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실천에서 유행으로 윤리적 패션의 진화
한낮 기온이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 지난 주말 과감히 길거리 쇼핑에 나섰다. 올해 쇼핑을 나선 게 열손가락을 꼽는다. 패션을 담당하는 기자의 자세로는 영 꽝이다. 쏟아지는 패션 보도자료와 브랜드 론칭 행사를 둘러보는 게 일이다 보니 쇼핑 욕구는 오히려 줄어든다. 만날 돌고 돌면서 특별하게 새로울 것 없는 패션의 향연이 그닥 끌리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쇼핑을 미루다 미루다 하는 경우가 많다. 옷장 정리를 하고 입을 옷을 정리한 뒤, 도무지 이번 시즌을 견뎌낼 옷이 없다 싶으면 쇼핑에 나선다. 이번 쇼핑 주제는 ‘방한’이었다. 지난해 길고 길었던 강추위가 떠올랐고, 겨울 초입의 폭설과 극한 추위에 며칠 벌벌 떨고 난 뒤에야 쇼핑 욕구가 샘솟았다.
쇼핑 리스트의 맨 위를 차지한 것은 겨울 외투. 그다음은 구입 제품을 구체화하는 차례다. 옷장의 옷들을 훑어보니 울이나 모직으로 된 일반 코트는 제외. 남은 것은 패딩 재킷이나 퍼 코트였다. 겨울철 방한 의류로 패딩 재킷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옷맵시이다.
겨울철 패딩 재킷을 팔지 않는 옷가게는 거의 없다. 그러나 거리를 살펴 패딩 재킷을 입은 사람들을 눈여겨보자면, 누구나 한벌쯤은 갖고 있는 듯하다. 추운 날 길을 지나가는 여성 열에 서너명은 패딩 재킷을 입고 있었다. 자, 이 정도 되면 패딩 재킷을 과감히 골라 입을 만하다. 옷가게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패딩 재킷을 입어보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나 입어보면 입어볼수록 망설여졌다.
그 포기할 수 없는 옷맵시 때문이었다. 아무리 허리를 졸라매고 날렵한 모양의 디자인이라고 해도 맵시를 뽐내기엔 한참 모자랐다. 거리 패션 관찰을 통한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참 따뜻해 보이네” 정도의 말만 중얼거리게 됐다.
패딩 재킷 다음은 퍼 코트. 패딩 재킷보다 거리에서 많이 발견할 수는 없었지만, 옷가게에서는 퍼 코트를 하나쯤 갖추고 있었다. 양가죽으로 만든 무톤 재킷, 밍크로 만들었다는 미니 볼레로 등등이 눈에 띄었다. 패딩 재킷만큼 따뜻하면서도 아리따운 맵시에 곧 빠져들었다. 이것저것 입어보는 사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 ‘아, 맞다. 페이크퍼!’
예전보다 가벼우면서도 모던한 스타일로 유혹하는 무톤 재킷은 양가죽과 토끼털이, 윤기 흐르는 까만색 밍크 볼레로에는 수십마리 밍크의 털이 소재로 쓰였다. 마음껏 걸쳐보고, 입어보는 데도 망설여졌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다른 계절보다 겨울에 옷을 살 때면 이런 고민이 깊어진다. 지난해와 올해 윤리적인 패션, 환경 친화적인 패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을 여러 차례 전했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이번 겨울에는 소개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진짜 윤리적인 패션 아이템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되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착한 소비를 수백번 외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실천이 더 큰 진전, 변화를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다. 바꿀 것은 당장 행동으로. 따뜻한 페이크퍼 재킷을 찾으러 다시 쇼핑길에 나서야겠다. 그 재킷을 입고, 12월19일 투표하러 가야겠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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