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1시간 반 남짓,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한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멀지 않다. 이내 가마가사키(釜ヶ崎)로 향한다. 검색기를 돌려본다. ‘일본 최대 슬럼가’, ‘일용직 노동자와 부랑자의 집합처’, ‘고용, 복지 투쟁’, ‘노숙자의 천국’…. 오사카에 살았던 일본식 요리사 정호영에게 물어본다. “아휴, 형. 거기는 오사카 시민들도 안 가요. 유학생 중에 더러 그 지역에 사는 친구가 있었어요. 방값이 반이었으니까.” 2만5000명의 일용 노동자와 부랑자, 노숙자들이 이 지역에 어떻게든 붙어산다. 도착한 시간은 대낮. 노동자보다 노숙인 행색이 더 많다. 일을 줘도 할 수 없어 보일 만큼 어깨가 무너져 있는 사람들. 이 일대 술집은 아침부터 문을 여는 곳이 많다. 일 없는 그들이 한잔 술의 위안을 원하기 때문이다. 나도 한 자리 끼어 술잔을 받는다. 안주는 대개 미리 만들어둔 간이 음식들이다. ‘그들’과 나란히 서서 마시는 찬술에 속이 찌르르하다.
우에하라 요시히로가 쓴 <차별받은 식탁>이라는 책이 있다. 전세계 소외집단의 음식을 추적한 책이다. 일본에서는 소 내장을 다룬다. 그들에게는 ‘부락민’이 있었다. 최하층 계급. 소·돼지를 잡는 사람도 이들에 포함됐다. 그들이 먹던 음식이 바로 소 내장이었다. 버려진 것, 그래서 오사카 말로 ‘호루몬’(ホルモン)인 부산물들. 태평양전쟁 종전 후 해방이 되어서도 귀국선을 타지 못하거나 포기한 재일동포들이 요리해서 팔았던 바로 그 재료들. 그래서 재일동포들은 절대 기억에서 밀어낼 수 없는 눈물과 추억의 음식. 대개 소 내장 하면 구이를 연상하는데, 특별한 음식도 있다. 바로 국수다. 가마가사키의 한 골목에서는 이것으로 지금도 우동을 말아낸다. 호루몬우동. 호루몬야키소바.
한 가게에 들른다. 주인은 일본인이다. 물어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부친이 부락민이었을, 한 중늙은이가 우동을 만다. 단돈 200엔(한화 대략 2200원) 내외. 일본 물가에서는 말도 안 되게 싼값이다. 소 염통, 허파, 곱창 같은 재료가 들어 있다. 내장을 푹 삶고, 국물을 내어 우동을 넣어 준다. 가게 안팎으로 온통 소 내장 냄새가 가득하다. 배달받은 싸구려 면이다. 허름해서 오히려 당기는 맛. 후룩후룩, 국수가 입천장을 치고 넘어간다. 뜨거운 국물에 혀를 덴다. 염통과 허파가 구수하다. 잊고 있었던 이 내장의 맛. 나도 어릴 적 꽤 많이 먹었던 음식이다. 어머니는 정육점에서 거저 팔다시피 하는 그런 내장을 사서 볶거나 국을 끓여줬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소의 허파는 질겨서 오래 씹어야 했다. 가마가사키의 소 내장 우동이 그 오래된 기억을 소환했다. 가게 앞에는 철판을 설치하고 야키소바를 볶는다. 양념을 뿌려가며 내장을 넣고 국수를 볶는다. 가마가사키를 내장 냄새로 가득 채울 기세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마가사키는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다. 당국은 도시의 환부 같은 이곳을 완전히 재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소 내장 우동도 그렇게 오사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지 모르겠다.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