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학교 앞 분식집 맛 탐험에 나선 대일외고 1학년 불어반 학생들. 사진 왼쪽부터 김유정, 박하은양과 황인재. 윤병세군.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학교 앞 분식집 맛집 탐방
교문 앞의 분식집은 배고픈 학생들의 참새방앗간이다. 매콤한 떡볶이, 뜨끈한 어묵 하나가 지친 어깨에 기운을 북돋워준다.
그 맛을, 아줌마의 푸근한 인심을 못 잊어 나이든 졸업생들도 다시 찾아가는 곳, 고등학생 4명과 소문난 학교 앞 분식점들을 뒤졌다.
교문 앞의 분식집은 배고픈 학생들의 참새방앗간이다. 매콤한 떡볶이, 뜨끈한 어묵 하나가 지친 어깨에 기운을 북돋워준다.
그 맛을, 아줌마의 푸근한 인심을 못 잊어 나이든 졸업생들도 다시 찾아가는 곳, 고등학생 4명과 소문난 학교 앞 분식점들을 뒤졌다.
황인재(17·대일외고 1학년)군은 맛집 탐험가다. 일찍이 그의 재능을 알아본 ‘도봉엔’ 마을신문 발행인 이창림씨는 서울 도봉구 일대 맛집 기사를 그에게 맡겼다. 중학생이었던 황군은 서부의 총잡이처럼 냉혹한 눈썰미로 혹평과 칭찬을 마구 쏟아내 동네 아줌마와 친구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가 같은 반 먹방 친구들인 윤병세군, 김유정과 박하은양을 불러내 서울시내 내로라하는 ‘우리 학교 앞 분식점’의 맛 습격에 나섰다. 성인이 돼서도 분식점은 기억의 한 자락에 추억의 리본을 달아 준다. 먹방 고딩들의 습격기를 esc가 생중계한다.
지난 3일 오전 9시께 분식집 탐험가들이 모였다. ‘○○학교 앞’이란 조건을 충족시킨 장안에 소문난 8곳의 맛 투어가 시작됐다.
황인재(이하 황) 뭇국 맛인가? 매운데. 평소 먹던 떡볶이 맛이 안 나. 무슨 맛인지 모르겠어.
윤병세(이하 윤) 안 매워. 순대가 맛있다. 허파 먹어봐. 떡볶이는 너무 달고 치킨소스 맛 나!
맛 탐험의 지존 황군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절대미각 윤병세군이 반대 의견을 낸다. 첫 여행지는 강동구 영파여고 앞 ‘셀프하우스’. 대표선수는 ‘마늘떡볶이’.
박하은(이하 박), 김유정(이하 김) (매운 것은) 마늘이 있어서 그래. 마늘 들어간 육개장 떠올라 뭇국 생각나는 거야.
윤 맛이 특이해서 자주 당기지는 않을 거 같아.
황 중학교 때는 수업 끝나면 분식집으로 달려 갔지. 고등학생 되니깐 떡볶이 먹을 시간도 없어.
박 이제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깐 오히려 떡볶이보다 더 맛있는 거 찾게 돼.
황 매울 때 이 악물고 참으면 땀이 나오잖아, 그게 좋아. 처음에 혀가 아팠어. 계속 먹으니깐 안 아프네.
분식집을 빠져나오자 탐험가들은 불편했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너무 다 셀프야. 좀 불친절해.”(박) “어수선해.”(김) “이름이 셀프하우스잖아, 재밌어. 근데 치우는 것까지 셀프라니!”(황)
잠실여고, 중대초교, 일신여중 등 학교가 몰려 있는 곳의 송파구 ‘모꼬지에’에 도착하자 얼굴 표정이 달라진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서는 즉석떡볶이 끓는 소리가 들린다.
“어둡고 침침한 이런 분위기 좋아. 침대처럼 편해.”(황) “아늑하다. 딸기빙수랑 짜장이 있네. (사리로) 치즈도 주문하자.”(박) “떡볶이가 기본 2인분이야. 4명 오면 기본 3인분 주문해야 한대. 좀 심한대?”(윤) 탐험가들은 ‘혼합떡볶이’(고추장과 짜장소스가 반씩)에 도전한다. “제일 잘 나간다”는 종업원의 말에 귀가 솔깃하다.
