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평양냉면 육수내는 법, 주인장 맘대로

등록 2017-04-26 20:31수정 2017-04-26 20:54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대전 숯골원냉면의 꿩냉면. 사진 박미향 기자
대전 숯골원냉면의 꿩냉면. 사진 박미향 기자
“고기 드시면 냉면 공짜!”

이런 광고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냉면 애호가들 가슴을 후비는 말이다. 아아, 그깟 고기에 냉면이 부록이라니. 그러면서 결심한다. 내가 냉면집 하면 고기는 공짜다. 가능할까. 원가를 뽑아봤다. 이래 봬도 요식업 짬밥이 있다. 국산 메밀 100%에 한우 양지와 사태, 뭐 꿩도 좀 섞는다.

메밀값은 차이가 큰데 국산은 어마어마하다. 밀가루나 전분의 스무 배는 좋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중국산이나 미국산을 쓰는데도 열 배는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냉면집 사리 추가가 7000원짜리도 있는 거다. 게다가 메밀을 잘 쓰자면 관리비용도 든다. 저온창고에 보관하고 직접 제분하기도 한다. 원가가 하늘로 치솟는다. 한우 양지와 사태? 아시다시피 늘 고공행진이다. 꿩은 사육한 걸로 쓰게 마련인데, 이것도 한우 고깃값 정도 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냉면 뽑자면 기술자도 문제다. 장안에 ‘평냉 면장’은 손으로 꼽는다. 함흥냉면 뽑는 이들은 많아도 평양식은 드물다는 얘기다. 스카우트니 거액이니 하는 말이 늘 돌아다닌다. 사람을 못 구하니 평양냉면 하려는 주인들은 꾀를 냈다. 어디어디 이름난 집에서 정년퇴직하는 노장들을 끌어오는 거다. 요즘 새로 생긴 몇몇 집들은 내로라하는 집의 ‘은퇴 선수’다. 이를테면, 안정환과 서장훈과 선동열씨에게 다시 선수 옷을 입힌 셈이다. 이게 다 비용이다. 한 그릇 1만원(더러 1만1000원에 순면 1만7000원까지!)의 냉면 원가는 이렇게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널린 게 값싼 수입고기다. 냉면 한 1만5000원쯤 받으면 고기 1인분 얼마든지 서비스할 수 있다.

날이 슬슬 더워진다. 냉면 안 먹던 이들도 점심에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당긴다. 평양식이라면 메밀 함량을 따진다. 국수야 원래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게 마련이다. 평양식은 더 그렇다. 메밀을 요즘은 건강식품이라고 한다. 혈압도 내리고 칼로리도 낮다고 말이다. 그렇다, 칼로리. 메밀 많이 넣은 좋은 냉면집은 금세 배가 고프다. 혹시 먹고 소화가 안 되고 잘 꺼지지 않거들랑 메밀 함량을 의심해볼 수 있다. 여기서 의문 한 가지. 도대체 메밀향이란 뭘까. 미식가들은 평양냉면 먹고는 메밀향이 난다던데 진짜일까. 나긴 난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은어의 수박향 같은 거다. 은어에서 수박향 진짜 맡아본 사람 손들어보시라! 자연산으로 이끼 먹고 자란 은어에서 더러 그런 향이 난다고 하는데, 나는 그저 물비린내를 맡아봤을 뿐이다. 메밀향도 그렇다. 제철(늦가을)이나 잘 보관한 메밀을 갓 도정하고 갈면 조금 난다(고 한다). 일본의 몇 백년 되었다는 소바집에 제일 비싼 3만원짜리 한 그릇 시켜서 아무리 온몸의 감각을 다 열어도 메밀향이 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메밀향의 실체는 다른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혹시 소다가 아닐까. 몇몇 유명 짜한 집에서 냉면을 받으면 소다향이 확 난다. 어려서부터 소다 넣은 달고나 먹고, 소다향 넘치는 짜장면 먹고 자란 몸이라 금세 안다. 미식가 여러분, 소다향과 메밀향을 구분하는 법을 제게 좀 가르쳐줍쇼.

대전 유성에는 오래된 평양냉면집이 있다. 그 집 육수는 좀 특이하다. 닭을 쓴다. 닭고기에 닭뼈, 동치미 국물을 배합한다.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평양냉면의 육수는 정해진 게 없다. 소고기 쓰면 고급이고 닭 쓰면 저급이다, 이런 얘기는 말도 안 된다. 냉면 냄비 잡은 사람 맘이다.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료리’ 관련 책을 두루 보고, 오래된 문헌을 뒤져도 그렇다. 닭과 소고기, 돼지고기를 두루 쓴다. 닭+소고기, 소고기+돼지고기, 소고기 단독, 꿩 단독, 꿩+소고기 등 얼마든지 배합이 바뀐다. 심지어 김일성이 “평양랭면은 조선의 자랑거리”라고 훈시한 책에는 ‘소, 돼지, 닭’을 섞어 쓰라고 나와 있다. 이것이 전부도 아니다. 뼈가 있다. 소뼈, 닭뼈에 까나리액젓을 더하는 스타일도 있다. 소뼈는 부위별로 또 나뉜다. 사골, 잡뼈, 갈비뼈. 여기에 김칫국물(동치미 국물)을 어떻게 섞느냐가 또 변수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원조”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냉부심과 면스플레인도 좋지만 우리가 여전히 알 수 없는 게 냉면의 세계니까. 참, 아직도 외국인에게 물어본 혐오 한식에 냉면이 3등 안에 들고 있을까.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정복자의 휴양지에서 여행자의 산길로…근데 호랑이가? [ESC] 1.

정복자의 휴양지에서 여행자의 산길로…근데 호랑이가? [ESC]

‘미친놈’ 소리 들으며 3대가 키우는 정원, 세계적 명소로 2.

‘미친놈’ 소리 들으며 3대가 키우는 정원, 세계적 명소로

[ESC] “1시간 만에 사과 500박스 팔았어요!”…‘라방’의 세계 3.

[ESC] “1시간 만에 사과 500박스 팔았어요!”…‘라방’의 세계

임신 때도 훈련 ‘열혈 철인’…일·육아·운동 3박자 과제 [ESC] 4.

임신 때도 훈련 ‘열혈 철인’…일·육아·운동 3박자 과제 [ESC]

[ESC] ‘관계’를 꺼린다고 불감증일까요? 5.

[ESC] ‘관계’를 꺼린다고 불감증일까요?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