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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프렌치 시크가 없다

등록 2012-02-22 18:15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서구사회 선망 담은 정체불명의 지역 스타일 언제까지 따라할 텐가
서점에 갔다. 패션 코너에는 ‘프렌치 시크’(french chic)를 열쇳말로 삼은 책들이 즐비하다. 이른바 ‘스타일북’으로 불리는, 책보다는 화보에 가까운 책들이다. 프렌치 시크 뒤에 옷차림을 뜻하는 ‘룩’을 붙여 프렌치 시크 룩이 탄생했다. 프렌치 시크 룩, 도대체 어떻게 입는 거냐 물으신다면 답은 간단하다. 무심한 듯, 멋 안 부린 듯 편안한 플랫 슈즈에 빈티지 모자, 단순한 문양의 스카프 정도가 있으면 오케이! 프렌치 시크 스타일 따라잡기, 이렇게 쉬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소비자들 사이에 프렌치 시크 학습 열풍은 대단하다. 온갖 인터넷 쇼핑몰, 의류 브랜드는 자신들의 제품을 사서 입으면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도도한 멋을 풍기는 프렌치 시크 룩’을 완성할 수 있다고 내세운다.

그런데 프랑스에는 프렌치 시크가 없다. ‘프렌치 시크 룩’도 없다. 어찌된 일인가? 프랑스문화원에 전화를 걸었다. “‘시크’(chic)라는 말은 있어요. 그런데 프렌치 시크, 프랑스식으로 말하면 ‘시크 드 프랑세’(chic de francais)라는 말은 없거든요. ‘시크’라는 말은 20년도 더 전부터 쓰였고요. 아마도 프렌치 시크라는 말은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마케팅하려고 쓴 말이 아닐까 싶어요.” 신경아 홍보 담당관은 말했다.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지만 정작 영국에서 태어난 제인 버킨의 1970년대 모습(사진 왼쪽)과 최근 모습. 인터넷 갈무리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지만 정작 영국에서 태어난 제인 버킨의 1970년대 모습(사진 왼쪽)과 최근 모습. 인터넷 갈무리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시크하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굉장한 찬사죠. 고급스러운 멋을 내면서, 굉장히 지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사람을 가리킬 때 ‘일레 시크’(Il est chic)라고 해요.” 외형적인 패션 스타일보다는 사람의 품성을 가리키는 데 더 가까워 보인다.

‘프렌치 시크 따라잡기’가 어불성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행 스타일을 좇는 것 자체가 지탄받을 일은 아닐 터. 그러나 내면은 그대로인 채 겉모습만 따라잡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다. 보기에만 좋을 뿐, 향기와 맛은 없는 음식과도 같다. 국내의 많은 패셔니스타와 스타일리스트가 만들어내는 트렌드와 유행에 눈길 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렌치 시크에 앞서 ‘뉴요커 스타일’도 마찬가지 사례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30대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일’이었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스타일. 고가의 구두 브랜드 ‘마놀로 블라닉’으로 대표되는 화려하면서도 자유분방한 패션 스타일이 서점가와 온갖 매체를 휩쓸었다. 뉴욕에 사는 지인에게 뉴요커 스타일에 대해 물었다. “(일자리 구하느라) 면접할 회사 사이를 뛰어다닐 수 있는 운동화 정도가 필수겠네요.”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라고 하는 제인 버킨이 다음달 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다. 누구? 에르메스의 스테디셀러 ‘버킨백’의 뮤즈라고 하면 알까? 구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그 가방의 창조에 영감을 준 인물이다. 그의 옛 사진을 보니, “아, 진정 ‘시크’한 멋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무조건 비싸기만 한 아이템으로 휘두르며 멋을 내는 것은 “시크하다”고 하지 않는단다. 프렌치 시크의 최고급 아이템이 정작 ‘시크’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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