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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남사친, 여사친...사랑과 우정 사이

등록 2017-09-06 20:06수정 2017-09-07 09:54

[ESC] 너 어디까지 해봤어?
픽사베이
픽사베이
‘넌 언제나 내게 떠나보내긴 싫다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유혹하듯 얘기하면서도/ 이리저리 재는 건지 자존심인지/ 힘들 때 생각나는 친구 이상은 아니라 하네’(공일오비의 노래 ‘친구와 연인’) 노랫말 속의 친구가 우정을 나누는 동성의 벗 이상의 의미로 확장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초반이다.

공일오비(015B) 2집 ‘친구와 연인’(1991), 피노키오 1집 ‘사랑과 우정사이’(1992)는 서로 다르게 관계를 정의하는 이성 친구 사이를 고민하던 90년대 젊은이들의 애청곡이었다.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라는 말에 연인의 의미가 포함되면서 사귀는 사이가 아닌, 단지 이성인 친구관계는 다른 호칭을 찾아야 했다. ‘남사친’(남자사람 친구)과 ‘여사친’(여자사람 친구)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 신조어는 ‘남자’와 ‘여자’라는 단어에 이미 ‘사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굳이 생물학적 성이 다른 인간이라는 의미를 포개서 로맨스를 제한한다. 하지만 최근 방송을 시작한 엠넷(Mnet)의 <내 사람 친구의 연애>에서처럼 청춘들은 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남사친’, ‘여사친’을 상대로 한다. 진짜 이들의 마음은 뭘까?

대학동아리 록 밴드 소모임의 선후배로 만난 3년차 친구 사이인 박기영(여·23·가명)씨와 전진수(남·23·가명)씨 커플과 중학교 때부터 이어온 10년차 친구 사이인 양유정(여·23)씨와 이영호(남·23·가명)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대가 들려주는 이성 친구 관계의 모든 것
“연애 상담도 하는 등 연인과는 달라”
독점욕, 소유욕 생겨 우정이 깨지기도

현재 애인이 없는 박씨와 전씨와 달리 양씨와 이씨는 각자 사귀는 사람이 있다. 알고 지낸 시간이 상당한 만큼, 각자 연인과 사귀고 헤어지는 모습도 여러 번 지켜보았단다. 오래된 우정 때문에 애인과 트러블이 생긴 적이 있느냐 물었다.

양유정(이하 양) 바로 지금이요.(웃음) 저는 남사친이 많은 편인데 남자친구가 좋아하진 않거든요. 지금까진 항상 (남사친을) 만난다고 말을 했는데, 오늘은 왠지 말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숨겼어요.

이영호(이하 이) 얼마 전 유정이에게 빚을 진 게 있어서 고마운 마음에 ‘같이 가자’는 유정이의 청을 승낙했어요. 연애 문제로 조언을 구했는데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관점으로 얘기를 해줬어요. 제 애인도 여사친을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이라 알리지 않고 왔어요.

박기영(이하 박) 저도 원래 이성 친구에게 연애 상담을 자주했었는데 이제는 바뀌었어요. 연애하는 상대방이 싫어해서요. 문제가 있으면 너랑 나랑 풀어야지 왜 우리 얘기를 남에게 하냐고 말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뒷담’이 되는 거죠. 그런 점을 인지 못 해서 크게 고생한 적이 있어요.

서로의 연인에게 평범한 친구 이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남사친과 여사친. 동성친구를 대할 때와 차이점이 있을까?

집단 내 독백이라고 아세요? 우리는 만나면 서로 딴 얘기를 해요. 그게 어색하지 않고 편안해요.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합치점이 생겨서 얘기를 이어가기도 해요. 특별히 생일을 챙기지도 않고, 연인한테 기대하는 전화나 메시지 같은 것도 안 하죠.

전진수(이하 전) 기대가 전혀 없지.

저는 좀 다른데 친한 동성친구가 생일을 챙기지 않으면 섭섭하잖아요. 남사친도 똑같아요. 동성친구보다 거침없이 대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여자인 친구들은 어떤 부분에서 상처받을지를 아니까 좀 더 조심하게 되는데, 남자인 친구들한테는 가끔 말을 막 하기도 하고 리액션도 과하게 해요. 가끔 때리면서 하기도 하고.(웃음)

남자끼리는 툭툭 치기도 하고 욕을 할 수도 있지만 여자인 친구들한테 똑같이 하면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조심하는 편입니다.

남자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전혀 몰랐어요.

저는 또래 남자애들보다 조심스럽게 말하는 편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상처받거나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죠.

세진이는 말을 좀 예쁘게 하는 편이죠. 공감능력도 다른 남자애들보다 좋은 편입니다.

그런 남자애들이 여사친이 많아요. 남자인 친구들 중에서도 더 특별한 친구죠.

서로 선을 지키고 배려하는 안정적인 관계가 있는가 하면, 감정이 어긋나서 틀어지는 경우도 있을 듯했다. 독점욕이나 소유욕이 생긴다면, 더 이상 전처럼 지낼 수 없는 게 아닐까?

엄청 친한 남사친이 저를 좋아하게 된 걸 눈치챘던 적이 있어요. 그렇다고 관계를 끊으면 친구를 잃게 되는 거니까. 서로 암묵적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늘 하던 대로 독서실 끝나면 새벽에 같이 컵라면도 먹으면서 3년 가까이 친하게 지냈죠.

