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 부는 가을엔 훠궈를 찾는 이가 많다. 박미향 기자
코끝이 차가우니 드디어 가을이 왔다. 빙하 같은 생맥주,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하이볼(위스키 등과 탄산수를 섞은 술), 대낮의 스파클링 와인. 여름이라 누릴 수 있는 호사는 뒤로하고, 찬 기운이 돌아야 비로소 ‘이 맛이다’ 싶은 음식이 있다.
요즘처럼 발목까지 선득해지는 날씨에는 어김없이 훠궈(중국식 샤브샤브)를 찾는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중독성이 강한 음식이다. ‘훠궈’라는 문자메시지 하나면 어김없이 모이는 친구들이 있다.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중국에서 온 대형 체인 ‘하이디라오’. 서울 명동과 홍대, 강남역 등 서울 시내 다양한 곳에 있지만 늘 서울 본점 격인 명동점을 찾게 된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붉은빛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순간, 특유의 맵고 짜고 자극적인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의자 위에 가방과 겉옷을 올려놓으면 냄새가 배지 않도록 두꺼운 담요를 덮어주는 배려는 하이디라오만의 섬세한 서비스다. 테이블 위의 아이패드 메뉴판을 보고 육수가 다른 마라탕, 삼선탕, 버섯탕, 토마토탕 중 하나를 선택하고 원하는 재료를 고르면 주문 완료.
본격적으로 먹을 준비를 하고 지옥불처럼 끓는 마라탕에 각종 채소와 고기를 담근다. 쫀득한 양 어깨살을 부드러운 알배추로 돌돌 말아 흑식초에 찍어 먹으면 정수리에서 광천수 터지듯 땀이 흐른다. 산초와 화자오(매운맛을 내는 향신료 중 하나)를 넣어 칼칼하고 매운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고 연태고량주를 한잔 쭉 마시면 지난여름에 받았던 스트레스까지 사라진다. 자극적인 마라탕 다음에는 부드러운 삼선탕 차례다.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해 구멍이 잔뜩 난 언두부를 미리 넣어뒀다 한입 베어 물면 깊고 그윽한 육수가 입안 가득 퍼진다. 냉탕과 온탕에 몸을 번갈아 담그면 이런 기분일까? 사우나 하는 아저씨처럼, ‘어으 좋다’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정신없이 담그고 건지고 마시다 보면 포만감과 취기가 기분 좋게 들이닥친다.
‘배불러 죽겠어’를 연발하면서도 계속 국물을 떠 먹다, 땀에 젖은 티셔츠와 벌게진 얼굴로 웃으며 문을 나선다. 바람이 제법 차다. 정수리도, 몸도, 내 마음도 차분히 식는 가을밤이다.
백문영(<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