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림동에 가면 닭 내장 요릿집들이 쭉 늘어서 있다. 전형적인 노동자 음식이다. 고기는 비쌌고, 내장으로 동물성 영양소를 섭취했던 과거의 유물이다. 서울 모래내시장에도 닭내장탕집이 있었다. 뜨내기 노동자와 짐꾼들이 비리고 뜨거운 국물을 안주 삼아 막소주를 마셨다. 동대문, 왕십리, 청계천8가 중앙시장 주변에서도 싸구려 돼지 내장볶음 요리를 팔았다. 소 내장은 이제 고급요리가 되었다. 하지만 내장은 원래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차별받던 유대인들이 게토에서 버려진 소 내장으로 스튜를 끓여 먹던 것이 향토요리로 살아남았다. 피렌체와 로마에서는 소 내장 스튜가 대표적인 로컬 푸드가 되었을 정도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재일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선 소, 돼지 내장으로 요리를 했다.
오사카 이쿠노 지역은 그야말로 ‘게토’였다. 일본의 최하층 천민집단 주거지역인 ‘부락’(部落)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자의로 타의로 일본에 살던 조선인들 다수는 한반도가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뒤에도 일본에 남았다. 일본을 통치하던 미군(GHQ·연합군최고사령부) 당국은 조선인의 귀국 물품 무게와 돈 반출을 제한했다. 재산을 버리고 갈 수 없었던 동포들과 돌아가기가 마땅치 않은 이들이 모여 살았다. 일본인도, 그렇다고 망한 조선인도 아닌 애매한 신분의 재일동포들은 힘겨운 삶을 꾸려야 했다. 그들은 소와 돼지 내장으로 요리를 해 먹었고, 팔기도 했다. 일본에서 지금 크게 유행하고 있는 ‘야키니쿠와 호루몬(내장)’ 요리의 원조가 바로 그 슬픈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지금도 이쿠노 지역에 가면 노점에서 내장을 구워 판다.
그런 내장요리 중에 후쿠오카의 명물로 널리 알려진 ‘모쓰나베’(もつ鍋)가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전문점에는 아예 한글 메뉴판이 있을 정도다. 소의 대창이나 소창을 양배추, 부추와 함께 푹 끓여낸다. 간장이나 된장을 풀고 다시마 등으로 양념한다. 그 위에 매콤한 굵은 고춧가루를 뿌려낸다. 일본 패전 후 후쿠오카에서 탄생한 요리라고 한다. 아마도 재일조선인들이 만든 요리가 아닐까. 시모노세키의 재일동포 집단 거주 지역에서는 비슷한 내장전골이 팔린다.
기타큐슈의 한 노포에서 모쓰나베를 만났다. 뜻밖이었다. 기타큐슈는 규슈 섬의 동쪽 끝에 있는 공업도시로 서민적인 먹을거리가 유명하다. 그런데 좀 특별하다. 우동을 넣어서 파는 모쓰나베다. 24시간 문을 여는 우동집 ‘스케상’(資さん)에서 만날 수 있는 메뉴(
사진)다. 기타큐슈 시민들에게는 ‘솔(soul) 푸드’를 파는 식당으로 사랑받는다. 공단에서 2교대, 3교대를 하던 피곤한 노동자들이 허룩한 속을 우동으로 채우던 곳이었다. 모쓰나베우동은 그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열량 높고 진하며 시원한 국물로 지친 속을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엉튀김을 얹고 부드러운 우동면을 뚝배기에 담아낸다. 혹시 기타큐슈를 가게 된다면, 늦은 밤 스케상 우동집에서 모쓰나베우동을 시켜보시기 바란다. 가게를 가득 메운 시민들 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그 뜨거운 우동을 먹는 맛이 제법 각별하리라.
글·사진 박찬일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