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세뱃돈 받는 재미에 설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줘야 하는 어른들은 부담스럽다. 동심과 현실 사이, 접점은 어디일까? 사진 왼쪽부터 이두나(6)·이아란(9)·이수아(12)양, 신주엽(11)군, 이수빈(9)양, 안정순(41)·이경원(43)씨 부부. 박미향 기자
열두살 ‘까치’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설이다. ‘대목’이기 때문이다. 구질구질하게 엄마한테 용돈 인상 투쟁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방긋, 한없이 착한 아이 모드로 절 몇 번 하면 뭉칫돈이 들어온다. 아무리 졸라도 엄마는 절대 안 사주는 ‘레고 스타워즈 밀레니엄 팔콘’을 위해 목표액을 꼭 수금해야 한다. 2주 전부터 ‘아빵~, 꼬몽~, 이몽~, 싸랑해!’ 귀여운 아이 버전을 연습 중이다. 기대에 부푼 까치와 달리, 40대 중반인 아버지 ‘나가장’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조카가 둘이나 된다.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이 세뱃돈 액수를 정해줬지만 그건 벌써 5년 전 시세다. 설 상여금 동결, 오른 물가 등을 고려하면 세뱃돈이 무섭다. 받을 땐 몰랐다. 어릴 때 몇년 받고 즐거워한 뒤, 어른이 돼 수십년 주며 이렇게 고민해야 한다는 걸. 더 받아내려는 자와 덜 주려는 자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까치와 그의 친구 2명, 나가장씨와 그의 이웃 회사원 2명이 모여 세뱃돈을 두고 ‘설전’을 펼쳤다.
까치 솔직히 설날에는 인심 팍팍 써도 되는 거 아닌가요? 일년에 한번뿐인데.
나가장(이하 나) 어른들이 호구냐? 주는 대로 고맙게 받을 일이지 뭘 난리야.
까치 에이, 그건 아니죠. 우리는 크느라 고생하니까 돈 버는 어른들이 격려해줘야죠. 갖고 싶은 것도 많단 말이에요.
친구1 저희도 어려움 많아요. “공부 왜 안 하니?” 타박하는 친척한테도 꾹 참고 절을 해요. 굴욕감 들어도 어쩌겠어요. 세뱃돈 받으려면 참아야지.
나 받는 너흰 한 명이지만, 나는 여러 명한테 주잖아. 까치네 사촌형 셋이나 아직 취직 못해서 이번에도 세뱃돈을 10명한테 줘야 한다고. 아빠 허리가 휘는 게 보이지 않니?
친구2 그래서 그런가…. 저희 아빤 대학생 사촌형한텐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뭔 세뱃돈이냐”고 방어막 치세요. 초등학생이라도 같은 항렬이면 안 주세요. 법도에 어긋난다면서요.(웃음)
회사원1 그거 좋은 방법이네.(웃음)
친구2 전 세뱃돈의 ‘세’ 자도 안 꺼내요. 그냥 복주머니를 목에 걸고 가죠. 중학교 가면 더 큰 복주머니를 준비할 거예요.
회사원2 그런 잔꾀에 넘어갈 어른들이 아니지. 우리 집 꼬마 세뱃돈은 내가 접수해. 나 어릴 때도 그랬어. 그래도 요즘은 조금 섭섭해해서 1000~2000원 정도는 남겨줘.
까치 전 그럴까봐 엄마가 “고모가 얼마 줬어?” 물으시면 금액을 낮춰 말해요.
친구1 지지난해 설에 엄마 계신 자리에서 친척들한테 “어차피 엄마가 다 가져가시니 그냥 1000원만 주세요”라고 했어요. 그 뒤론 엄마가 제 세뱃돈 안 가져가요. 액수도 안 줄었고요.
회사원1 게임하고 엉뚱한 데 쓸까봐 대신 모아두는 거지. 난 우리 애 세뱃돈 모아서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 주식을 사줬어. 투자도 투자지만 아이의 미래가 청정에너지와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랬더니 아이도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책도 찾아보더라고.
까치 그래도 저희한텐 현찰이죠. 당장 갖고 싶은 장난감이나 게임 아이템이 얼마나 많은 데 웬 전기자동차 회사 주식이에요. 헐~.
회사원2 명절이 참 괴로워. 엽서에 새해 덕담 적어준 적도 있는데, 반응이 영 썰렁하더라고. 요즘은 30만원을 한도로 정해놨어. 세뱃돈 받을 애들이 많으면 각자 받는 액수가 적고, 적으면 늘겠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일정해. 허세를 부릴 형편이 아니거든.
나 난 허세 부리다 ‘폭망’한 적 있어. 잘사는 형님한테 밀리기 싫어서 5만원권을 남발하고는 두어달을 생활고에 시달렸지.(웃음) 그 뒤론 나도 기준을 정했어. 미취학 아동은 1만~2만원, 초등학생 3만원, 중고생은 5만원, 대학생은 10만원. 씀씀이를 모질게 조절하는 아내에게 세뱃돈 배분권을 아예 넘기는 동료들도 있어.
친구1 줄 거면 똑같이 줘야죠~. 맏이라고 중학생 누나한테 더 주는 거 정말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회사원1 학년 올라갈수록 쓸 데가 많아지니까 그렇지. 난 돈 대신 학용품이나 신발, 가방처럼 필요한 물건을 사주는 편이야. 돈보다는 그게 낫다 싶어.
나 조선시대에는 세배하러 온 아이들한테 돈 대신 떡이나 과일을 줬대. 1930년대 이후로 돈을 주기 시작했다는군. 어쨌든 얘들아, 중요한 건 세뱃돈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인 거 알지? ‘미리 설날’ 할까, 세배 한번 해봐.
아이들 네~. 그럼 세뱃돈 주시는 거죠?
박미향 김미영 기자
mh@hani.co.kr
*취재 내용을 콩트로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