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인간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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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정으로 손 떼
3년 됐지만 장부는 아슬아슬 마침 효자동에는 맘 놓고 편하게 한잔할 만한 가게가 없었다. 카페 겸 펍으로 영업 콘셉트를 정하고, 이름은 청와대 부근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퍼블릭(public, 대중을 위한, 공공의)이라 정했다. 그런데 개점 즈음, 문제가 생겼다. 친구는 갤러리 오픈을 이유로 경영 불참을 알려왔고, 동생은 임신을 했다며 운영에서 자진 하차했다. 총자본금 9000만원 중 일부를 빼가지 않고 부채로 돌려놓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자 총대를 메야 했다. 하루 종일 손님 한 명 들지 않는 기록적인 날도 있었고, 명절이나 한겨울이면 손님이 끊기는 업계의 실상을 실감했다. 만취한 손님에게 제대로 응대하지 못해 속이 문드러지는 경험도 했다. 자기 건물이 있어 카페를 내거나 자본이 든든하지 않은 경우, 카페 운영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카페는 생각만큼 낭만적인 사업이 아니었고, 프리랜서의 로망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구정아 사장은 카페를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재미를 충분히 느꼈고, 영화 프로듀서를 할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풍부한 인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퍼블릭을 운영하는 것은 첫번째 일의 선택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곽용수 현 인디스토리 대표의 제안을 받아 창업이나 다름없이 시작한 인디스토리 업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들지만 열정이 샘솟는 작업이었다. 그때 월급이 약 20만원. 외국 유수의 영화제들이 감독과 제작자를 초청해도 돈이 없어 참가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구정아 사장은 독립영화의 산업적 활로를 모색하는 데 앞장섰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안정적인 지원제도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렇게 6년간 인디스토리 업무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니 나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손해를 볼 때는 끔찍하지만
인생의 폭이 넓어진 거
같아서 위안이 돼요” 첫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를 만들기 전, 퍼블릭부터 오픈하고 나니 가장 반가우면서도 서글픈 고객이 영화계 손님들이었다. 프로듀서, 배우, 감독이 찾아주면 그렇게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주방에 있는 자신이 서글펐다. ‘나도 영화인이고,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제 그는 두 가지 일을 모두 행복하게 병행하고 있다. “이것저것 일 벌이지 말고 한 우물만 파라”, “카페 창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깨라”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고심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의 일상은 여유로워 보인다. 그는 퍼블릭을 시작해서 좋은 점을 다음과 같이 꼽는다. 건축, 미술, 언론계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알게 됐고, 무엇보다 사람 좋은 효자동 사람들과 친해져서 일상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제 퍼블릭은 그의 고향이자 듬직한 벗이 되었다. “첫 영화가 잘 안되고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때, 퍼블릭이 좋은 안식처가 되었어요. 손해를 보면서 운영을 해야 할 때는 끔찍하지만, 인생의 폭이 넓어진 거 같아서 위안이 돼요. 이제 영화와 카페, 둘 다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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