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파스타를 만드는 건 직업인데, 다른 국수는 취미생활이다. 내 얘기다. 달걀을 깨뜨려 넣고 밀가루를 주물러 생면을 만든다. 이건 일이니 결과가 좋다. 윤기 있고 매끈하며 맛있다. 그런데 다른 국수는 젬병이다. 칼국수는 반죽이 질면 칼에 들러붙고, 되면 씹을 때 식감이 안 좋다. 전문가에게 물으니, “그냥 사 먹어”란다. 가르쳐달라고 조르자 “밀가루 살 때 혹시 제조일자 보니?”라고 되묻는다.
병맥주 살 때도 제조일자 보면서 밀가루는 그래 본 적이 없다. 한여름, 그 싼 밀가루를 수입해 올 때 냉장 컨테이너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제분하여 제품을 만들어서 우유처럼 냉장유통할 리도 없다. 품질에 큰 차이는 없어서겠지만, 예민한 미식가는 차이를 느낀다고 한다. 나쁜 보관환경에서 오래 묵은 밀가루는 맛이 떨어진다. 장마철이 지나면, 가루가 멍울져 뭉치기도 한다. 좋은 국수를 만들려면, 일단 ‘체에 쳐서 써라’는 금언이 이유가 있다. 칼국수 실패의 또다른 이유는 글루텐 때문이다. 너무 치대서 글루텐이 세게 발달하면, 삶을 때 끊어진다. 너무 덜 치대도 탄력이 없다. ‘적당히’.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라면도 식당에서 사 먹으면 더 맛있다. 노하우가 있으리라. 메밀국수를 좋아해서 만들어 먹곤 하는데, 이것도 실패하기 딱 좋다. 밀가루는 어지간히 주무르면 국수 꼴을 갖추지만, 메밀은 어림도 없다. 글루텐이 아주 적어서 반죽한다고 해도 탄력이 생기지 않는다. 일본식 메밀국수 흉내 내서 ‘니하치’(메밀 8 대 밀가루 2)나 ‘주와리’(메밀 100%)를 시도해보곤 손을 들었다. 홍두깨로 밀 때 이미 죽죽 찢어진다. 역시 전문가에게 에스오에스(SOS)! “전분을 조금 섞고, 가능하면 ‘5 대 5’(밀가루와 메밀의 함량. 일본어로 도와리)로 해봐.” 제법 괜찮은 메밀국수가 나온다. 시중에 막국수 가루라고 팔리는 걸 보면 함량 많은 게 30% 미만이니, 50%의 메밀은 윗길이다. 콩 삶는 냄새와 비슷한 메밀향도 난다. 뚝뚝 끊어지는 ‘본토 소바’ 흉내는 어렵지만, 그럴듯한 국수가 된다. 적당히 쫄깃하고 부드럽다. 언젠가 ‘8 대 2’ 메밀국수를 만들다가 결국은 수제비가 된 아픈 기억이 있으니, 그래도 국수 꼴을 만들어주는 ‘5 대 5’는 얼마나 다행인가.
전문가에게 이유를 물었다. 왜 집에서 ‘8 대 2’가 잘 안되는 걸까. “집에서는 강력한 힘의 압출식 제면기를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대답. 냉면집에서 볼 수 있는, 단단하게 반죽해서 유압식 장비의 힘으로 쭉 내리는 기계 말이다. 메밀국수 해 먹겠다고 그 기계를 살 수는 없으니, 포기하고 만다. 그러자 전문가의 기습. “그런데 왜 꼭 메밀 함량 높은 국수를 해 먹겠다는 거지?” 틀린 말도 아니다. 메밀이 밀가루보다 더 가치 있는 곡물도 아니었다. 북미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대량의 밀가루가 쏟아지기 전까지는. 메밀이 귀해지면서 생긴 일종의 희소성에 대한 갈망일까. 국산 메밀가루 1㎏에 2만원, 밀가루는 2천원 미만. 다시 전문가의 충고. “야, 칼국수나 제대로 해봐. 엉뚱한 짓 하지 말고.” 네. 죄송합니다.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
일본식 메밀국수.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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