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죽은 요리사 친구 윤정진에 대해 쓴 일이 있다. 이탈리아 시골에서 견습요리사로 죽을 고생을 하던 내게 그가 고추장을 보내주었던 것이다. 모국어 한마디 나눌 사람 없는 그곳에서 고추장에 밥을 비비며, 나는 견디어낼 힘을 얻었다. 이탈리아는 아무리 한국과 비슷하니 뭐니 해도 서양이었고, 물과 음식이 모두 낯설어서 이방인에게 힘겨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먹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흔한 중국식재료도 전혀 없고, 심지어 유럽 어디서든 팔던 간장도 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음식은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에 작용한다. 몸의 격리는 정신도 멀리 떨어뜨려버린다. 향수병이 오고, 그것을 달래는 방법은 그나마 모국의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다. 그래서 어떻게든 시간이 나면 한국식 비슷한 음식을 찾아 헤매게 마련이다. 시장에 나온 갈치를 보고 소금 쳐서 구워 먹던 기억-요즘 우리가 많이 수입하는 세네갈산이 바로 지중해 갈치와 비슷하다-고등어에 이탈리아 무를 넣고 소금만 넣고 조려 먹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도 익숙한 어떤 음식을 발견했다. 시장을 도는데, 시퍼런 채소 다발이 대충 마른 채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맞다. 바로 시래기였다. 물어보니 파는 것이란다. 우리 돈으로 500원에 한 다발을 사서 일하는 식당에 갔다. 주방장이 왜 샀느냐고 묻는다. 나는 모른다고, 다만 한국에서는 무 줄기를 잘라서 말려 먹는데 그것과 비슷해서 샀다고 답했다. 그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한국인도 무를 먹니?”라고 물었다. “이것이 무청입니까?” 나는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전율이 일었다. 이탈리아어로 치메 디 라파(cime di rapa), 즉 무의 줄기였다. 이탈리아의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란다. 고기를 먹을 수 없던 서민들은 옛날부터 무청을 잘라 볶아서 파스타에 버무려 먹었다. ‘작은 귀’라는 뜻의 오레키에테(Orecchiette), 즉 동그란 반구처럼 생긴 파스타에 오일과 함께 볶는 파스타다. 주방장이 무청을 받아들더니 묵묵히 요리를 했다. 숭덩숭덩 썰어 고춧가루를 치고 마늘과 함께 오일에 볶았다. 그리고 파스타를 넣어 버무렸다. 쌉쌀하면서 진한 푸른 채소의 향에 길게 번지는 시래기 같은 맛! 나는 남은 것으로 시래기볶음을 만들었다. 마늘을 다져 넣고 없는 참기름 대신 올리브오일을 넣었다. 그가 한 입 먹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전혀 이국적이지 않아.” 친근하다는 다른 표현이었다. 그는 마치 생각났다는 듯이 이 요리를 메뉴에 넣었다. 쑥을 반죽한 작은 뇨키(떡처럼 생긴 파스타의 일종)에 시래기 소스. 사실, 내 입에 그렇게 맞는 요리는 아니었지만, 고향 집이 생각나면 이 소스를 꺼내어 밥에 얹어 먹었다. ‘아아, 먼 시칠리아에서 시래기를 얹은 덮밥이라니!’ 이러면서 말이다. 지난달에 멀리 강원도에 갔다. 한 가정집 서늘한 응달 북벽에 시래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시래기는 마르는 것이 아니라 익는 것이다. 입에 침이 고였다. 우리 식당에서 시래기파스타를 팔아볼까. 혹시 향수병에 빠진 이탈리아인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