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시원한 크래프트 맥주 한 잔이면 더위를 날린다. 박미향 기자
몇 년 전, ‘크래프트 맥주’(수제 맥주) 애호가 몇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소담한 거리의 지하 펍에서였죠. 앉자마자 그들은 모양과 길이가 다른 7가지 맥주잔을 가져왔습니다. 그러고는 한 종류의 에일 맥주(상면발효 맥주)를 잔마다 따르면서 맛을 보라고 했지요.
입구가 넓은 잔을 벌컥 마시자 묵직한 액체 덩어리가 몸속으로 쑥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샴페인 잔과 비슷한, 길고 좁다란 잔의 맥주를 들이켜자 노란 액체가 졸졸 혀를 타고 스며들어와 맛의 변주를 울리더군요. 그런가 하면 튤립 모양의 잔도 있었습니다.
잔에 따라 맛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같은 맥주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죠. 코끝에 닿는 향의 농도도 달랐습니다. 와인도 아닌데 신기한 노릇이었습니다. 장인의 개성이 촘촘히 박힌 크래프트 맥주는 전용 잔에 마셔야 할 정도로 섬세합니다.
최근 들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전국적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맥덕’(맥주덕후)들이 수백가지 맛을 뽐내는 ‘지비루’(일본 크래프트 맥주)를 더 이상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맥주 대통령’으로 불리는 홍종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크래프트 맥주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공청회를 열면서 개인도 양조장을 열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물론 맥덕들의 애정의 힘이 컸습니다. 혀와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맛은 다양할수록 문화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수놓습니다.
세상 모든 맥주 맛을 탐미하려는 맥주 유목민들에게 이 여름은 탐험의 계절입니다. 이번 호는 그들을 위해 전국 양조장부터 갈 만한 펍까지 정리해봤습니다.
# ‘C’ 편 정답을 칵테일(cocktail), 동굴(cave) 여행 등으로 보내주신 독자분들이 많으셨습니다. 드디어 그리스 와인의 주인공이 나타났습니다. ’크래프트 맥주’를 맞히신 이주원 독자님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D’ 편도 기대하겠습니다. 따끈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미향 ESC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