로 일주일이 아니라 최소한 6개월간 쓸 수 있는 천연화장품이 만들어졌다.

천연화장품 회사 대표로 인생 반전을 이룬 그의 얼굴은 유난히 촉촉하고 생기가 넘친다. 직접 만들어 쓰는 화장품 덕도 있지만, 새로 찾은 재능이 매 순간 화폐로 교환되는 재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천연화장품이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올해 초부터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다. 어릴 적부터 꾸미는 것을 좋아했던 그가 10여년을 돌고 돌아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을 찾은 셈이다. 지름길은 아니지만 후회는 없다. “영화를 통해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많이 얻었어요. 지금도 제 소통 창구는 바로 그들이죠.” 유일한 실패인 줄 알았는데, 나름 이유 있는 곁다리 인생이었다. 그걸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더 보기 좋다.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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