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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은 용자의 것

등록 2012-10-17 18:30

박미향 기자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유행 디자인 아니면 엄두내기 힘든 모자 쓰기…중장년층이 오히려 개성 넘쳐
“이거 어때?”라며 친구에게서 사진이 한 장 날아왔다. 휴대폰 속 그는 헌팅캡을 쓰고 있었다. 알고 지낸 지 11년째, 기억하기로는 단 한번도 모자를 쓰지 않았던 그였다.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을 법한 야구모자도 하나 없던 녀석이다. 중대한 변화다. 게다가 다른 액세서리도 아닌 모자라니. 궁금했다. “사는 게 좀 지루해지는 것 같아서. 재미있게 살아보려고”라고 답했다. 여가 및 놀이문화의 전파에 앞장서 온 김정운 교수가 빙의했나 싶었다.

모자의 계절이다. 가을과 겨울, 보온용으로든 꾸미기 용도로든 모자만한 아이템을 찾기는 힘들다. 패션 잡지와 블로그 등에는 모자로 연출하는 스타일 소개가 줄줄이 이어진다. 친구가 한눈에 반한 헌팅캡을 비롯해 비니, 베레모, 페도라(챙이 좁은 중절모)처럼 그 모양은 수십가지에 이른다. 그만큼 다양한 패션 스타일에 맞춰 골라 쓰는 재미가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한국의 패션 역사, 문화에서 모자를 빼놓을 수 없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묘사한 사진 또는 그림에는 그들의 머리 또는 손에 모자가 있다. 멋들어진 차림새는 모자에서 완성되는 듯 보였다. 당시 복식사에는 그래서 모자의 종류 등을 빼놓지 않고 서술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야구모자는 국민 모자가 되다시피 했다. 특별히 미국의 프로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동생도 메이저리그 야구구단의 로고를 새겨넣은 모자만 서너개를 갖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여전히 야구모자를 쓴 인파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스타일에 조금 더 힘을 준 사람들은 카뎃이라고 불리는 군모 정도의 모자를 많이 찾는다.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모자 종류는 이 정도다. 아쉬운 대목은 이것이다. 조금이라도 튄다는 느낌이 들면 모자 쓰기를 망설이게 된다. 그나마 거리에 나가면 자신 말고도 다른 사람 한두명 정도가 쓰고 있으면 용기를 내고 모자를 쓰지만, 그게 아니라면 멋져 보여서 샀던 모자들은 옷장 속에서 화석이 되고 만다.

오히려 과감한 모자 패션을 선도하는 층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중장년층 아닌가 싶다. 헌팅캡이나 중절모나 페도라 같은 모자는 중장년층 남성들 사이에 인기가 더욱 많다. 굳이 머리카락을 가리려는 용도는 아니다. 40대의 모자 마니아 정수남씨는 모자를 쓰고 난 뒤 오히려 다른 차림새도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유행하는 스타일보다는 자신에게 더욱 잘 어울릴 수 있는 모자를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자 매장에 가서 찾는단다. 이런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정씨는 이날 짙은 갈색의 페도라를 쓰고 있었다.

지난해 벼룩시장에서 플로피(챙이 넓고 머리 부분이 둥근 여성용 모자)를 샀다. 딱 한 번 쓰고 안녕을 고했다. 언젠가는 다시 쓰겠지 하고 지난 시간이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헌팅캡을 산 친구를 만나러 갈 때 그 플로피를 다시 꺼내봐야겠다. 개성있는 스타일은 용기있는 자의 것! 이러면서 그 친구에게 꼭 모자를 쓰고 나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겠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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