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SPA 브랜드 전성시대와 윤리적 패션은 행복하게 협업할 수 있을까
에스피에이(SPA·제조 유통 일괄형) 브랜드의 전성시대. 새로 생긴 쇼핑몰에 3대 에스피에이 브랜드(유니클로, 자라, 에이치앤엠)가 없으면 구색이 다 갖춰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까지 주는 요즘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가로수길 역시 거대 쇼핑몰로 변하는 중이다. 국내외 에스피에이 브랜드의 전쟁터다. 에스피에이 브랜드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다. 패션기업의 운영 형태, 시스템을 일컫는 것일 뿐 패션 스타일을 일컫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에스피에이 브랜드의 또다른 별명은 ‘패스트패션’이다. 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빠르게 충족시킬 수 있는, 마치 ‘패스트푸드’와도 같은 그런 의류상품이라는 데서 그 별명은 지어졌다.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을 저렴한 값에 살 수 있다는 매력에 국내 소비자들은 푹 빠져 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게 친환경 패션, 윤리적 패션이다. 옷감을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고, 노동자에게 공정한 대가를 지불해 만드는 옷을 입자고들 한다. 스텔라 매카트니와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의 친환경 패션에 대한 동조로 조금씩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들을 ‘그린 디자이너’라 불렀다. 그리고 이런 옷을 입겠다고 선언한 유명인을 ‘그린 패셔니스타’라 칭송한다.
“좀 웃기지 않아? 윤리적 패션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에스피에이 브랜드와 손잡고 옷을 만들었잖아.” 패션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그냥 일반 회사원의 삶을 살면서 패션계에 대한 곁눈질을 멈추지 않던 친구 양아무개는 에이치앤엠 매장을 함께 돌다 스텔라 매카트니에 대해 한마디 툭 던졌다. 지난해 윤리적 패션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그의 친환경 패션에 대한 행보를 칭송해 마지않던 나로서는 뭔가 한 대 얻어맞은 느낌.
그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2005년이야 그게. 에이치앤엠이랑 컬래버레이션(협력) 라인을 내놓았지.” 아니, 에스피에이 브랜드와 손잡은 게 무슨 ‘반환경적’ 행동이란 말인가? 양아무개의 설명으로는 반환경적 행동이 맞다. 에스피에이 브랜드의 별명인 패스트패션. 패스트패션은 ‘정크패션’을 불러온다는 이야기였다. 정크패션을 입는다고 몸이 나빠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구의 몸이 나빠지는 데 일조하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싸다고 무작정 많이 산 옷들을 다 입기나 하니? 결국엔 몇해 지나 입지도 못하고 쓰레기통행일 것 아니야!”라는 무시할 수 없는 질타.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가 에스피에이 브랜드를 표방하며 내건 ‘이것은 패스트패션이 아니다’라는 캠페인 문구가 어딘가 어색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물론 에스피에이 브랜드의 옷이 모두 정크패션의 주범은 아니다. 꼭 필요한 옷을 합리적인 값에 사고 또 오래 입으면 된다. 옷에 그런 의지가 담겨 있을 리 만무하다. 옷을 입는 당사자의 의지가 관건이다. 국내에 소개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에스피에이 브랜드의 역사만도 50년이 훌쩍 넘었다. 어쩌면 다행인 건 국내에서 에스피에이 브랜드와 윤리적·친환경 패션에 대한 관심이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것은 나와 당신의 실천에 달렸지만.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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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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