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백팩의 부활과 함께 다시 상륙한 이스트팩…초창기 같은 전성시대는 기대하지 말길
등에 메는 배낭, 백팩 전성시대이다. 등교, 등산처럼 험난한(?) 길에 함께하는 동반자였지만, 이제는 어딜 가나 백팩을 둘러멘다. 조인성이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명품 백팩을 메고 나온 뒤 불었던, ‘정장에 가죽 백팩’ 유행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핸드백이나 숄더백보다는 백팩을 더 자주 메는 요즘이다.
어쨌든 여기저기서 ‘백팩 대세’를 떠드는 목소리가 크지만, 지난 시절 꼭 같은 상황이 겹쳐 떠오르니 이름하여 1995년부터 시작된 1기 백팩 대세 시절이다. 20대 초반의 독자들은 ‘뭔 소리야?’ 하겠으나, 20대 후반~30대 중후반의 독자들은 외칠 테다. ‘맞아, 이스트팩!’ 하고. 비수도권 출신이어서, 지역적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옛 자료를 찾아보니 큰 차이는 없을 듯하다.
이스트팩에 대한 추억은 이렇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다들 알록달록한 ‘베네통’ 책가방을 메고 다녔다. 원통형으로 생긴, 노랑과 초록, 빨강이 뒤섞인 가방에는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이라는 초록색 로고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이 유행이 질 즈음 떠오르던 게 이스트팩 가방. 심플하기 그지없는 이 가방은 ‘거북이 가방’이라고 불렸다. 당시 6만원 상당의 이스트팩은 국민 책가방이 됐다. 바닥 받침조차 없는, 어쩌면 책가방으로는 영 꽝이었던 가방이었지만,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할 ‘머스트해브 아이템’이었다. 이 브랜드와 더불어 양대 산맥으로는 ‘잔스포츠’가 꼽혔지만 이스트팩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 뒤 잦아든 이스트팩 열풍 뒤로, 캐주얼한 천가방 ‘루카스’가 등장했다. 체크무늬나 베이지색의 루카스는 ‘여고생’들의 잇아이템이 됐다. 옅은 분홍색으로 된 여름 교복 상의와 어울릴까 해서 하늘색 체크무늬의 루카스를 샀더랬다. 뭐하러 있는 책가방을 또 사냐는 핀잔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학에 오니, ‘머스트해브 아이템’은 늘어만 갔다. 노란색 포인트가 눈에 띄었던 점퍼와 무거워서 끌고 다니다시피 했던 단화, 자전거나 말이 그려진 셔츠와 모자까지. 결국 여기서 포기를 했다. 캠퍼스 인파의 20%는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가방을 멨다.
2기 백팩 대세 시절인 요즘은, 지난 때와 달리 불편하지는 않다. 누가 어떤 브랜드의 백팩을 멨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아이돌 그룹이 메는 백팩이라는 마케팅 수사도 그닥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듯하다. 백팩이라는 ‘아이템’의 유행이 도래한 것은 맞지만, ‘남들이 메는’ 백팩을 갖겠다고 유난을 떨지는 않는다.
“이스트팩, 이거 어디 갔어?” 하고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거, 여기 있다. 지난해 이스트팩이 국내 시장에 다시 상륙했다. 제2의 전성기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쉽게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남들과 다른 것을 찾아 국내외 곳곳의 온오프라인 시장을 샅샅이 뒤져가며 부지런히 ‘나만의 스타일’을 가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마 인기있는 이스트팩은 제1의 전성기 시절 출시됐던 빈티지한 가방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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