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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좌절이 오늘의 동력으로

등록 2012-08-08 17:10수정 2012-08-09 14:20

센다이 김영철 사장. 박미향 기자
센다이 김영철 사장.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인간 반전
충청도 산골소년에서 7전8기 끝 일식집 성공 일군 센다이 김영철 사장
겉은 마포 중심가의 으리으리한 빌딩이지만 지하상가는 천장 낮고 좁은 복도에 음침한 기운이 감돈다. ‘섹시클럽’은 이 어두운 기운과 묘하게 어울리지만, 클럽 옆의 일식집 센다이는 전혀 생뚱맞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아도 이 부조화의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회를 중심으로 하나씩 음식이 들어오면서 선입견이 증발되기 시작한다. 주방장 겸 사장인 김영철씨가 11년 된 낡은 칼과 도마를 가지고 들어와 개그맨 뺨치는 입담과 더불어 눈앞에서 뜬 회를 썰어줄 때 비로소 이 가게의 비법이 이해된다.

미국 도전에 실패했지만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나날이 매출 기록을 깨고 있는 그의 반전 스토리는 기구한 팔자 그 자체다. 그는 생선이라고는 고등어밖에 몰랐던 충청도 산골의 사슴농장 막내아들이었다. 고3 때, 사슴뿔을 구하러 온 일식 주방장이 똘똘하고 센스가 있다며 일식 요리사 하면 잘할 것 같다는 덕담이 ‘화근’이었다. 단돈 6만원을 들고 혈혈단신 상경해 주방 막내로 설거지와 청소 등 잡일을 한 지 넉달째. 사시미 칼을 몰래 만져보다 주방장에게 들켜 그 칼로 머리를 잘못 맞아 8바늘을 꿰맨 상흔이 불길한 전조였을까. 고생 끝에 일식 요리사 자격증을 땄지만, 상경할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은 일찍 접어야 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연줄 없이는 호텔 입성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국 도전을 결심한 건 그 때문이다.

엉뚱하게 좌절된
미국 진출의 꿈
중국에서 재기

profile

김영철
1973년 충북 음성 출생. 1998년 일식 요리사 자격증 취득. 2001년 첫 일식당 주방장. 2004년 하얼빈 고려원 주방장. 2007년 상하이 동원참치 총주방장. 2009년 센다이 개점.

월급의 절반을 꼬박꼬박 적금으로 들어주던 일식집 사장이 미국 이민을 가게 됐고, 함께 미국에서 일식집을 열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각자 1년 동안 준비를 했다. 그는 명동 회전초밥집에서 롤 만드는 법을 배웠고, 중국 하얼빈의 한중일 뷔페에서 볶음 및 철판 요리도 익혔다.

2005년 드디어 미국 뉴욕 주도 올버니로 건너가 초밥집 오픈 준비에 들어갔다. 낡고 오래된 소방서 건물을 매입해 석달 동안 직접 수리를 했다. 인테리어 공사와 더불어 영업허가를 받으려고 하니 어처구니없는 벽에 부딪혔다. 같은 블록 끝에 초밥집이 영업중이었는데 미국은 상권보호 차원에서 같은 블록 동일 업소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히 건물은 큰 손해 없이 팔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뉴욕 식당에서 주급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기막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울의 부동산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연락이 왔다. 국내에 ‘대기중’이던 아내가 어떤 남자와 아파트를 처분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혼을 하고 위자료를 받아도 부족할 판에 그는 오히려 3천만원을 아내의 손에 쥐여줬다. 손에 남은 건 아파트 대출 빚 1억8천만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어이없는 이혼 과정을 지켜본 아버지가 화병으로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서럽고 힘든 시절이었다. 모든 걸 접고 시골집에서 폐인처럼 지냈다. 그나마 모아둔 돈도 모두 바닥이 났다.

캐나다 이민 좌절되면서
떠맡은 친구의 식당
결국 대박으로 성공시켜

재기의 기회는 또다시 외국에서 날아왔다. 중국 상하이 일식집에서 주방장을 구한다며 지인이 자리를 주선해주었다. 초창기라 장사가 안되는 터에 기존 요리사들의 견제까지 받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사장과 담판을 지었다. 3개월 안에 매출을 50% 이상 못 올리면 내가 떠날 테니 맘에 맞는 직원들과 일하게 해달라고. 목표는 초과 달성했고, 자신 역시 하루에 팁 30만~40만원씩 챙기는 전성기를 열었다. 1년 뒤 “손님들이 주는 고량주 때문에 죽을 것 같아” 그동안 모은 8천만원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량주 때문이라고는 하나 사실은 캐나다 이민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자신에게 롤 초밥을 배워 캐나다에서 성공한 지인이 중국까지 찾아와 캐나다에서 일식집 동업을 제안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캐나다에 먼저 정착하고 미국에 재입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8천만원을 밑천으로 캐나다 이주 준비를 모두 끝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반전이 시작됐다. 친구가 일식집을 해보려 하는데 저렴하게 나온 가게가 하나 있으니 봐달라고 했다. 그 가게가 지금의 센다이다. 직접 가보고 “십중팔구 망한다”며 만류했지만 친구는 고집불통이었다. 심지어 계약금 500만원까지 빌려 갔다. 며칠 뒤 잔금 치르는 날, 친구는 계약금도 돌려주지 않은 채 손을 떼겠다고 말했다. 알아보니 그 집은 일식집 3차례를 포함해 9번이나 주인이 바뀐 이상한 자리였다. 계약금이 아까워 일단 가게를 열고 최대한 빨리 팔자는 생각에 센다이를 열었다. 당연히 매달 적자였고, 캐나다 이민 자금이 야금야금 줄어갔다.

6개월째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승부수를 날렸다. 낮에 오는 손님에게 무엇을 먹고 가든 초밥 도시락을 선물로 내주었다. 슬슬 손님이 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줄 서서 들어올 정도가 됐다. 초밥 만들 시간이 없어지면서 회 서비스를 시작했다.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주말 가족 손님 유치에 성공하면서 5년차인 지금 월평균 5천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의 성공 비결은 이렇다. “부모님과 오시면 최고의 효도를, 아내와 오면 아내 눈가에 이슬을, 아이들과 오면 아빠를 달나라까지 보내드려야죠. 돈 조금 덜 벌어도 됩니다. 고객이 감동을 받고 가야 저도 행복해지거든요.” 생선회의 품질을 유지하는 비법 강의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제는 정말 즐거웠고, 오늘은 행복하고,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산다”는 그의 좌우명은 이미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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