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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응모한다 고로 존재한다

등록 2013-06-19 22:15수정 2013-06-20 22:08

일러스트레이션 권오환
일러스트레이션 권오환
[esc] 커버스토리 보통 사람들 공모전 열풍

타율 7할대의 공모전 ‘상테크’족이 있는가 하면 은근과 끈기로 매일 사연을 보내는 공모 예술가들도 있다.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만큼 문턱도 낮다. 그럼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무턱대고 달려들기 전에 만만찮은 이 세계부터 연구해볼 일이다.
상금이 물론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겐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써먹을 곳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한국민속촌 개 이름을 지어주세요. 서울 심야버스 이름을 찾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 승리 기원 슬로건을 공모합니다…. 호응도 뜨거웠다. 한국민속촌 개 이름짓기는 1만명이, 현대차에서 주최한 월드컵 슬로건 공모전은 8000명 넘는 사람들이 응모했다. 6월10일 공모전 정보 사이트인 씽굿(www.thecontest.com)에서 꼽아보니 현재 진행중인 공모전만 220개다. 씽굿 이동조 미디어 국장은 “220개 중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일반 대상 공모전이 절반을 넘는다. 예전엔 공모전이 대학생 취업준비용이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일반인 응모자가 대학생들의 2~3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공모전이 당신을 유혹한다. 우선은 공모전으로 받게 되는 크고 작은 선물 때문이다. 많게는 1만 대 1의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다음 카페 ‘경품으로 살림 장만하는 사람들’ 회원인 김수정(가명)씨가 최근 3달 동안 받은 상품 중 값나가는 것들만 꼽아봐도 침대 2개, 공기청정기, 전기 압력밥솥, 청소기, 노트북 등이고 상품권 금액을 합해보면 150만원 정도 된단다. 조카에게 선물한 유모차, 카시트 같은 생활용품들은 세지도 않았다. 회사를 다니며 두 아이를 키우는 그는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잠 줄여가며 공모전에 응모한다. 어디어디 응모했는지 다 헤아리긴 어렵다. “공모전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작은 이벤트들이에요. 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모두 사진 찍고 기록해두었다가 공모전 소식을 들으면 바로 응모하죠. 그때그때 주제에 맞춰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까 미리 해두는 거예요.” ‘경품으로 살림 장만하는 사람들’ 운영자도 “공모전은 대부분 예측 가능하다. 1월에는 새해 소망, 4월엔 사진, 5월은 글쓰기 식으로 반복되는 흐름이 있고 여기에 요즘 유행하는 ‘진격의~’ 식으로 트렌드가 반영된다”고 한다.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문학, 만화 공모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준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잠깐이면 된다. 그러나 빨라야 한다. 서울 심야버스 이름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된 이름은 ‘올빼미 버스’. 이 공모전에서 ‘올빼미’를 써낸 사람은 20명이지만 가장 먼저 응모한 한명이 뽑혔다. “사람들이 많이들 생각할 만한 이름 같아서 밤 12시를 기다려 공모전을 시작하자마자 응모했다”는 당선자는 “공공기관에서 하는 공모전에서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친근한 명칭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심야버스 이름짓기’를 담당한 서울시 정책담당관은 “기발한 캐릭터를 얻으려고 한 게 아니라 시민들에게 심야버스를 알릴 목적으로 공모전을 열었다”고 했다. 씽굿 이동조 미디어 국장은 “공모전 흐름이 바뀌었다. 공공기관·공기업에서 일반인 대상 캠페인이 크게 늘었다. 기업의 관심사가 대학생이라면 공공기관은 대국민 공모전을 좋아한다”고 했다.

공모전 상금 중 가장 많은 편인 디자인상은 700만원, 유시시(UCC) 선정작은 보통 300만원 정도다. 1년에 500건 넘게 열리는 유시시 공모전이 첨단이라면 수시로 시청자들의 사연을 찾는 라디오는 공모전의 고전이다. 라디오 시청자 참여 코너에 매일 응모하는 사람도 많다.

상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상테크’족들은 이렇게 태어났지만 그들을 웃게 하는 건 꼭 돈만은 아니다. 김수정씨만 해도 “부모님이 요즘 편찮으신 이야기, 아기가 아팠을 때의 이야기를 쓰면서 혼자 많이 울었다. 아니면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을 되새김질하기도 한다. 아기 키우면서 웃을 일도 많은데 웃고 그냥 지나가지 않고 그 이야기로 상을 받으니 매 순간을 더욱 의미있게 만드는 셈”이라고 했다. 대전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홍경석(54)씨는 자타공인 글쓰기 마니아다. 한 사이트에 ‘공모전 정보 알리미’를 신청해두고 일년에 20번은 글쓰기 공모전에 응모하는데다가 300가지 넘는 기업 사외보를 받아 보면서 투고할 곳을 추려낸다.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국민학교(초등학교)만 졸업했다가 나이 오십에 사이버대학교에 진학했다. 어머니 이야기며 내 인생을 소재 삼아 계속 쓴다. 공모전에 떨어진 글들이 아까워서 하루 한편씩은 라디오나 잡지에도 빠짐없이 기고한다.” 임금 노동과는 관계없는 일을 헤아릴 수 없는 성실함으로 계속 하는 그들은 공모 예술가에 가깝다.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에는 아직도 홍경석씨처럼 매일 보내오는 응모작이 많다. 봄이면 여는 신춘편지 공모전에는 사연들이 쌓인다.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박혜영 국장은 “학력이 낮고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편지들을 보내온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쓰러져 자야 마땅한데 어렵게 응모한다. 그들에게는 글쓰기가, 응모 자체가 힐링인 것 같다”고 전한다. 제작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없이 응모하며 글쓰기가 나날이 향상되는 이들도 많단다. 서울 심야버스 이름짓기 당선자도 “지금은 서비스업에 종사하지만 원래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상품 은 크지 않지만 내가 무언가를 지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고 했다.

알릴 곳 없었던 재능과 관심사를 짤막한 한줄에 또는 절절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원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살고 있는 나를 위안하기 위해 응모한다. 이동조 국장은 “상금이 물론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겐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써먹을 곳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작은 공모전이라도 당선되면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치와 능력을 증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그것이 공모전의 중독성이다. 기껏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는데 떨어지면 오기가 생기고 작은 상이라도 받으면 중독된다”고 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작은 인정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비법은 따로 있다

<1> 분야를 확실히 정해 집중 공략하는 것이 좋다. 공모전이 많이 열리는 분야는 아이디어, 디자인, 슬로건, 글쓰기 등인데 글쓰기는 쉬우면서도 노력한 만큼 솜씨가 늘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다.

<2> 기존 수상작들의 완성도를 살피고 주최사가 어디에 반응하는지를 점검하라. 사기업은 기발하고 유머가 있는 작품을 좋아하고 공기업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3> 최종적으로 완성도를 확인하라.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좋지만 준비된 작품이 더 유리하다. 응모작품은 가이드라인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제 경쟁률은 높지 않다고 심사위원들은 말한다.

<4>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것도 좋다. 요즘엔 에스엔에스(SNS)와 결합해 홍보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당선된다. 도움말 씽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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