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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삶' 가장 보통의 존재

등록 2016-11-03 11:10수정 2016-11-03 13:56

[ESC] 커버스토리
1인 가구 4명이 들려주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싱글라이프

칼럼니스트 김정훈씨가 자신의 집 근처 카페서 글을 쓰고 있다. 김정훈씨 제공
칼럼니스트 김정훈씨가 자신의 집 근처 카페서 글을 쓰고 있다. 김정훈씨 제공

네 집에 한 집이 혼자 사는 집인 시대, 1인 가구는 이제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표준’처럼 여겨졌던 4인 가구나, 그보다 더 예전의 대가족과 ‘혼삶’을 꾸리는 이의 생활이 같을 수는 없는 노릇. 여전한 편견 속에서도 먹는 것, 노는 것, 집 꾸미는 것까지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 연애도 비연애도 내 맘대로

“1인 가구는 연애에 최적화돼 있어요. 연애를 하면서 결혼에 준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다못해 모텔비라도 아끼잖아요.” 혼삶 경력 11년째인 김정훈(33)씨는 연애하기 좋은 게 1인 가구의 “장점”이라고 했다. 김씨는 <요즘 남자 요즘 연애>라는 책을 낸 연애칼럼니스트다.

그의 말마따나 남자친구든 여자친구든 혼자 살면 그 집에 방문하는 일이 많아지고, 함께 있는 시간도 덩달아 늘어나게 된다. 시내에서 만나 데이트하고 저녁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연애와는 다르다. 서로를 파악할 시간이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혼삶족에게 연애는 선택의 영역”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취미 등 모임에 나가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다른 가족들과 살 때처럼 귀가시간 등에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하다. 반면 연애하라거나 결혼하라는 가족의 닦달에 덜 시달리고, 사람을 만나기 싫을 땐 얼마든지 혼자 지낼 수도 있다.

혼자 살기로 했다면 “외로움을 견디는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는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김씨는 조언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혼삶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그러다 섣불리 결혼했다 후회하는 등 ‘실패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김정훈씨의 팁 : 외로움에 익숙지 않다면 혼밥·혼술 하지 마라. 요즘 인터넷 모임도 많이 있고, 조금만 찾으면 다른 사람과 어울릴 기회는 많다. 굳이 외로움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 나는 내가 지킨다

직장인 김희영(37)씨는 10여년 전 부모님 집에서 독립했다. 처음에는 집에 친구를 불러 밤새 놀기도 하고, 내킬 땐 외박도 하면서 자유를 마음껏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가 아랫집과 윗집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 집에 남자가 매일 들락거려. 남자도 여럿인가 봐.” 김씨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다. 여전히 ‘여자 혼자 사는 집’에 편견이 가득한 사회라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다. “당시 애인은 있었지만, 한명이었죠. 친구들이 놀러온 건데 남자가 여럿이라니!” 그 충격으로 김씨는 친구들의 집 방문을 금지했다. 부당하고 억울하지만, 주변의 평판이 나빠봤자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낯선 이의 침입으로부터도 자신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외출할 때 현관문에 종이를 끼워둔 적이 있어요. 제가 없을 때 누가 들어왔다면 종이가 떨어져 있었겠죠. 다행히 종이는 그대로 있더라고요.” 그 뒤로도 김씨는 현관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바꾸는 등 ‘보안’에 철저하다.

김희영씨의 팁 : 애인이 생겨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절대 현관문 비밀번호는 알려주지 말라. 지옥을 맛볼 수 있다.

지난달 27일 쿡방 크리에이터 ‘소프’가 인천 남동구 오피스텔에서 생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지난달 27일 쿡방 크리에이터 ‘소프’가 인천 남동구 오피스텔에서 생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 혼자가 편해요

유튜브 ‘쿡방’ 스타 소프(32·본명 박준하)의 힘은 ‘혼밥’이다. 어릴 때부터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 호텔조리과에 진학을 했고, 군 복무도 취사병으로 마쳤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대학에 진학하면서 바로 집을 나왔는데, 워낙 음식을 잘 해먹다 보니 혼밥을 일로 삼기에 이르렀다. 뭐든 뚝딱 만들어 먹는 그의 실력과 아이디어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것도 남다른 ‘혼밥 덕력’ 때문이다. 돼지목살 김치찌개를 끓일 땐 고기와 다진 마늘이 냄비에 눌러붙도록 많이 볶은 뒤 치익 소리가 날 정도로 차가운 물을 부어줘야 육수가 잘 우러난다는 건 그가 알려주는 ‘비법’ 가운데 하나다.

혼밥이 일이기도 하거니와 즐기기도 하다 보니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최근엔 ‘스메그’ 오븐을 들였다. 200만원짜리다. “오븐계의 벤츠라고 불리죠. 아주 좋아요.” 그가 수줍게 웃었다.

