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훈이라고, 여행작가인 후배가 있다. 그가 물었다. “인생의 솔(soul)푸드가 뭐요?” 응? 짜장면, 물국수(잔치국수), 칼국수, (빌어먹을) 스파게티, 라면(인스턴트로)…. “죄다 국수네?” 그렇구나. 나는 면으로 말미암아 면으로 살 것인가 보다. 아닌 게 아니라 면을 먹고 컸고(식량 부족의 시대에 태어나서), 면을 팔아먹고 산다(이탈리아 국숫집을 하지 않소). 1998년, 회사 관두고 이탈리아에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내 선언은 이랬다. “이탈리아 국수 딱 세가지만 배워 올게. 해물토마토 스파게티, 크림 카르보나라, 미트소스 스파게티!” 일이 이상하게 되느라고 그랬는지,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국수를 만들어 팔지 않았다(그러니, 배울 곳도 없었다).
국수는 물리적 음식이다. 연속적이면서 (역설적으로) 분절적이다. 국수를 만드는 밀은 글루텐을 활성화시켜야 더 쫄깃하다. 그래서 손으로 치고(수타) 발로 밟는다(족타 또는 족답).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반죽하면서 누르고 겹치고 민다. 밀에 충분히 들어 있는 글루텐의 힘이 더 강력해지게 하려는 의도다. 그것도 모자라 ‘소다’를 넣어 반죽한다. 면은 더 쫄깃해진다. 그래서 연속적이다.
반면, 국수는 끊어져야 우리 입에 들어간다. 분절적이다. 일본 시코쿠(사누키)의 우동은 아주 길게 만들어 끊지 않고 먹어야 제맛이라고 한다. 국수의 분절성은 적당한 길이가 필수다. 대학노트 길이만한 게 국제 표준이다. 스파게티는 좀 길고 소면은 짧은 편이다. 구룡포 ‘제일국수’ 이순화 할머니는 해풍에 말린 국수를 손으로 뚝뚝 자르는데, 항상 길이가 일정하다.
쫄깃하지 않아 ‘분절적’이라고 생각하는 냉면이나 메밀국수도 역사적으로는 늘 더 쫄깃하게 만들기 위해 애썼다. 툭툭 끊어지는 맛이 일품인 메밀의 본성은 본래는 사랑받지 못했던 것이다. 메밀을 뜨거운 물로 반죽하고, 밀가루와 소다를 넣거나 국수 빼는 압력을 높이는 모든 노력은 결국 ‘더 쫄깃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툭툭 끊기기 마련인 메밀 함량 높은 국수는 일면으로는 그 의도에 실패한 국수다. 미식가들이 이런 메밀의 특성을 오히려 높게 치면서 사랑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리하여 연속적이며 분절적인 국수의 세계가 완성된다.
국수의 표면에 현미경을 들이댄다면, 그 물리적 성격이 더 선명해진다. 혀에 매끈하게 여겨지는 표면은 분화구처럼 울퉁불퉁하고 비균질적이다. 그 표면은 육수와 소스를 더 많이 머금어서 밋밋한 ‘가루’의 맛에 다채로움을 입힌다. 순수한 메밀과 밀가루의 향이 좋군, 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과장을 일삼는 일본 요리만화에나 어울리는 것일 수도 있다. 구리 노즐로 뽑는 스파게티가 더 비싼 이유는 바로 구리가 스테인리스보다 스파게티 표면을 더 거칠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비균질적인 표면에 소스가 찰싹찰싹 달라붙어서 우리의 입을 더 즐겁게 한다. 손칼국수가 더 맛있는 것도, ‘손맛’이라는 정서적 기대감보다는 칼로 써는 단면이 더 거칠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