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KHands’ 김영근 대표. 박미향 기자 제공
[매거진 esc] 인간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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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시한부 삶 선고받아
퇴사 후 동네 공방에 등록 선물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정보통신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30대 초반, 밤낮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며 워커홀릭의 삶을 살았다. 주말이나 공휴일도 출근해야 했고, 취미생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과로였을까, 한쪽 팔다리가 저리고 이상했다. 주변에서 갸우뚱거리며 일러주었다. 의식도 못했는데 침을 흘리거나 잠깐씩 정신을 놓고 있는 적이 많다고 했다. 벼르고 벼르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말없이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했다. 수년 전 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그는 불안 속에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뇌종양 3기 판정을 받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도리가 없었다. 퇴직금을 치료비에 쏟아부으며 짧으나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고 마음을 먹었다. 막막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미술학원부터 출발하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동네를 거닐다 작은 가구공방을 보게 되었다. 기성 가구와 달리 투박하나 개성 있는 가구가 맘에 들었다. 저거다 싶었다. 그 공방을 시작으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가람가구학교였다. 일주일에 두 번, 두세 시간씩 1년을 다니고 나머지 1년 동안 세상에 남길 무언가를 만들 요량이었다. 사느냐 죽느냐를 앞두고 이런 선택이 가능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그는 남들보다 열심히 했고, 숙제를 내주면 남들보다 두세 개는 더 해 갔다. 1년 뒤 가구공방을 열었다.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필요한 가구가 없는지 물어 고객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거듭 되묻지 않을 수 없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의 머릿속에 든 괴물 사진을 마주하고도 죽음 저 너머가 두렵지 않았는지, 세상의 끝이 멀지 않았는데 어떻게 회의감 없이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었는지. 거듭 돌아온 답은 둘이었다. 백일을 코앞에 둔 딸아이와 아내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좋다’는 반응으로 돌아온 가구 그 자체의 매력. “갓 태어난 딸아이가 나중에 커서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라고 물을 때, ‘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말 대신 ‘너를 아주 많이 사랑했고, 너를 위해 이것을 만들어 주셨단다’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하고 있는 일, 가구였어요.” 아기를 생각하며 만든 가구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가져다주었고, 그 희열감이 암세포에 긍정적으로 맞섰다. 별다른 특효약을 쓰지 않았으니 여태껏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건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김영근 제공
‘너를 아주 많이 사랑했고
널 위해 가구를 만들어 주셨단다’
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가구는 그의 성품을 닮았다. 직접 그린 디자인은 심플하고, 완성된 것은 빈틈없이 단단하다. 철물이나 접착제를 쓰지 않아 끼워 맞춘 곳을 빼면 원목 그대로의 느낌이다. 주로 참나무와 호두나무를 섞어 만드는데 참나무는 밝고, 호두나무는 어두워서 두 가지 색이 자연스런 색조합을 만들어낸다. 모양새는 튀지 않게 하려고 애썼으나 기성 가구 사이에 놓이면 존재감이 역력할 수밖에 없다. 워낙 나긋나긋한 말투라 그 안에 숨겨진 근성과 고집을 찾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남성 고객의 경우, 자주 묻는 말이 몇 년이나 이 일을 했느냐는 물음이다. 4년 정도라고 하면 실망하며 미덥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4년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으냐고, 그사이 만든 작품의 수와 완성도를 봐달라고 하면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를 보인다. 그러면 가격을 두세 배 높여 부른다. 작품을 그 자체로 봐주지 않는 이들에겐 아무리 수입이 아쉬워도 그렇게 돌려보낸다. 대신 작품을 맘에 들어하지만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종종 가격을 낮춰주기도 한다. 암투병에 대해 자꾸 묻자 간곡한 당부가 돌아왔다. “저의 작업이 암투병 때문에 동정을 받기보다 다른 분들과 똑같이 가구작업의 결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의 가구는 이미 디자인 가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멋진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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