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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시락 혼자 먹고 싶지 않았다

등록 2013-01-23 18:40수정 2013-01-24 10:02

필그림 제공
필그림 제공
[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34살 남성, 김아무개씨. 그는 자신을 가꾸기 위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다양한 잡지를 읽고, 화장품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남성 피부 가꾸기 강의를 기회가 될 때마다 찾는다. 이런 그를 ‘그루밍족’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남들이 뭐라 부르건 상관없다. 그가 요사이 관심을 갖는 것은 장신구다. 액세서리 브랜드들이 내놓은 남성 제품 라인(사진)에 마음을 빼앗겼다. 백화점에 가면 여성을 위한 상품들 사이에서 곁다리로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남성 액세서리였다.

이제는 전용 매장도 생겼고, 무엇보다 여자친구를 위한 선물을 사러 왔겠거니 지레짐작하고 여성 상품부터 보여주던 점원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대충 고르고 싶지 않아. 작은 액세서리라도 나를 빛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여성들도 손톱, 발톱 색깔까지 신경쓰잖아.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 하는 욕구, 이제까지는 몰랐거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남성들도 여성 못지않아”라고 김씨는 말한다.

놀라운 건 김씨의 과거다. 2년 선배인 그를 처음 보았을 때가 떠오른다. 패션? 과에서 맞춘 티셔츠를 여러개 가져다가 사계절 돌려 입었다. 봄과 여름은 티셔츠 그대로, 가을과 겨울엔 겹쳐 입는 레이어드 스타일링 정도가 그의 패션의 다였다. 졸업한 지 수년 만이라고는 하지만, 무엇인가 결정적 계기가 있지 않고는 이런 변화는 있을 수 없다 여겼다.

도시락. 한겨레 박미향 기자
도시락. 한겨레 박미향 기자
그는 털어놓았다. “도시락 혼자 먹고 싶지 않았다. 그것뿐이야.” “무슨 이야기야? <짝>에라도 출연한 거야?” “<짝>이 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만 있으란 법 있냐? 34살 내가 처한 하루하루가 짝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렇다. 결혼 적령기의 그, 그는 스스로를 남자 ○호로 여긴다. 혼자 도시락을 먹고 싶지 않았다는 그의 스타일 변천사 이야기를 듣자니, 짠한 마음이 밀려온다. 대학 시절 그는 스타일은 빵점이었지만, 인간성은 100점에 가까웠다. 그러나 인간성보다 인물 좋은 사람이 더 대접받는 세상에서 그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변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몸매, 피부 관리부터 패션까지 변화시켰다. 돈과 시간은 들었지만, 효과는 더 컸다. 도시락을 혼자 먹지 않아도 됐을 뿐 아니라, 자신감이 생겼다. 이젠 때로 혼자 도시락을 먹더라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남성이 스스로를 가꾸는 것은 이제 눈을 흘겨볼 일이 아니다. 반대로, 꾸미지 않는 것을 두고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다. 기업들 입장에선 다르다. 꾸미지 않는 남성을 ‘능력 없는 사람’으로 몰아간다. 여성 소비자 시장에서 한계를 느끼는 기업들은 새로운 먹을거리의 등장에 만세를 부른다.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성장세에 있는 남성 패션 및 화장품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과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반짝인다는 뜻의 ‘블링블링’이라는 수식어는 더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블링블링한 남성의 탄생에 관련 기업들은 손뼉을 친다. 하지만 그만큼 남성 소비자들도 꼼꼼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무조건 ‘남성 전용’이라는 라벨을 붙였다고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이야기했다. “이제, 남성 화장품은 잘 못 쓰겠더라. 이제까지 내가 왜 그런 화장품을 썼는지 화가 날 정도였다고!”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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