황 즉석떡볶인데 국물이 많네. 여고 앞이라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른데. 남고 앞에는 이런 데가 없어. 우리들은 피시방 가기 바쁘잖아.
윤 오묘한 맛인데? 떡에 비해 라면사리가 너무 많군. 라볶기에 떡 넣은 꼴이야. 밥 볶은 게 훨씬 낫다.
황 와! 괜찮은데. 면이 있어야 확실히 맛있어. 짜파구리 맛이 나. 거기다 밥 넣은 거 같아. 분식집치고 누나(종업원) 서비스가 고급스럽다. 달콤한 딸기빙수가 마지막 입맛을 잡아주네. 근데 약간 해열제 맛 나지 않아?
김 치즈를 넣어서 좋아. 빙수는 체리 맛이야. 짜장 맛 느끼려면 ‘혼합’ 보다는 ‘짜장’ 주문하는 게 낫겠어.
윤 주방 들여다보니 할머니 장갑도 안 끼시고 식재료 담으시던데, 젊은 사람이 그렇게 하면 더럽다 하고 할머니가 하면 ‘할머니의 손맛’ 하면서 좋다 하잖아. 결국 같은 건데.
24년 전부터 ‘모꼬지에’를 운영한 구종순 사장은 달라진 분식점 풍경에 관해 말한다. “예전에는 학생들만 많았지. 요즘은 아니다.” 약 5년 전부터 학생들은 줄고 그 자리는 식도락가나 자녀를 동반한 졸업생들로 채워졌다. 분식집의 성공은 떡볶이의 맛에 달렸다.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혼분식’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분식집들이 주로 밀떡볶이였던 배경이다. 90년대 들어 건강에 관심이 커지면서 고급 쌀떡볶이가 등장했고 최근에는 밀과 쌀을 혼합한 떡볶이가 대세다. 과거 밀떡볶이가 그리운 이들의 입맛이 영향을 미쳤다. 초등학교 앞 분식점은 닭강정, 미니돈가스, 컵볶이(일회용 컵에 넣어주는 떡볶이) 등으로까지 메뉴가 확장됐다. 맛 탐험가들의 발걸음이 강남구 도곡동 은광여고 앞 ‘작은 공간’으로 또 향한다.
윤 뱃속에서 더 이상 넣지 말라는데 또 들어가네. 떡의 양에 비해 사리가 너무 많다.
박 만두, 쫄면, 어묵이 다채롭게 들어갔구나.
“분식집은 소박한 데가 더 좋아”
“후식이 서비스로 나왔으면 좋겠어”
“아줌마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뿌듯해”
“가격이 적당해야 자주 오지” 황 첫맛이 달콤해서 강렬한데. 사람 많아서 자꾸 빨리 먹게 돼. 그게 좀 불편하다. 모꼬지에처럼 달콤한 빙수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김 벽에 낙서할 수 있는 게 재밌네.
서울 강남권의 지존 반포동의 애플하우스는 예상외로 평가가 썩 좋지 않았다. “떡이 딱딱하고 매워. 겉이 너무 말랐어. 종업원의 표정이 안 좋아.”(황) “너무 질겨. 순대는 맛있어.”(박) “만두무침은 마음에 드는데, 먹고 있을 때 옆에서 종업원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녀서 안 좋아 보여.”(김) “왜 유명하지? 물이 이렇게 맛있기는 처음이다.”(윤)
동작구 상도동 ‘오시오떡볶이’로 향했다. 49년째 영업하는 이곳은 낡은 인테리어가 자랑인 곳이다. “진짜 맛있다. 최고 최고! 면 없어서 좋아”(윤) “좋다. 좋다. 국물이 많은데도 맛나. 다시 배고파져.”(황) “국물에 푹 담겨 나오는 만두 진짜 마음에 들어. 바삭해.”(김)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어. 양도 마음에 들어. 단골들 많을 거 같지.”(박)
‘오시오떡볶이’의 친절은 의견이 충돌했다. “아저씨 무서워!”(김) “아냐. 화장실 알려주시는데 정말 친절했는데.”(박) “프라이드가 강하신 거 같아. 자부심 말이야. 역사가 오래된 중국집 느낌이 나.”(황) 윤병세군이 만두를 식탁에 떨어뜨리자 ‘3초설’ 논란이 일어났다. “주워 먹어! 3초 안에 먹으면 세균 없대. <스폰지밥>에서 그랬어.”(황) “스폰지밥이 아니라 <스펀지>(한국방송 프로그램)라고.”(김과 박)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윤 분식집은 거창한 거보다 소박한 곳이 좋아.
