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계급화되는 아웃도어 브랜드…특정 브랜드 좋아하는 10대들만 비난할 일일까
나들이에 딱 좋은 날들이다. 며느리는 몰라도 딸 얼굴에는 쬐지 않게 한다는 봄볕이지만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뛰놀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지난 한 달 동안 세번이나 산에 올랐다. 찬란한 것은 초록 생명뿐만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고 화려하디화려한 등산복이다.
아웃도어 의류와 용품의 급성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주 5일제가 안착되고, 워낙 산 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추산이지만 국내 인구 5000만명 가운데 1000만명은 1년에 한 번 이상 등산을 한다고 한다-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행에는 갈수록 민감해하고, 국민 명품에 드는 아이템은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소비 행렬이 이어지면서 동네 뒷산의 ‘히말라야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요즘은 아웃도어라고 다 같은 아웃도어가 아니다. ‘계급화’되었다고 봐도 될 만큼이다. 시장급, 대형마트급, 백화점급 여기서 한발 더 나간,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없는 ‘희귀 명품급’이 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수준 혹은 계급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관심없다’는 사람들도 많다. 한편 관심없다는 사람들의 등산 복장을 위아래로 훑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들린다.
최고급 희귀 명품급 등산복을 찾아 입는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각자의 기호이고 소비 성향이기에. 문제는 그것을 조장하는 불편한 구분, 시선이다. 성아무개(35)씨의 소속 부서 상무는 등산 마니아이다. 성씨 역시 산을 좋아한다. 상무는 ‘불수도북’(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 등반을 제안했다. 강요는 아니라고 했지만 남성 부하 직원 대부분은 상무를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성씨는 불수도북 등반을 성공리에 마쳤지만, 화가 났다. 좀스러워 보일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바로 등산복과 장비 때문이었다. 하산한 뒤 회사 생활에 대한 소회, 고민 등을 나누던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등산은 좋아해도 아웃도어 브랜드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성씨를 사이에 두고 등산 마니아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암호와도 같은 브랜드와 가격을 따져가며 서로의 차림새를 치켜세웠다.
물론 상무의 눈에 들기 위해 아부를 하는 것이라고 뻔히 알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의 이름을 ‘일부’ 딴 외투를 입고 있던 성씨에게 상무는 “다음에 같이 등산하려면 고어텍스 정도는 갖춰 입는 게 좋을 텐데”라고 넌지시 말했다. 성씨가 예민한 걸까, 브랜드에 민감한 상무와 그들 수하가 예민한 걸까?
앞으로도 질 좋은 아웃도어 용품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질 추세이다. 한때의 열풍이 아니다. 그만큼 아무것이나 걸쳐 입고 나서는 누구에게나 등산길이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의 패딩점퍼를 떼로 맞춰 입다시피 하는 철없는 ‘고딩’들을 향해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수십, 수백만원대의 아웃도어 의류에 점잖은 척 열광하는 우리네 모습은 철없는 고딩보다 과연 더 철든 행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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