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키노 칩앤시크 제공
[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해마다 바뀌는 비키니 트렌드…한물간 유행보다 더 불편한 건 끈적한 시선들
그러니까 난생처음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때는 2살 때로 추정된다. 빛바랜 사진에서만 확인 가능하다. 7살 때까지는 비키니 마니아인 것으로 역시, 추정된다. 어머니의 취향이 거의 100% 반영된 결과였다. 그리고 긴긴 세월이 흘러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비키니를 찾게 됐다.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수영장에서 입는 검정 원피스 수영복. 이만큼 편안한 수영복이 없다. 그런데 이 수영복을 입고 바닷가로 나갔더니, 이만큼 불편한 수영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움직임은 편했지만, “뭐니, 쟤?” 하고 떠드는 시선이 웅성웅성. 비키니를 찾아 나섰다. 몸매 멋진,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마네킹이 손짓을 했고, 못 이기는 척 유혹에 응했다. 역시나 불편한 수영복. 나의 몸매와 마네킹의 몸매는 모든 부위에 걸쳐 너무도 다른 셰이프였기에. 그럼에도 해변가나 워터파크에서 검정 원피스 수영복보다는 덜 불편하겠기에, 비키니 수영복을 샀다.
비키니는 그해 여름, 딱 한번 입고 옷장 속에서 잠자고 있다. 그 ‘화려함’이 문제였다. 다음해가 되니 바뀌는 수영복 트렌드. 미니멀한 무늬와 디자인이 잘나간다고 했다. 그것과는 거리가 먼 내 화려한 비키니는 이내 또 불편해진 것이다.
3~4년 전에는 얼룩무늬나 금은색 등 금속 색감을 입으면 섹시하다고 했고, 2~3년 전부터는 형광 핑크나 오렌지 등 ‘비비드’한 색 계열의 수영복이 ‘핫’하다고들 했다. 지난해에는 꽃무늬가 수놓인 복고풍, ‘레트로’ 스타일의 수영복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올해는 비비드한 색을 블록처럼 배열한 디자인의 수영복이 유행할 것이라고들 한다.
결론은? 5년 전 샀던 그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을 다시 꺼내야겠다는 것이다. 1년에 많아야 3~4번 입는 수영복이다. 게다가 평범한 일반인 몸매라면, 무엇을 입든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한 주류회사가 수영장이나 워터파크에서 남성들이 가장 먼저 물에 빠뜨리는 사람이 ‘인기녀’라는 맥락의 맥주 광고를 내보내는데, 뭐 광고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해변이나 워터파크에서 감상할 것이 어디 뭇여성들의 수영복 패션뿐인가? 멀리 바닷가 풍경은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과 다른 청량함을 선사할 것이고, 왁자지껄한 워터파크에서는 젊은이들의 끝을 모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니.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수영복 패션의 종결자야 현실 세계보다는 남성용 잡지에 더 자주 등장한다. 그저 거리낌없이 떠들고 놀고 싶은데, 불편한 시선 따위는 좀 집어치워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말 그대로 ‘바람’이자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은 알지만.
올해 유행한다는 수영복에는 역시나 큰 관심이 가지 않는다. 문득 ‘맞춤 수영복을 마련해 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뭘 보심?’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수영복 한벌을 갖고 싶다. 그러면 좀 덜 불편하려나?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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