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공부, 독서, 금연…. 야심차게 세우는 신년 계획들, 의욕을 갖고 노력해도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입니다. 혹시 당신도 “내가 이러려고 계획을 세웠나?” 자괴감에 빠져 계신가요? ESC가 작심삼일 격파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모델 김완 <한겨레21> 디지털팀장.
“자기 오늘도 안 일어날 거야? 며칠이나 됐다고…. 이럴 거면 뭐하러 비싼 학원비 냈어? 내 이럴 줄 알았다.”
지난 4일 아침, 귀청을 파고드는 아내의 앙칼진 목소리에 이삼일씨는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갈 거야, 근데 몸이 영….” 시곗바늘이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다. 늦었다! ‘괜히 중국어는 배운다고 해서 이 사달을 만들었나.’ 순간 삼일씨의 미간에 깊고 굵은 주름이 잡혔다. “내일부터 갈게. 잔소리 그만해!”
‘2주 전 거기만 안 갔어도….’ 삼일씨는 생각했다. 그날 점심식사 뒤 회사 동료들과 새해맞이 준비나 해보자며 우르르 서점에 들렀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형형색색의 달력과 다이어리에 순간 눈이 뒤집혔다. 동료들이 하나씩 다이어리를 집어들기 시작했다. “삼일씨는 안 사?” “어~어. 사야지.” 어느새 그의 손에도 들린 다이어리 표지에선 분홍색 과일 캐릭터가 활짝 웃고 있었다. ‘나 같군!’ 흐뭇했다. 그날 밤, 다이어리를 펴고 새해 목표를 적었다. 첫째, 중국어 공부. 둘째,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 셋째, 헬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튿날 중국어학원에 등록했다. 집 근처 헬스클럽에 연간회원 등록도 했다. “잘하셨어요. 1월에는 등록자가 평소보다 20~50%까지 늘어나요. 사장님, 정말 좋은 기회 잡으신 거예요.” 트레이너의 말에 우쭐해졌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달 읽을 책 네 권을 주문했다. 새해 목표 달성을 위한 준비를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한 삼일씨. “자기야, 나 새해부터 중국어 공부도 하고, 책도 읽을 거고, 저녁엔 운동도 할 거야. 기대해.” “그걸 다 하겠다고? 제발 이번엔 뭐 하나라도 3일은 넘겼으면 좋겠네.”
목표 도전 첫날인 2일. 새벽같이 일어나 어학원에 갔다. 목표 1 성공. 출퇴근길엔 책을 꺼냈다. 수시로 울리는 전화벨과 카카오톡에 좀처럼 집중이 안 됐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책을 읽었다. 열 쪽이나 읽었을까. 하품이 났다. 결국 책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나서야 책읽기를 중단했다. 어쨌든 목표 2도 성공. 저녁엔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 40분, 자전거 30분에 근력운동과 스트레칭까지 두 시간 꼬박 땀을 흘렸다. 목표 3도 성공. 이거 봐, 나도 할 수 있잖아?
첫날 너무 무리한 탓일까. 이튿날 아침 눈을 뜨려다 ‘어~억!’ 비명을 지른 삼일씨. 누군가에게 온몸을 얻어맞은 것처럼 움직일 때마다 극렬한 통증이 엄습했다. 중국어학원 가는 것도, 저녁 운동도 포기. 근육이 쑤시니 책읽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사흘째인 오늘, 아내의 독설을 들으며 마침내 이런 생각을 했다. ‘학원이고, 헬스클럽이고 이참에 환불해버릴까?’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어는 흥미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실은 헬스도 재미없다. 책은 스마트폰보다 지루하다. 다 포기하고 싶다. 정말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딱 사흘 만에 새해 계획이 또 스트레스가 될 줄이야.
자책감과 아내의 힐난 속에 속절없이 몇날며칠을 보냈다. 어학원은 한 번 안 가기 시작했더니 다시 가기가 민망해졌다. 그나마 헬스클럽은 두세 차례 더 시도. 책은 의무감에 들고는 다닌다. 주변을 보니 나 같은 사람이 나만은 아닌 것 같다. 속상해 불러낸 친구 ‘나긍정’ 녀석이 입에 소주를 털어넣으며 말했다. “야, 양력 1월1일에 시작한 계획 글러먹었으면 음력 1월1일에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안 그래?” 그런 걸까?
잡코리아가 2015년 1월 직장인 523명을 상대로 ‘새해 목표 실천기간’을 조사한 결과 ‘작심삼일에 그친다’는 답변은 30.4%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새해 계획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를 극복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나긍정이 말을 이었다. “네 계획은 보기엔 멋지지. 그런데 너무나 원대해 실천하기가 어려워. 생각해 봐. 관심도 없는 중국어 배우겠다고 그 좋아하는 아침잠을 포기해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야근에 회식에 안 그래도 없는 저녁시간 쪼개야 해. 그러면 지쳐서 출퇴근시간에라도 머리를 비우거나 토막잠을 자야 하는데 책까지 읽겠다? 그래 갖고 사는 게 재밌겠냐, 짜증만 나지. 습관을 바꿀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네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
그날 밤 삼일씨는 다시 다이어리를 폈다. 그래, 할 수 있는 만큼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다시 시작해보자. ‘흥미 없는 중국어 대신 영어 문장 하루에 한 개씩 외우기, 매일 30분씩 책읽기, 운동은 딱 한 시간만.’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회사원 박지호(가명·30)씨의 실제 사례를 콩트로 재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