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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껴안은 정어리 파스타

등록 2015-08-05 19:35수정 2015-08-06 11:23

[매거진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며칠 전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더니 귀한 생선이 몇 상자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정어리였다. 나이 쉰 무렵의 우리 또래들 중에 군대 다녀온 이들이라면 이를 갈 바로 그 생선! 군대에 양념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으니, 안 그래도 비린 생선이 더 비렸다. 찌개를 만들어서 나왔는데, 가시도 왜 그리 많고 국물은 흥건하던지. 아마 취사병들도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정어리 메뉴만 나오면 식당 근처가 비린내로 진동을 했으니까. 정어리는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흔했다. 특히 동해안 쪽에서 많이 잡혔다. 포항시 구룡포에 가면 과거 일본인이 거주하던 지역이 관광지로 조성되어 관광객을 모은다. 가슴 아픈 역사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정어리가 많은 이곳에 몰려와 세력을 이뤘다. 최신식 발동기가 달린 선단을 구축해서 동해안의 정어리를 싹쓸이했다. 정어리는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고, 그것을 짜내어 전쟁물자로 썼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와 태평양에서 제해권을 미국에 넘겨주고, 늘 석유가 부족했던 일본은 석유 대용품을 구하느라 혈안이 되었다. 이는 화약의 원료이기도 하였다. 그러니 정어리가 많은 구룡포에 일본 배가 몰려들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구룡포에서도 정어리가 잡히지 않는다. 아니, 한반도 바다 전체에서 씨가 마른 것 같다. 십수년 전부터 정어리가 시장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 흔하던 정어리통조림도 보기 힘들다. 대개 원양 꽁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멸치, 정어리, 고등어는 사촌이다. 갈라 보면 몸도 비슷하다. 맛도 닮았다. 그러나 정어리는 정어리만의 맛이 있다. 기름기가 유독 많기 때문인지 더 진하고 자극적이랄까. 특히 정어리 튀김은 고등어가 따라올 수 없는 맛이다.

정어리 스파게티. 사진 박찬일 제공
정어리 스파게티. 사진 박찬일 제공
이탈리아인들은 정어리를 아주 좋아한다. 튀기거나 절여서, 아니면 파스타를 해 먹는다. 정어리 스파게티(사진)는 베스트셀러다. 고급식당에서 팔리지는 않고, 서민식당이나 어머니 솜씨의 가정식이다. 푸른 바다가 있는 시칠리아 것이 유명하다. 건포도와 회향을 넣는 것이 특이하다. 화이트와인으로 맛을 내고, 빵가루를 뿌려 낸다. 바삭하고 고소하고 진한 맛이다. 고등어로도 스파게티를 만들고 멸치로도 만드니까 등푸른생선 삼총사 파스타다. 청어는 같은 등푸른생선이나 이탈리아의 더운 바다에서는 잡히지 않는다. 정어리는 고등어의 파도 무늬와 달리 동그란 반점이 있다. 마치 커다란 삼치의 표면 같다. 정어리를 구하면 빨리 요리해야 한다. 금세 변질되기 때문이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뺀 뒤 필릿(fillet·생선을 먹기 좋게 손질하는 것)을 떠낸다. 비늘을 긁고 껍질째 올리브유에 절인다. 마늘을 몇 점 두어서 맛을 들인다. 스파게티를 삶고 팬에 올리브유를 둘러 마늘을 볶는다. 정어리 살을 으깨 넣고 안초비 젓으로 양념을 한다. 매운 고춧가루(청양고추도 좋다)를 술술 뿌리고, 마지막에 빵가루를 갈색으로 구워 얹으면 아주 맛있는 정어리 스파게티가 된다. 드라이한 화이트와인, 없으면 쌉쌀한 맛의 맥주 한잔을 곁들여 먹는다. 여름밤의 야식으로 먹는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수산시장의 그 정어리를 상자째 사서 일하는 식당에서 만들어 본다. 잊고 있던 우리 바다의 생선.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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