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다 마사아키(사진 맨 앞)가 조직한 짬뽕협의회의 짬뽕대회. 박찬일 제공
인터넷에서 박찬일의 정치적 성향이 ‘국수주의자’라는 말이 나왔다. 진짜다. 인터넷, 무섭다. 다시 말하지만 국수주의자는 소설가 김중혁의 재치 있는 작명이다. 나의 국수 애호, 세계평화 정신에 감동받아 붙여준 이름이다. 국수는 물을 붙들어 삶는다는 뜻에서 국수(?水)라고도 하지만, 좀 억지스럽다.
어쨌든 전세계인은 국수를 삶는다. 한국인의 국수 사랑은 어지간하다. 특히 인스턴트라면 소비량 단독 1위다. 국수 종류를 가리지 않으면 일본이 1등이다. 중국도 스파게티의 이탈리아도 제쳤다. 그런 일본의 국수 중에 짬뽕이 있다. 외국 도래 문화를 재빨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짬뽕은 본디 중국 국수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결국 일본의 국수가 되었다. 일본에는 ‘전국 향토 짬뽕 연락협의회’라는 게 있다. 시마바라라는 나가사키현 소속 도시를 취재하다가 알게 되었다. 시마바라반도 관광연맹 매니저인 유쾌한 한국 청년 한진씨의 우연한 발설이었다.
“하하, 우리 국장님이 거기 회장쯤 됩니다. 짬뽕 박사라니까요, 하하.” 짬뽕협의회가 있다고? “뿐입니까, 올해는 구루메라는 도시에서 월드 짬뽕 클래식이 열립니다. 물론 한국 짬뽕도 참가하지요.”
금시초문의 놀라운 뉴스가 이어진다. 그의 국장 하야시다 마사아키를 만났다. 서글서글한 인상, 짬뽕을 너무도 좋아해서 짬뽕 박사가 되었다는 사람. 한국에도 여러 번 와서 짬뽕을 맛보았다고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의 짬뽕은? “오, 매워요. 그러나 우마이데쓰네~. 맛있어요. 우루산의 짬뽕이 해산물이 많이 들고 맛있었습니다.”
서툰 한국어다. 우루산은 물론 울산이다. 그가 조직한 짬뽕협의회는 매년 서밋, 클래식 등의 이름을 붙여가며 행사를 연다. 거창하다. 그래도 너무도 신나게 일한다. 이 협의회의 목표도 대단하다. “짬뽕으로 다문화 공생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정식으로는 국장직을 맡고 있는 공무원이지만, 흔히 ‘짬뽕 반장’이라고 불린다. 일종의 애칭이다. 사연이 있다. 한진씨의 설명이다.
“그는 오바마 짬뽕 반장으로 불려요. 나가사키현 운젠시의 작은 온천 마을 오바마(小浜)의 직원이었습니다. 오바마는 거품 경기가 꺼지면서 마을의 활력을 잃어갔지요. 그가 마을을 홍보하고 짬뽕 가게들을 선전하는 데 나섭니다. 그 덕에 오바마의 짬뽕이 크게 알려졌습니다.” 한국에서도 오바마 마을 짬뽕을 먹으러 온다. 일본 3대 짬뽕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나가사키, 아마쿠사, 오바마를 이른다. 오바마 마을은 짬뽕 말고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미국 전 대통령 이름과 같기 때문이다. 그의 재선을 비는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마을 관광센터 앞에는 오바마의 등신대 모형이 있을 정도다. 하야시다 마사아키를 모델로 <내 아버지는 짬뽕맨>이라는 드라마가 2013년에 일본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일본 짬뽕대회에 출전한 한국 짬뽕. 박찬일 제공
짬뽕은 이 협의회에서 밝히고 있듯이 중국 푸젠성 도래 화교들이 만든 음식이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산둥성 사람들이 왔고, 나가사키에는 남부지역에 속하는 푸젠성 사람들이 이민 왔다. 당시 중국은 시민혁명을 겪으며 외국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과 ‘쿨리’라고 부르는 막노동자가 많이 이주했다. 거대한 항구가 있었고, 국제도시였기 때문에 일이 많았다. 나가사키는 일찍이 외국 세력과 문화의 접촉지점이었다. 외국 중에서도 중국과 네덜란드(화란)의 영향이 컸다. 그래서 나가사키는 와카란(和華蘭=각기 일본, 중국, 화란) 문화의 도시라고 한다. 이런 도시에서 중국인들이 세력을 넓혀갔다. 짬뽕도 처음에는 자국민의 음식이었다가 점차 일본인에게 번져나간다. 짜장면의 전파와 아주 흡사하다.
오바마 짬뽕은 나가사키에서 유래한다. 원래 중국인들은 한 도시에 같은 동족 인구가 집중되면 생존을 위해 다른 도시로 이주한다. 나가사키 모기항에서 오바마로 배를 타고 오는 탕치객(湯治客. 질병 치료를 위해 온천욕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을 겨냥해 솥을 들고 화교들도 함께 건너왔다. 그리고 짬뽕과 요리를 팔았다. 한때 오바마에는 스무개가 넘는 짬뽕집이 있었다. 거품 경기가 꺼지고 인구가 줄면서 현재는 12곳이 영업 중이다. 나가사키보다 해산물을 조금 더 많이 써서 시원한 맛이 난다고 한다. 값은 나가사키보다 20%쯤 싸다. 소도시의 매력이다.
짬뽕은 나가사키에서 개발되고 일본에 퍼졌지만, 한국에서 가장 많이 먹는 국수다. 물론 그 뿌리는 다르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같은 이름을 쓰게 됐다. 짬뽕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역사는 참으로 미묘하다. 한 그릇의 짬뽕 앞에 젓가락을 들자, 그 오랜 역사가 한꺼번에 그릇 속으로 쏟아졌다.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