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골목식당> 중 홍은동 포방터시장편의 한 장면. 사진 <에스비에스>(SBS) 화면 갈무리.
지구의 만유인력이 달을 잡아당기듯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포방터시장 돈가스집의 ‘인싸력’(영어 단어 ‘인사이더’와 힘의 뜻을 가진 한자음 ‘력’을 합한 신조어)이 나를 붙잡는다. 겉으로는 “대체 왜 줄까지 서서 그걸 먹어”라며 관심 없는 척하지만, 솔직히 그 돈가스가 어떤 맛인지 너무 궁금해서 후기를 찾아보며 모양새를 유심히 살핀 적이 여러 번이다.
인스타그램에 영어로 ‘피크닉’(piknic)을 검색하면, 이 전시 공간의 간판 사진이 쫙 뜬다. 간판이 대체 뭐가 중요한가? 대부분 사진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빛나는 간판을 찍어 구별 없이 비슷하다. 날씨 좋은 휴일, 피크닉이란 전시 공간에 가보면 이 각도로 사진을 찍기 위한 포토 스폿에 수십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다. 이 사진이 한때 핵인싸(인싸 중의 인싸를 뜻함)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내 휴대전화의 사진첩에도 같은 사진이 있다. 아무도 없을 때 몰래 가서 한 장을 찍어뒀다. 은밀한 핵인싸 워너비인 셈이다. 핵인싸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욕망과 특정 이슈나 공간 혹은 문화가 시류를 타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은 마치 작용과 반작용처럼 그 크기가 같다. 그리고 그게 내가 정의하는 ‘인싸력’이다.
현상을 유지하며 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인싸력은 스트레스기도 하다. 스타트업 요식업체에 다니는 한 후배는 요새 ‘솥밥’이 싫다. 민어 솥밥, 채끝 솥밥 등이 유행하자 회사에서 급기야 최고의 솥밥 경험을 자랑하는 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이 흐름에 휩쓸려 솥밥만 먹으러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뉴스 플랫폼 <허프포스트코리아>의 한 후배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도 드라마 <스카이캐슬> 얘기를 해서 결국 방영 중간에 1화부터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다들 그 얘기를 하니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내가 아는 한 선배는 동료들끼리 만나 <스카이캐슬> 얘기를 시작하면 슬쩍 자리를 피한다. 그의 정지 관성을 이기기엔 <스카이캐슬>의 인싸력이 아직 부족하다.
인싸력의 대척점에 있는 게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영위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맥주’나 ‘간장이나 양념 같은 것은 일체 치지 않고 그냥 새하얀, 매끈매끈한 두부를 꿀꺽하고 먹어치우는 일’이 하루키의 확실한 행복이다. 2018년에 유행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여기서 나왔다. 내 경우엔 휴일 아침부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수십 가지 요리를 머릿속에 늘어놓고 오후쯤에 하나를 정해 돈을 아끼지 않고 장을 봐 정성 들여 요리한 후 아내와 먹는 일이 확실히 행복이다. 겉으로는 핵인싸인 사람도 자신만의 확실한 행복을 찾는다. 예쁜 식당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게 취미인 자타공인 핵인싸 후배는 “사실 자주 찾는 카페에서 단골인 걸 알아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라며 “진짜 아끼는 카페는 절대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얕은 고민을 끝내고 “현대인은 인싸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갈팡질팡한다”는 식으로 겉멋 잔뜩 든 말을 내뱉었더니 친한 동생이 “무슨 소리냐”며 핀잔을 줬다. 한나절 줄을 서서 겨우 먹은 돈가스의 맛,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며 찍은 피크닉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의 희열이 바로 ‘소확행’이라는 얘기였다. “당신이 생각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하루키 책에나 나오는 말이고, 지금은 인싸가 되는 게 바로 소확행”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시 한번 얕은 고민을 끝내고 설을 앞둔 날 장모님과의 통화에서 “소셜미디어의 시류가 이 시대를 인싸와 소확행의 급류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겉멋을 냈더니 장모님께서 말씀하셨다. “박 서방, 나 때도 그랬어. 다들 광화문 여왕봉 다방이니 무교동 세시봉이니 다들 다녀왔다기에 나도 가보고. 주변 사람들 대화에 끼고 싶어서 봄이면 안양 딸기밭 다녀오고 겨울이면 수원 온천 유원지에 다녀오고 그랬어. 나이 들면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살게 돼. 별 것 아냐.” 아뿔싸 우리 장모님이 핵인싸였을 줄이야. 생각해보면 인싸력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소확행도 마찬가지다. ‘가심비’도 ‘욜로’도 영원할 것이다. 말만 바뀌겠지. 나는 앞으로 누군가 ‘핵인싸 신조어’를 가르쳐 주면 속으로 지금은 사라진 여왕봉 다방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할 것이다. 벌써 핵인싸들 사이에선 ‘핵인싸’라는 신조어를 지겨워한다는 소문도 있으니 하는 말이다.
박세회(허프포스트 뉴스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