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무인도에 혼자 한 달 머물게 된다면 가져가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지난 호 무인도 여행을 취재한 강나연 객원기자가 지난주에 던진 질문에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1초의 여유도 없이 숨 막히는 도시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무인도는 하염없이 지루한 공간일 겁니다. 제가 고른 건 지루함을 한 방에 날려버릴 만화책 <몬스터>와 <절대미각 식탐정>, 그리고 <섬>입니다. <몬스터>는 거장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로 살인마를 쫓는 의사의 집념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냅니다. 첫 장을 넘기면 ‘끝’을 보기 전까지 손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절대미각>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먹방’ ‘쿡방’을 챙겨 보는 이들에겐 리코타치즈 등 각종 식재료 정보도 접할 수 있는 만화죠. 맛을 감별하는 섬세한 혀와 거대한 위장을 가진 탐정이 사건을 시원하게 해결합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여름 태양 아래 아이스크림 녹듯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저 제목이 ‘섬’이라서 고른 <섬>은 다릅니다. 만화책과 달리 한장 한장을 넘기기가 힘듭니다.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됩니다. 한국에선 1980년 초판이 나온 <섬>은 알제리의 알제대 교수 장 그르니에(1898~1970)가 쓴 에세이입니다. 제 책장에 오래전부터 꽂혀 있던 이 책은 제 나이만큼 누렇게 변해 있습니다. 무인도 여행과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이번 호에서 다룬 지리산 산행과는 찰떡궁합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 30대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기 위해 지리산 여행을 선택한다는군요. 불현듯 삶이 남루하거나 미천하다는 생각이 들 때 큰 가방에 소금, 비옷 등을 구겨 넣고 지리산 종주에 나선다고 합니다. 30대인 강나연 객원기자가 그런 이입니다. 지리산 12개 봉우리를 1박3일 만에 종주한 그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맛봤다고 합니다. 30대만 지리산을 즐겨 찾는 건 아니랍니다. ‘플립플롭’(일명 ‘쪼리’라 불리는 슬리퍼), 반바지 차림의 20대들도 놀이동산 가듯 지리산 여행을 선뜻 선택한다고 합니다. ‘아재들의 산’으로 인식된, 빨치산 등 한국 현대사가 촘촘히 박힌 거대한 산이 청춘들의 등장으로 풍경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저도 <섬>을 들고 산과 사유의 세계로 빠져볼까 합니다.
※ESC 커버스토리 주제는 매주 알파벳 순서로 정해집니다. 다음 호 주제를 알아맞힌 분께는 ’써모스’ 진공단열 휴대용 텀블러를 드립니다. 보낼 곳 mh@hani.co.kr박미향 ESC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