그 친구가 제 친구였는데.(웃음) 만약 고백을 했다 차이면 친구 관계도 끊어질 거 같아서 그렇게 했다고 해요.

그때 그 친구는 제가 다른 친구랑 어울리는 걸 싫어하고 통제하려고 했는데, 저도 좀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위에서는 사귀는 사이 아니냐고 했는데 우리는 일말의 스킨십도 없는 그냥 친구 사이였죠.

그런 독점욕이나 소유욕은 동성친구들 사이에서도 있잖아요. 나랑 친하니까 나하고만 있어줬으면 하는 거 같은 거죠. 그런 게 꼭 연애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한 여사친이 있었어요. 내 생일 때였어요. 같이 밥 먹고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주차장 한 바퀴를 돌자고 하는 겁니다. 느낌이 뭔가 이상하고 순간 큰일 났다 싶었어요. 한 바퀴 돌았는데 또 한 바퀴를 돌자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결국 사랑 고백을 했는데 나는 단지 친구로 생각하니까 당황스러웠어요.

친구 사이도 끝이었겠네요.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는 호감이 있는 여성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 일단 친구가 되었다가 고백을 할까 말까 우물쭈물하는 남자를 여럿 상담했다고 한다. “남자들은 주식으로 치면 ‘장기 투자’ 같은 느낌으로 이성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꽤 많다. 친구로 시작해서 나중에 연인이 된다? 이건 거의 불가능하다. 여자들은 초기부터 친구, 지인, 연애 상대 등으로 카테고리를 확실하게 나누는 편이다.”

오래 알던 사람과는 안 사귀게 돼요. 지인 분류 작업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만났을 때 친구면 친구, 지인이면 지인, 좋으면 이성으로만 대해요.

대학 입학하면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고, 그중 한 명과 연애를 하니깐 오래 만난 사람이랑 연애할 일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원래 영호가 왜소했어요.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어깨도 넓어지고 멋있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연애)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운동 좀 했는데? 옷발 좀 받네?’ 하고 마는 거지요.

어떤 사람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해야 연애감정이 생기잖아요. 하지만 남사친은 이미 다 알고 있고, 속마음 다 터놓았고,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않기에 그냥 친구죠.

그 부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오래된 친구여도 어떤 한 모습에 반할 수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공감을 하는데 사람마다 경우가 다른 거니까. 가능성을 닫고 배제할 수는 없어요.

연애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아까 얘기했다시피 애인이랑 싸운 이야기를 남사친에게 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얘기했다고 화를 내는 애인도 있잖아요. 부모님 세대는 남자랑 여자랑 친하게 지내고 단둘이 만나 밥만 먹어도 연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무조건 있다고 생각하시죠.

부모님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또래도 그래요. 남사친, 여사친이라는 표현이 나오고부터 더 격렬하게 ‘남자와 여자 사이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술과 밤이 있는 이상!(웃음)

그래서 이 세상에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웃음)

남사친, 여사친이란 말은 사실 핑계고, 사귀는 게 시간문제인 관계, 썸남과 썸녀의 과도기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친구 중에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데 연인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한쪽이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는 바람에 둘이 술을 거하게 먹고 어쩌다 같이 밤을 보내게 된 거예요. 그런데 다음날 서로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 그냥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해요.

책임이나 부담을 지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군대를 갔다 와서 여사친과 잤던 얘기를 여기저기 자랑하고 떠벌리는 남자들을 봤는데,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치고 행실이 좋은 이는 없어요. (남사친, 여사친 관계에서 성적인 환상을 자극하는 얘기를 들어도) 전혀 부럽지 않고, 그런 말 하고 다니는 사람은 격이 떨어져 보여요.

드라마 <쌈, 마이웨이>(KBS2, 2017) 보셨어요? 오랜 친구였던 동만(박서준)이랑 애라(김지원), 주만(안재홍)이와 설희(송하윤)가 커플인데요. 남사친과 여사친 사이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이야기죠. 한편 애라와 주만, 설희와 동만은 남사친 여사친인 거죠.

사람 관계에서 불거지는 여러 가지 문제는 남사친과 여사친 관계보다 연인 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김정훈씨는 “연인의 남사친, 여사친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거의 종교와 정치에 버금가는 사랑의 가치관이다. 논리적인 설득은 의미가 없다. 남사친, 여사친을 받아들이는, 그런 관점이 통하는 이들끼리는 연인이 될 필요도 있다”고 조언한다.

고백을 했다가 친구 관계가 망가지거나 거절당한 뒤 어색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고단한 마음을 안고 사는 이들도 있다. 만약 이런 고민을 하는 중이라면 김현정 연애칼럼니스트의 조언을 귀담아들어보자. “고백을 하면 받아줘야 한다는 자의식 과잉이 있다. 자기의 설렘이 우선시되는 것이다. 자기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 거다. 연애가 자기만족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한다. 나도 거절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부한다면 관계는 그저 환상인 것이다.” 김현정씨는 이성친구와의 우정이 불완전하고 한시적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도 덧붙여 말했다. “동성친구 관계도 마찬가지고, 모든 만남, 관계가 언젠가 끝난다. 지금 옆에 있는 단짝 친구와 얼마나 오랫동안 우정을 나눴느냐고, 그 사이에 다른 친구는 없었냐고 물어보면 그제야 다들 친구관계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친구관계를 점검하는 것에 너무 겁을 내지 않았으면 한다.”

정리 유선주(드라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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