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 진짜 중국음식을 먹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조선족 이주 붐이 일면서 서울 가리봉시장 일대가 차이나타운이 되었기 때문이다. 연길냉면과 단고기(개고기)는 물론이고 한족이 좋아하는 요리를 팔았다. 양꼬치구이의 ‘초기 버전’이 있던 동네이기도 했다. 내 옷차림과 말씨가 달라 동포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토 중국요리를 먹었다. 옆자리의 동포 청년과 죽이 맞아 노래방에서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본토 발음으로 부르기도 했다.
요즘은 대림동 중앙시장이 조촐하고 좋다. 한국인도 꽤 보인다. 당시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훠궈’(중국식 샤브샤브) 집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음식 값도 많이 올랐다. 한식당보다 더 비싼 집도 있다. 반찬이 공짜가 아니다 보니, 이것저것 시키면 계산이 커진다. 오이무침 한 접시에 1만원이 넘는 집도 있다. 나는 국수를 먹으러 간다. ‘란저우라몐’을 파는 집들이 있기 때문이다. 요리사가 란저우에서 온 건 아니지만, 이 글자를 간판에 써놓으면 수타면을 낸다는 뜻이다. 소다향(?) 그윽한 수타면이 5000원 정도다. 쫄깃하면서도 조금씩 굵기가 다른 ‘수제 면’이 치아에 감긴다. 소고기 국물에 말아내는 ‘뉴러우탕몐’이 일품인 집이 있다. 볶음면을 내기도 한다. 면의 품질이 최고 수준이다.
우리도 한때 수타면이 날리던 때가 있었다. 중국음식이 배달의 아이콘이 되고, ‘빨리빨리’가 대세가 되면서 수타면은 사라졌다. 힘들고 고되게 면을 쳐봐야 알아주는 이도 없었을 것이다. 기계에 반죽을 넣고 스위치만 누르면 면이 쏟아지는데, 가격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누가 힘들게 면을 치겠는가. 그래서 이런 동네에서 먹는 원조 수타면은 기분이 참 묘해진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도래한 원조 화교와 달리,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경제성장기에 들어온 이들을 ‘신화교’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면이다. 100년의 차이를 두고, 수타면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비행기 타고 중국으로 날아가지 않고 한 그릇의 진짜 수타면을 먹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완전히 조선족과 한족 상권이다. 정육점과 큰 마트 한 곳 정도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듯하다. 요즘 이 거리의 히트상품은 항아리처럼 생긴 중국 가마에 굽는 고구마다. 중국인들이 식사로 먹는 커다란 찐빵(만두라고 부른다)과 이른바 ‘꽃빵’ 같은 것들이 김을 뿜으며 손님을 기다린다. 연길식으로 돼지피를 많이 넣은 시커먼 피순대도 팔고 옛 중국식 호떡도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국음식다운 것들이 가득한 동네라고 해야겠다. 중국 식품을 파는 잡화상도 많다. 구하기 어려운 고수와 취두부(삭힌 두부)를 사고 싶다면 강력 추천이다.
내가 가는 국숫집은 따로 있는데, 국물이 담백하고 손님이 적어 조용한 집이다. 여러 집을 비교해보지 않아 이 골목에서 가장 맛있는지 확신은 못한다. 마라향궈미식성(02-845-3888). 브레이크타임 같은 건 없다. 대림역 12번 출구로 나가면 시장으로 연결된다.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