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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병신체’ 먼 곳에 있지 않네

등록 2013-03-06 18:54

이정연 기자
이정연 기자
[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삼일절 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킨 글이 있다. 패션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홍기씨의 글이다. 그는 ‘보그병신체에 대한 단상-우리 시대의 패션 언어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패션잡지를 비롯한 매체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패션 언어’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적하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었다.

그가 글에 소개했듯이 ‘보그병신체’는 새로운 용어가 아니라 수년 전부터 오르내린 말이다. ‘메탈 소재의 볼드한 네클리스는 매니시하면서도 모던한 스타일의 아이콘이다.’ 이 문장은 실제 잡지 <보그>에 실린 문장은 아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패션 용어를 늘어놓고 조사를 넣어 완성해 본 예문이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이렇다. ‘금속 소재의 굵은 목걸이는 남성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차림새의 표본이다’ 정도가 된다. 김홍기씨는 이러한 국적불명의 패션 언어에 걱정하면서,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글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퍼나르거나 댓글을 달았다.

이젠 패션잡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케이블방송에서 만드는 패션 관련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정보전달 프로그램의 어법도 패션잡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패션에 대한 관심이 일상화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 패션 정보를 온라인에 올려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바라는 블로거들의 글을 봐도 마찬가지이다.

고백하건대, 패션계 종사자 사이에서의 대화나 인터뷰를 앞둔 시간이면 늘 긴장되곤 했다. ‘그들의 언어’에 다가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적불명의 패션 언어를 입으로 글로 쓰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기에는 글러버린 것 같아 초조함을 느꼈던 때가 더 많았다. 패션을 담당한 지 2년 다 되었는데도, 그 마음은 여전히 바뀌질 않았다. 독자에게 최신의 정보를 소개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그 언어와 멀어질수록 왠지 최신 경향과도 멀어지는 듯했다. 쏟아지는 패션 관련 보도자료를 전달하는 전자우편의 제목과 내용에도 보그병신체의 글들이 빼곡하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의 언어’에 비판할 지점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그들만의 언어’를 쓰지 못하는 초조함이 앞섰다는 점에서 보면 그렇다. 비판에 동조하고, 그 지점을 실제로 바꾸기 위해서 행동하지 않는 이상 패션 언어의 순화 또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변화는 머나먼 미래가 될 것이다. 그 행동을 패션업계 종사자에게만 강요할 일은 아니다.

그들만의 패션 언어가 아닌, 우리 시대의 패션 언어를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특정 매체의 이름과 장애인 비하 표현이 들어간 ‘보그병신체’라는 표현부터 먼저 바꿔야겠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도 글에 밝혔지만, 외계 패션 언어는 꼭 이 매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패션잡지의 대명사의 멍에일 뿐.

그나저나 지난주 가족과 함께 나섰던 쇼핑에서 내뱉었던 말들이 맴돈다. “이건 핏이 좀 루즈한 것 같아. 컬러는 트렌디한 것보다는 클래식한 게 좋지 않을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평소 쓰는 말이다. 언행일치, 제일 어려운 일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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