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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를 기다리는 설렘 앞에 포기란 없다

등록 2013-06-19 22:06수정 2013-06-20 16:37

[esc] 커버스토리 보통 사람들 공모전 열풍
‘100전 99패’ 낙선자의 변
내가 처음 공모전에 뛰어든 것은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소일거리를 찾다가였다. 처음엔 브랜드 네이밍부터 도전했다. 제품 이름 또는 회사 이름을 짓는 데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아 손쉽게 도전할 수 있는 분야였다. 헤어드라이어 이름부터 여행상품 이름까지 줄줄이 떨어졌다. 10년 출판 경력을 자산 삼아 에세이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소나기, 커피, 어머니 등등을 주제로 기업체, 사단법인, 재단법인, 지방자치단체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각종 소재에 맞춤형 수필을 제출했다. 북한이나 핵폭탄 소재만 빼고는 전부 응모했던 것 같다. 다 떨어지고 딱 한군데 붙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모한 그 지방을 소재로 한 수필이었다. 1주일 동안 200쪽 넘는 자료를 출력하고 분석해 사흘 동안 어깨가 빠지도록 작성한 원고지 35장의 수필로 가작 수상, 20만원 상금을 받았다. 들인 시간을 계산하면 시간당 3571원(법정 시간당 임금보다 1000원 이상 낮은 금액이다!) 노동이었다.

사진 공모나 가당치도 않게 발명 아이디어를 공모한 적도 있었는데, 응모하면 응모할수록(정확히 말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사회적 적개심이 커져갔다. 회사건 단체건 홍보하기 위해 공모전에 돈을 쓰는 것일 텐데, 떨어지면 다시는 그 회사 제품을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어떤 식품회사가 연 자녀사진 공모전에서 떨어지고는 다시는 그 회사 제품을 사지 않는다. 하다못해 간장 1병이라도 받는 수십명 당선자 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면 어찌 그 회사 간장을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사먹을 수 있겠는가. 한겨레신문사가 최근 창간 25주년 기념으로 연 네모칸 채우기 공모전에선 사돈의 팔촌까지 10여명 명의를 빌려 응모하고도 떨어지자 10년째 받아보던 <한겨레>를 끊을 뻔했다. 아니 핸드폰 하나 새로 장만해보겠다는 나의 소망이 그렇게 과하단 말인가. 공모 횟수가 늘어갈수록 소득이 늘어가기는커녕 점점 사회적 불순 세력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공모전의 중독성은 ‘로또’와 비슷하다. 로또에 떨어진 사람들만이 다시 로또를 사는 것처럼, 공모전도 떨어지니까 될 때까지 하는 거다. 브랜드 네이밍, 표어, 수필, 발명 아이디어를 넘어 나는 이제 작곡 공모전까지 도전하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주변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방자치단체 홍보곡 공모전에 노래를 만들어서 제출하고 말았다. 로또를 사면 토요일까지 ‘당첨되면 이 돈으로 무얼 할까’ 고민할 때가 가장 행복하듯이, 공모전의 백미는 당선자 발표를 기다리며 당선소감을 준비하는 데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당선소감을 준비하고 있다.

공모전에 중독된 어느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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