이들에게도 분식집은 얘기보따리 제조공장이다. 황인재군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분식집을 갔다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 “초등학생인 줄 아시고 파만 있는 컵떡볶이를 주신 거야. 주인에게 물었지, 왜 떡이 없냐고.” 파가 제일 맛있다는 주인의 답을 듣고 울컥했지만 항의할 용기는 없었다고. 초등학교 시절 분식집 괴담도 화제에 올랐다. “피카츄처럼 생긴 피카츄 돈가스를 무척 좋아했어. 그런데 병아리 갈아서 만든다는 소문 돌았지. 먹으면서도 궁금했어.” 윤병세군의 말이다. 김유정양이 “닭꼬치는 원래 비둘기라고 했잖아” 말하자 “워낙 쌌잖아, 500원 했나?” 박하은양이 대꾸한다.
구로구 고척동 ‘불난집국물떡볶이’(상호등록 버무리)는 생긴 지 2년도 안 된 신생 분식집이다. 학원을 들락거리는 청소년이 주고객이다. 왕김밥, 꼬마김밥이 20가지 넘는다. 국물떡볶이에 콩나물이 있는 점과 500원 하는 꼬마김밥이 특색 있다고 학생들은 평했다. “충무로김밥 괜찮다”고 황인재군이 말하자 다른 친구들이 “충무김밥이겠지”라고 정정한다. 박장대소가 터진다.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엄마손떡볶기’는 “카레나 한약 맛이 난다”, “좀 쓰다”로 평을 정리했다. 주인장의 친절은 점수를 땄다. 1977년에 문 연 성북구 정릉동 ‘숭덕분식’. 분식집을 지킨 노부부 대신 요즘은 딸 엄지영씨 부부가 운영한다. 여기서는 튀김에 최고점을 줬다.
이들이 분식집에 바라는 바는 의외로 소박하다. 김양은 “아줌마가 제 이름을 외워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후식이 서비스로 나왔으면” 하는 것은 황군의, “정직한 재료를 썼으면 한다”는 윤군의 바람이다. “적당한 가격을 바란다”는 박양의 소망이다. 이날 최소 30인분 이상 먹어치운 이들. “새해 3일 지났는데 일년치 다 먹었다”는 윤군의 말에 “많이 먹은 떡 때문에 정신이 없어. 뇌의 주름이 펴졌어”라고 김양이 괴로움을 토로한다. “떡이 목구멍까지 차서 올라와. 토하고 싶어”라고 하소연하면서도 새로운 맛집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는 이들은, 역시나 생기 가득한 청춘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송파2동 잠실여고, 일신여중과 여상, 가락고 주변의 분식집 ‘모꼬지에’의 딸기빙수.
학생들이 최고 맛있다는 평을 한 상도동의 ‘오시오떡볶이’.
‘오시오떡볶이’의 떡볶이와 튀김.
“후식이 서비스로 나왔으면 좋겠어”
“아줌마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뿌듯해”
“가격이 적당해야 자주 오지” 황 첫맛이 달콤해서 강렬한데. 사람 많아서 자꾸 빨리 먹게 돼. 그게 좀 불편하다. 모꼬지에처럼 달콤한 빙수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김 벽에 낙서할 수 있는 게 재밌네.
정릉2동 ‘숭덕분식’의 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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