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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생각으로 카페 열진 마세요!”

등록 2012-10-10 18:09수정 2012-10-25 14:08

[매거진 esc] 인간 반전
서울 효자동 카페 ‘퍼블릭’ 운영하며 영화 제작하는 프로듀서 구정아

서울의 삼청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을 거닐면 근사한 멋으로 유혹하는 카페들이 즐비하다. 주인장은 물론 알바생들마저 시크해 보인다. 커피 한잔 또는 맥주 한잔을 주문하고 잠시 로망에 젖는다. ‘직장 때려치우고, 이런 카페 하나 차리면 좋겠다. 내 맘대로 꾸미고 내 맘대로 메뉴도 만들고, 우아하게 음악 들으며 책도 보는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면 어떨까.’

삼청동과 부암동을 잇는 옆구리 길, 효자동의 퍼블릭(Public) 역시 대략 그런 카페로 보였다. 주인장은 독립영화계에서 오래 일해온 구정아(38) 프로듀서다. 개점한 지 6개월도 안 된 2010년 무렵, 구정아 사장은 첫번째 영화까지 제작하고 있었다. 팔자가 좋아 보였고, 프리랜서의 로망을 어느 정도 실현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에일맥주 특유의 향이 꿈틀대는 가게, 쿠바의 대표적인 칵테일 모히토를 맛있게 말아주는 곳.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로 운영되는 모양새도 왠지 멋져 보였다.

profile

구정아 1974년생.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 창립멤버. <티끌모아 로맨스>(2011) 제작. <시나리오 이렇게 쓰지 마라>(서해문집) 번역. 현재 영화사 보임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추계예대 영상시나리오과에 출강 중.

하지만 막상 인터뷰 자리에 마주 앉은 구정아 사장은 앓는 소리부터 늘어놓는다. 오는 12월 개점 3년을 맞는 퍼블릭은 확실한 흑자를 내지 못하고 여전히 재정적으로 위태로운 상태다. 구정아 사장은 가끔 알바생의 알바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번역 알바를 하기도 한다며 헛헛하게 웃는다. 우아하면서도 돈이 절로 벌리는 카페 경영 따윈 세상에 없었다.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 구정아 사장은 이태원에 거주하는 실업자였다. 한국 영화계의 거품이 빠지면서 부실한 회사들이 마구 쓰러질 때였다. 동전을 모아둔 저금통을 깨서 아픈 몸을 이끌고 먹고 싶은 음식을 사러 나갔지만 돈이 모자라 서러웠다. 친구가 소주 한잔을 사주겠다며 불러냈다. 동네친구로 알고 지내던 감독 지망생 김정환이 술자리에 합류했다. 감독 지망생은 그날 차비가 없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서로의 처지가 딱해 ‘나는 병을 주울 테니 너는 박스나 모으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그것이 <티끌모아 로맨스>의 원형이 되었다. 철없는 청년 백수를 독하고 요령 많은 백수 여자가 사람으로 만들고 연애도 하는 이야기였다.

영화 일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삼청동에서 갤러리 오픈을 준비하던 친구가 카페 동업을 제안해왔다. 여동생도 합류하겠다고 했다. 3명이 2일씩 돌아가며 카페를 운영하면 영화일 할 시간도 생기고, 돈도 벌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보루였던 보험을 깼다. 400만원을 손해 보고 받은 돈을 몽땅 카페에 쏟아부었다. 권리금이 없는 가게 터를 찾았다. 물류창고로 쓰던 허름한 공간을 찾아냈다.

개업 직전 동업자들
개인사정으로 손 떼
3년 됐지만 장부는 아슬아슬

마침 효자동에는 맘 놓고 편하게 한잔할 만한 가게가 없었다. 카페 겸 펍으로 영업 콘셉트를 정하고, 이름은 청와대 부근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퍼블릭(public, 대중을 위한, 공공의)이라 정했다. 그런데 개점 즈음, 문제가 생겼다. 친구는 갤러리 오픈을 이유로 경영 불참을 알려왔고, 동생은 임신을 했다며 운영에서 자진 하차했다. 총자본금 9000만원 중 일부를 빼가지 않고 부채로 돌려놓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자 총대를 메야 했다. 하루 종일 손님 한 명 들지 않는 기록적인 날도 있었고, 명절이나 한겨울이면 손님이 끊기는 업계의 실상을 실감했다. 만취한 손님에게 제대로 응대하지 못해 속이 문드러지는 경험도 했다. 자기 건물이 있어 카페를 내거나 자본이 든든하지 않은 경우, 카페 운영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카페는 생각만큼 낭만적인 사업이 아니었고, 프리랜서의 로망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구정아 사장은 카페를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재미를 충분히 느꼈고, 영화 프로듀서를 할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풍부한 인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퍼블릭을 운영하는 것은 첫번째 일의 선택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곽용수 현 인디스토리 대표의 제안을 받아 창업이나 다름없이 시작한 인디스토리 업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들지만 열정이 샘솟는 작업이었다. 그때 월급이 약 20만원. 외국 유수의 영화제들이 감독과 제작자를 초청해도 돈이 없어 참가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구정아 사장은 독립영화의 산업적 활로를 모색하는 데 앞장섰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안정적인 지원제도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렇게 6년간 인디스토리 업무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니 나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손해를 볼 때는 끔찍하지만
인생의 폭이 넓어진 거
같아서 위안이 돼요”

첫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를 만들기 전, 퍼블릭부터 오픈하고 나니 가장 반가우면서도 서글픈 고객이 영화계 손님들이었다. 프로듀서, 배우, 감독이 찾아주면 그렇게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주방에 있는 자신이 서글펐다. ‘나도 영화인이고,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제 그는 두 가지 일을 모두 행복하게 병행하고 있다.

“이것저것 일 벌이지 말고 한 우물만 파라”, “카페 창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깨라”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고심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의 일상은 여유로워 보인다. 그는 퍼블릭을 시작해서 좋은 점을 다음과 같이 꼽는다. 건축, 미술, 언론계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알게 됐고, 무엇보다 사람 좋은 효자동 사람들과 친해져서 일상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제 퍼블릭은 그의 고향이자 듬직한 벗이 되었다.

“첫 영화가 잘 안되고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때, 퍼블릭이 좋은 안식처가 되었어요. 손해를 보면서 운영을 해야 할 때는 끔찍하지만, 인생의 폭이 넓어진 거 같아서 위안이 돼요. 이제 영화와 카페, 둘 다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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