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국수는 ‘물리적’ 음식이라고 한 적이 있다. 밥 먹을 때는 소리 내지 않는 것이 예의이지만, 국수만은 예외로 두곤 한다. 후루룩, 국수는 빨아들이며 먹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강원도의 국수 중에 콧등치기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그 명명의 내력이 느껴진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그럴지언정, 한국은 국수 먹을 때도 소리 안 내는 것이 예의란 주장도 있다. 17세기 조선사람 이덕무의 저술 <사소절>에 ‘음식 먹을 때 소리 내지 않아야 한다’는 유교적 예절에 비추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책에 ‘국수’를 콕 집어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니 논란이 있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탈리아에서 국수(스파게티)를 먹을 때 후루룩 소리를 내는 건 결례다. 그런데 이 스파게티(사진)란 아주 물리적인 음식이다. 좋은 스파게티를 가르는 기준에는 ‘표면의 흠’이 있다. 소스를 국수 표면에 잘 붙도록 가공하는 물리적 기술이다. 스파게티는 매끈해 보이지만, 표면에 미세한 흠이 아주 많다. 손으로 만져보면 거칠거칠하다. 이 흠을 미세하게 많이 만들기 위해서 제조회사들은 공을 들인다. 표면이 거친 구리로 된 국수 노즐을 써서 인위적으로 흠을 가공한다. 토마토소스가 스파게티에 찰싹 붙게 가공한 좋은 스파게티는 입에 들어올 때 풍성한 맛을 준다. 다 먹고 나서도 그릇에 소스만 덩그러니 남지 않는다. 스파게티가 입으로 들어갈 때 악착같이 다 따라붙기 때문이다. 스파게티를 삶을 때 면이 서로 달라붙지 말라고 올리브유를 한 숟갈 넣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요리를 망친다. 기름이 스파게티 표면에 붙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소스를 빨아들일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먹는 한 그릇의 짜장면에도 물리적 고민(?)이 들어 있다. 배달이 많아지고 점점 더 배달 거리가 길어지면서 짜장면에는 더 많은 식용 소다가 들어가게 되었다. 면이 붇는 걸 방지하고 면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렇게 가공된 면은 배달한 후에 먹도록 ‘최적화’되었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바로 주문해서 먹으면 면이 질기고 너무 쫄깃하며 소스가 잘 붙지 않는다. 국수 한 젓가락을 들어 올릴 때, 검은 짜장소스가 적당히 붙어서 입에 들어오는 맛이 떨어진다. 손으로 치는 짜장면은 잘 보면 소스가 아주 잘 붙는 걸 알 수 있다. 면의 색깔도 노랗지 않고 하얗다. 면의 특성상 배달을 못하기 때문에 소다의 양과 특성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국수의 길이에도 물리적인 해석이 뒤따른다. 국수보다 스파게티의 길이가 길다. 국수는 부드럽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감아올릴 때 잘 붙는다. 따라서 길이를 아주 길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스파게티는 딱딱한 면의 특성이 있어서 너무 짧으면 포크로 잘 말아 올리기 힘들다. 스파게티가 국수보다 길게 출시되는 이유다. 우동은 보통 아주 길게 만든다. 흔히 일본 우동의 본토라고 말하는 사누키의 관습 때문이다. 목구멍이 미어지게 먹을 때 일어나는 물리적 통증이 있어야 진짜 사누키 우동이라고 한다. 그러자면 우동 면발이 아주 길어야 한다. 식탁에 놓인 우동이 사람의 목을 지나 뱃속까지 길게 이어지는 길이가 바로 사누키 우동 면발의 길이라고 한다.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
스파게티. 사진 박찬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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