그는 주중엔 밤마다 인터넷 방송을 하며 누리꾼과 소통한다. 주말엔 늦잠을 즐긴 뒤 친구나 팬들을 만나러 나간다. 지난해부터 같이 사는 반려견 버터를 돌보는 재미까지 붙으니 굳이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든다. “외로울 틈이 없어요. 혼자가 너무 편하기도 하고요. 원래 간섭받는 걸 싫어하는 체질 덕도 있는 거 같아요.”

소프의 팁 : 배달음식을 시킬 땐 무조건 큰 걸로 시켜라. 가성비 차원에서 좋다. 남으면 다음날 다르게 요리하면 된다. 나의 경우 족발을 시킬 때 대짜로 시킨 뒤 남으면 다음날 겨자와 식초 넣고 냉채 족발을 해먹는다.

지난달 28일 가수 ‘루빈’이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자신의 집 근처에서 반려견 ‘백설’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지난달 28일 가수 ‘루빈’이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자신의 집 근처에서 반려견 ‘백설’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 내 사랑 반려동물

혼삶족들에게 반려동물은 중요한 일부분이다. 2000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받은 실력파 가수 루빈(36·본명 김정환)도 넉달 전에 반려견 ‘백설’을 입양했다. 하마터면 식용으로 처리될 뻔한 개였다.

백설이 온 뒤로 그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불규칙적인 음악인의 생활이, 저녁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반인의 패턴으로 바뀐 것이다. 곡 작업은 낮에 하고 저녁엔 오롯이 백설이와 시간을 보낸다. 외출했다가도 금세 돌아온다. 홍대 쪽에서 공연이나 미팅을 많이 하는데 그 근처 합정동에 살고 있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나갔다 볼일만 보고 바로 귀가한다. “백설이 산책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돌봐줘야 하니 밖에 나가도 오래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백설이는 진돗개라 자유롭게 뛰어놀아야 한다. 그래서 그는 밤 11시면 백설이와 함께 집 근처 양화진 공원에 간다. 한적한 밤 공원은 그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백설이는 마음껏 뛰어다니고, 그는 한쪽에 앉아 최근 배우기 시작한 아이리시 플루트(서양 피리)를 연습한다. “결혼을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간이 너무 소중하네요.” 백설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맑았다.

루빈의 팁: 살 동네를 정할 땐 혼자 놀 수 있는 곳이 많은지 점검하라. 가끔 혼자 가서 편하게 밥 먹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은 필수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당신 자신만을 믿으시라-혼삶족 십계명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혼삶족에게 모세 같은 성인이 있었다면, 친히 신의 계시를 받아 십계명을 남겼을 거다. 문제는 사람의 일인지라, 정답이 없다는 것. 사람이 다 다르듯, 살아가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취재 중 만난 혼삶족들이 이건 꼭 명심했으면 한다고 강조한 것을 추렸다. 혼삶족을 위해 ESC가 만든 ‘혼삶 십계명’이다. 참조만 하시라!

① 당신 말고 다른 이를 믿지 말라.모든 걸 결정하고, 이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이다. ‘팔랑귀’의 끝은 방황뿐이다.

② 돈을 섬기지 말라.혼삶 초기 돈을 펑펑 써 가계에 구멍이 나거나, 너무 아껴 궁색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을 스스로 통제하라.

③ 애인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애인을 애써 찾아다니지 말라. 그래 봐야 ‘안 생겨요’다. 자연스러운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애인이 끝도 좋다.

④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쉴 땐 쉬어라. 집 안까지 일을 가지고 들어오면, 네 쉴 곳은 오직 편의점이 될 것이다.

⑤ 부모를 공경하라.집 나왔다고 부모에게 소홀하게 하면 분명 후회한다. 전화라도 주기적으로 하라.

⑥ 도둑을 막아라.1인 가구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다인 가구도 보안에 유의해야 하지만, 특히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1인 가구는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방범 시스템이라도 달아라. 최근엔 인터넷 결합상품도 나와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⑦ 무작정 반려동물을 키우지 마라.반려동물은 혼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외로운 생명체를 또 만들 수 있으니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자신이 돌봐줄 시간과 능력이 없다면 반려동물은 들이지 않는 게 낫다.

⑧ 건강을 관리하라.매일 라면, 삼각김밥으로 때운다면 매년 돌아오는 건강검진 때마다 ‘재검’을 하게 될 것이다.

⑨ 네 이웃에게 친절하라.아무리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시대지만, 이웃에게 잘해 손해 볼 건 없다. 떡이라도 얻어먹는다.

⑩ 지속가능한 취미를 가져라.적절한 취미는 삶의 활력소다. 있어 보이는 취미보다 자신에게 맞고 오래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라.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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