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메뉴판은 채단(차이딴·菜單)이라고 부른다. 중국을 여행할 때 이 메뉴를 읽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력이 붙으면서 한 가지 법칙을 발견했다. ‘재료+칼질(요리)법’이 가장 흔한 명명이었다. 마파두부(곰보 할머니의 두부)처럼, 한자를 안들 본디 내력을 모르면 아무리 궁리를 짜내어 봐도 알 수 없는 요리도 있지만. 면 요리도 대개 이런 법칙으로 명명되었다. 해선탕면(海鮮湯麵)은 문자 그대로 바닷것을 탕으로 끓인 면이었다. 오래전 한국의 중국집은 벽에 붙여 놓은 채단이 보통이었다. 요즘에는 책자로 만들어 내거나, 아예 식탁에 붙여 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멋진 세로글씨로 벽에 붙은 메뉴판은 하나의 전형이었다. 요리부, 식사부.
여담이지만, 대개 허름한 대중식당에서 즐겨 쓰는 벽보 메뉴판은 나름 역사적인 창조품이다. 프랑스의 초기 레스토랑에서 쓰던 방법이었다. 그래서 양식 좀 드시는 분들이 ‘아라카르트’라고 하는, 일종의 단품요리를 이르는 말이 바로 벽보 메뉴판이었다. 아라카르트란 문자 그대로 ‘종이에 써 붙인 메뉴’란 뜻이기 때문이다. 본디 레스토랑은 주인이 그날 요리를 알아서 내는 것이었는데, 손님이 골라 먹을 수 있도록 고정 메뉴를 벽에 써 붙인 데서 아라카르트가 유래했다.
어쨌든 그 중국식 아라카르트를 보는 일은 몹시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햄릿 이후의 결정장애 유발 상황이라고 할,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문제가 바로 거기 있었다. 나는 물론 무리 없이 짜장으로 결론을 냈고, 고뇌를 털어냈지만 어른들은 달랐다. 울면과 기스면과 우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그마치 다섯 가지 면을 놓고 오지선다의 문제를 풀어야 했다. 선친은 아주 간결했다. 기스면이었다. 아아, 기스면! 어른들이 먹는 품위 있는 맑은 국물 면! 나도 어른이 되면 기스면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정작 어른이 되자, 중국집 ‘식사부’에서 울면과 함께 찾아보기 힘든 메뉴가 되었다.
선친은 이 기스면은 꼭 ‘계사면’이라고 불렀다. 마치 이웃이란 뜻의 ‘네이버’(neighbor)를 ‘네이그흐보르’라고 읽었다는 어떤 조선사람 같은 고집이었다. ‘닭 계’에 ‘실 사’, ‘계사면’(鷄絲麵). 닭고기를 실처럼 가늘게 썰어 만든 면이란 뜻이다. 보통화(표준어) 발음으로 하면 ‘지스몐’일 텐데 산둥식 사투리로 기스면이 되었다고 한다. 간펑지가 깐풍기가 된 것처럼. 선친은 기스면에 식초를 조금 넣어 드셨던 걸로 기억한다. 짜장면 면발은 좀 굵었으나 기스면은 가늘고 하늘하늘했다. 그래서 입으로 들어갈 때 후룩후룩하는 소리가 아니라 호로록 하는 청아한(?) 발음을 냈다. 그 시절, 중국집 주방에는 ‘면판’이라는 것이 있어서 만두도 직접 싸고 여러 가지 면을 뽑아냈다. 수타로 면을 쳐내는 것도 바로 면판의 역할이었다. 기계식 면을 쓰면서 가느다란 면발을 뽑아야 하는 기스면이 사라진 것일까. 두 대의 기계를 돌릴 수 없으니 그리된 것일까.
시내에 나갔다가 중국집에 들렀다. 메뉴에 기스면이 있었다. 선친이 드시던 그것과 비슷한 것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면발은 가늘었고, 국물은 맑았다. 하나 칼질은 거칠어서 옛날식의 실처럼 곱게 썰려 고명으로 올라 있던 닭고기 살점은 아니었다. 바쁜 주방에서 한족들의 중국어 발음이 들려왔다. 그네들이나 있으니, 그나마 기스면도 뽑는 것일 테지, 그것이 나의 위로였다.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