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빚 수렁에서 빠져나와 재무설계사로 성공한 박미정씨
[매거진 esc] 인간 반전
굿바이 가계부 굿바이 신용불량
카드빚 수렁에서 빠져나와 재무설계사로 성공한 박미정씨
굿바이 가계부 굿바이 신용불량
카드빚 수렁에서 빠져나와 재무설계사로 성공한 박미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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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광풍과 함께
늘어난 카드빚 30대 초반 억대 연봉자였던 박미정(38)씨는 ‘1000만원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설파중이다. 지속가능한 행복의 자산은 현금화 가능한 1000만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의 직업은 재무설계사다. 상담이든 강의든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서로가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는 점점 맑아지며 리듬을 타고, 듣는 이는 한바탕 굿을 치르듯 자기 머릿속을 상대로 돈세탁에 젖어든다. 돈을 두려워하게 되는 동시에 돈을 다스리려는 자신감이 생긴다. 청중이 많아질수록 마이크를 쥔 손이 흥겨워진다. 지난달 23일 홍대 앞에서 만난 박씨는 ‘돈문제 전도사’다. 뜻밖에도 꽤 오랜 기간 그의 신용등급은 8등급이었다. 26살에 시작된 카드빚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데 7년이 걸렸다.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6살 때 그는 벤처기업 팀장이었다.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코스닥 상장에 올인했다. 외국계은행에서 발급해준 프리미엄 카드로 품위를 유지하며 대박을 위한 야근을 이어갔다. 상장이 지연되면서 석달 동안 월급이 밀리자 카드빚이 1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회사가 망했다. 리볼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착시 속에 빚을 키워 나갔다. 결제대금의 5%만 내고 결제를 유예받아 나갔다. 나중에 보니 리볼빙의 이자는 25%로 카드빚 원금이 증폭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다가 수원의 복합쇼핑몰에 있는 개인 소유 극장의 점장을 맡게 됐다. 극장을 성공리에 개관시키고 대기업의 멀티플렉스에 좋은 가격에 매각한다는 계획이었다. 장밋빛 미래에 대한 대가는 부정확한 수입이었다. 오피스텔 임대료와 점장 품위유지비용은 현실이었다. 카드빚이 줄어들 리 없었다. 극장은 실패했다. 그에게도 한방은 있었다. 2006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펀드 등을 끼워서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미래에셋생명에서 일을 시작해 연봉 1억원을 훌쩍 넘겼다. 오래 묵힌 카드빚을 드디어 청산했다. 펀드 광풍의 시대였다. 펀드라는 말만 꺼내면 다들 눈을 반짝이니 영업이 너무 쉬웠다. 옆을 돌아보면 연봉 5억원 동료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팀원 중 한명이 돈관리를 잘못해 가정이 깨질 지경이라며 하소연해왔다. 급한 대로 영업하는 데 쓰라며 카드 하나를 빌려줬다. 새로운 카드빚의 시작이었다. 후에 채권추심 쪽에서 연락을 받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은 엉뚱한 데서 찾아왔다. 변액유니버설상품에 가입한 고객 한명이 갑자기 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다. 그 고객은 돈을 거의 돌려받지 못하는 것에 항의하기는커녕 이 문제로 영업자가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니냐며 거꾸로 걱정해줬다. 자기 돈을 잃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며 곤혹스러워하는데 지점장이 그를 불렀다. 3개월 만의 해지자로 지점이 받는 불이익 등을 이야기하며 가서 어떻게든 유지시키고 오라는 거였다. “눈에 씌워져 있던 고글이 확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며 일한 것이 얼마나 나 중심적이었던 것인지.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 등을 되찾아줄 곳을 찾기 시작했다.” “10억원의 자산이
나를 지켜준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 사회적기업 에듀머니가 눈에 띄었다. 2008년 무작정 찾아가 일을 달라고 했다. 월급을 받기 전에 돈을 내고 받은 교육의 두번째 시간을 마치고 모든 카드를 잘랐다. “‘200만원 버는 사람이 카드를 300, 400씩 써요. 제정신이 아니죠?’ 하는데 그게 나였다. 남의 문제를 보니 내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상황논리만 갖고 돈을 대했고, 위에서 숲을 볼 줄 몰랐다. 카드도 점진적으로 없애야 하는데 성격상 한번에 없앴더니 엄청 고생을 해야 했지만 결국 해냈다.” 수입의 테두리 안에서 지출 규모를 정해놓고 현금과 체크카드로 지내니 안정과 평화가 찾아왔다. “자기가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 알면 대부분의 문제가 풀린다. 200만원을 쓰든 300만원을 쓰든 얼마를 쓰고 살면 되는지 의외로 잘 모른다. 나는 100만원 정도 쓰는 걸로 맞추면서 회계 개념이 생기니까 거짓말처럼 맘이 평화로워졌다.” 그의 원칙 중에 ‘굿바이~ 가계부’란 표현이 있다. 결산 중심의 가계부 대신 예산을 세우는 게 먼저라는 뜻이다. “가계부는 지출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한다. 많이 썼다, 또 많이 썼다는 식의 괴로운 고해성사의 연속이다. 소비에 대한 왜곡 현상이다. 예산 중심으로 바꿔 문화소비가 좋은 사람은 문화 쪽에 배분을 더 하는 식의 결정이 필요하다. 이게 생각보다 결과가 좋다.” 예·결산을 세워 사는 것이 스트레스라면? 그냥 더 많이 벌고 맘껏 지르면서 욕망을 불태우며 사는 방법이 꼭 나쁠까? “그 욕망이 진짜인지의 문제가 있다. 내 얘기를 하면, 보험 영업 하던 시절에 코타키나발루의 휴양지를 너무 가고 싶었다. 특히 샹그릴라 호텔! 그런데 회사에서 단체로 간다는 거였다. 좋아서 잠이 안 오더라. 가자마자 섬을 다 뒤지고 다니고 음식은 죄다 먹어보고. 그렇게 딱 이틀을 지내니까 큰 의미가 없더라. 내가 정말 원했던 곳에 가보니까 알게 됐다. 내 욕망이 가짜였다는 걸.” 소비에도 치료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러려면 자신의 욕망이나 상처구조를 직시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데 그런 거울이 없다. 다행히 거울을 보고 얼룩진 화장을 고쳤다 쳐도 걱정은 줄지 않는다. 한 금융사의 광고처럼 ‘어떡하지? 어떡하지? 100살까지 산다는데?’ 예·결산 개념도 중요하지만 더 벌어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을 돈벌이의 원천으로 만들어 가는 게 돈 더 버는 비결이다. 나이가 들어서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도 뭔가 일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내 밖의 돈이나 자본이 나를 지켜주는 게 절대로 아니다. 상담해보면 돈이 많아서 불행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10억은 있어야 노후가 안전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는 심각한 트러블메이커였다고 했다. 중간관리자를 불신하고 사장에게 직접 직언하며 회사 안에서 마찰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가격과 필요성을 짚지 않고 눈에 띄는 물건을 보면 카드를 내밀었다. 그 되풀이는 자기 안의 지옥이었다. 스스로와 대면해 평화를 얻자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회적 취약층에게 재무상담을 해주는 일 같은 거다. 최근에 한 주민센터에 시범적으로 경제보건소를 만든 이유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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