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공유하기
최불암 가족이 이사를 했습니다. 짐을 정리하다 중국 음식을 시켜 먹기로 해서 김혜자가 메뉴를 물었습니다. 다들 짜장 또는 짬뽕이었는데, 최불암은 “난 탕수육” 했습니다. 김혜자는 인상을 쓰며 두 글자 메뉴만 시키라고 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최불암. “그럼, 난 탕슉.”
꼬부랑 할아버지가 된 최불암이 대문 앞에 있는데, 한 꼬마가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초인종 좀 눌러주련?” 꼬마는 까치발을 들었지만 초인종에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폴짝폴짝 뛰기를 십여 차례. “띵동~.”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그러자 최불암이 꼬마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야, 튀어!”
1990년대 초반에 유행한 최불암 시리즈입니다. 열풍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책까지 나왔죠. 그땐 무슨무슨 시리즈가 많았습니다. 참새 시리즈, 와이에스(김영삼) 시리즈, 심지어 박한(고려대 농구부 감독) 시리즈도 있었습니다. 박한 감독이 경기 중 작전 타임을 부르고 “잘 들어. 지금 우리가 안되는 게 두 가지 있어. 그게 뭐냐, 오펜스(공격)랑 디펜스(수비)야. 알았어? 나가 봐” 했다는 식이죠.
최불암 시리즈를 검색하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간단한 조크로 최불암 시리즈 하면 욕먹을까요?” “겉으로 욕은 안 하겠지만 속으로 싫어해요.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세요.” 2013년에 이뤄진 문답입니다.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지금, 예전 같으면 ‘부장님 유머’, ‘썰렁 개그’라고 무시받기 일쑤인 ‘아재개그’가 최신 트렌드가 됐습니다.
유머는 사회를 반영한다고 하죠. 스토리텔링이 있는 ○○ 시리즈보다 짧은 문답을 툭툭 던지는 아재개그가 뜨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나로는 별 의미 없는 조각들이 모여 문맥을 이룸으로써 결국엔 웃음을 이끌어낸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진지충’이 될 것 같군요. “파하~.” 그저 최불암처럼 웃어봅니다.
서정민 esc팀장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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