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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라는 시선,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등록 2012-06-13 17:03수정 2012-10-25 13:54

장수진 씨. (사진 박미향 기자)
장수진 씨.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인간 반전
연극배우 출신으로 시인 등단한 장수진씨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은 원치 않는 증명의 시간을 오래 가져야 한다. 크고 동그란 눈, 오뚝한 콧날. 브라운관에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외모를 가진 여자는 의외로 정통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연기를 한다면 연극부터, 글을 쓴다면 시부터 시작하는 게 옳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매번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네가 연극을? 네가 시를?

“저에게 그런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정수나 본질을 찾는 기질.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어렵고 정통적인 것을 선택하죠.” 어찌 보면 고지식한 이 신념은, 장수진씨의 외모나 이력과 퍽 어울리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에꼴> <유행통신> 같은 잡지 모델로 활동했던 여자가 방송연예과가 아닌 연극과를 지망했을 때부터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왜 연극과에 왔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항상 그랬어요. 순정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죠.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오해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근데 나중엔 결국 시간의 힘으로 극복을 하게 돼요. 성실한 편은 아닌데,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집중과 몰입이 강한 편이거든요.”

“공연중 코뼈가 부러졌어요.
저도 극단도 돈이 없으니
방치되는 분위기가 싫었죠”

오랫동안 배우로 활동했던 그녀는 지금 문학의 출발점에 서 있다. 역시나 문단의 예민한 관심이 쏟아진다. 왜 배우 하던 사람이 갑자기 시를 쓰겠다고 나섰을까, 얼마나 오래 시를 쓸지 두고 보자, 의혹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도 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임을 경험적으로 안다. “결국 시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극복할 수 있는 재능이 있냐는 것이죠.”

7, 8년간 몸담았던 연극판은 흥겨운 놀이터 같았다. 스물세살, 뒤늦게 입학한 대학에서 연기의 매력을 제대로 느꼈다. 공연을 준비하느라 새벽까지 연습을 하다 대극장 마당에 대자로 뻗어 별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극작가 교수였던 박근형 선생이 무심히 즉흥대사를 던져주었다. 아무 준비 없이 불러주던 그 대사가 너무 아름다워 마법처럼 빨려들었다. “즉흥창작의 매력을 느꼈어요. 선생님은 대사를 현장에서 만들어 배우에게 툭툭 던져줘요. 그럼 배우가 별다른 연습 없이 순간적으로 연기를 완성해내죠. 만약 연극을 한다면 선생님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바람대로 박근형 선생이 이끄는 극단 골목길에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 <시유어겐>을 시작으로 <밑바닥에서> <마라사드> <닥터 이라부>,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등에 출연했다. 연기는 너무 좋은데 생활은 늘 궁핍했고, 매 순간 삶의 부조리와 싸워야 하는 시간이 반복됐다. 순수를 지향하지만 시장의 논리를 피할 수 없는 현실. “돈도 못 벌고, 사회적 지위도 낮고, 마음도 척박했어요.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죠.”

반전의 순간은 극적으로 찾아왔다. <프랑스 정원>이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릴 때였다. 연기 도중 코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다음 신은 암전. 엎드려서 대사를 읊은 덕에 관객들은 부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무대에서 내려와 서둘러 응급처치를 했지만, 극단 쪽은 차마 병원에 가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저도 돈이 없었고, 극단도 돈이 없었죠. 일종의 산업재해인데 그냥 방치되는 분위기. 그런 구조가 싫더라고요.”

“보들레르나 최승자를
즐겨 읽었어요.
시집의 감성이 문신처럼 배어
시를 쓰는 게 자연스러웠죠”

마침 나이는 서른 즈음이었다. 30대에도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할까? 집시처럼 사는 삶이 싫진 않았지만, 영원히 이렇게 사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았다. “연기에 대한 순정은 남겨두되, 일상의 구조는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활동을 잠시 접고 등단을 준비했다. 평소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최대한 성실하게 뭔가를 해내고 싶었다. “자신에게 좀더 엄격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20대처럼 헤매면서 살고 싶진 않았죠.”

혼자 처박혀서 묵묵히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즐겨 읽긴 했지만 습작은 하지 않았던 사람이 샐러리맨처럼 하루 몇 시간씩 꾸준히 시를 썼다. 낮엔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시를 쓰고. “어려운 목표를 성취해 스스로 자존감이 강해지길 바랐어요.”

배고픈 예술을 하던 사람이 왜 하필 또 배고픈 예술이냐, 핀잔 섞인 질문도 받았다. 그녀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문학을 정식으로 공부했다면 자신에게 맞는 장르나 형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겠지만, 그녀는 시를 좋아했으므로 시의 세계로 무작정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보들레르나 최승자 시인의 시를 즐겨 읽었어요. 시가 저랑 잘 맞아요. 감수성 예민할 때 봤던 시집의 감성이 몸에 문신처럼 배어 있고, 그게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게 자연스러웠죠.” 생애 처음으로 도전한 공모전(12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서 백은선 작가와 공동으로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배우 출신 시인이라서 그런지, 그녀의 시는 연극의 독백 같은 느낌이 강하다. 직설화법에 익숙한 그녀는 시를 쓸 때도 감정의 직구를 주로 던지는 편이다. 너무 센 이미지가 나열되는 통에 “벼락 맞은 느낌”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실제로 그녀는 자기학대와 모멸의 시어를 뒤섞어 묘하게 웃음이 번져 나오는 특이한 시를 쓰고 있다. “항문엔 담배를 물리지/ 엉덩이를 낮추고 제법 연기도 뿜어/ 여배우 같아”(똥굿)

문단에선 배우의 이력을 가진, 조금 괴팍한 시를 쓰는 젊은 시인을 또다시 생경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재능과 열정으로 시에 대한 순정을 증명해야 할 시간. 열심히 시를 써야 한다는 당위성이, 그녀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고 있다.

profile

장수진

장수진 1981년생. 잡지모델과 케이블 티브이 브이제이(VJ)로 활동하다 2003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입학, 2004년 <시유어겐>으로 연극 데뷔, 극단 골목길 소속으로 활동. 2012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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