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버 나탈리야 압세옌코가 흰돌고래를 만나고 있다. 데일리메일 화면 갈무리
소설가 김훈은 한때 경북 울진 후정리 바닷가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2012년 초가을부터 2013년 봄까지, 8개월 정도였죠.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동해연구소가 그의 집필을 돕기 위해 숙소를 마련해준 겁니다. 하루 2~4시간씩 울진 바닷가를 걷고 을씨년스러운 겨울 포구에서 가끔씩 한잔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세상을 경험할 만큼 한, 삶이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육십대의 소설가에게 그 바닷가는 어쩌면 상투적인 단어 정도의 감흥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그 심드렁한 바닷가에서 그가 뜻밖에 발견한 건, 예상하지 못한 싱싱한 바다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빛과 파도와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그의 바다 예찬론은 넘치고도 남습니다. 의외의 소득은 마음의 병의 원인과 처방전이라고 합니다. 병명은 ‘종신변비’. 마음의 쓰레기를 배출하지 못해 꽉꽉 차 변비가 돼버렸다는 겁니다. 울진 바다가 준 선물이죠.
햇살 가득 받은 바다만큼 영롱한 보석이 있을까요? 태풍이 불 때면 무섭기가 지옥불이지만 거대한 생명장치인 바다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 바다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진단과 처방전만은 아닐 겁니다. 프리다이버들에게는 특히나 말이죠.
2011년 프리다이빙 전문가인 나탈리야 압세옌코는 러시아 무르만스크 인근 북극해에서 프리다이빙을 해 흰돌고래를 만났습니다. 마치 인어처럼 흰돌고래와 춤추는 영상은 신비합니다. 세계 프리다이빙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그는 무려 12분을 공기통 없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견뎠는데, 바로 그 점이 프리다이빙의 치명적인 매력입니다. 흔히 무호흡다이빙이라고 하는 프리다이빙은 공기통 없이 숨을 참으며 자연에, 바다에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깊이 다가가 결국 나를 만나게 되는 레저 스포츠입니다. 마음 시끄러울 때면 초밥을 찾던 제 스트레스 해소법을 이참에 프리다이빙으로 바꿔볼까 합니다.
ESC 애독자 최선우님이 이번 호의 주제 프리다이빙을 맞히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박미향 ESC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