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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루콜라와 두부? 개성 살아있네!

등록 2021-05-27 05:00수정 2021-05-27 09:05

루콜라 비지전. 백문영 제공
루콜라 비지전. 백문영 제공

아무리 이율배반적인 것이 사람 마음의 속성이라지만 술꾼의 마음은 좀체 종잡을 수가 없다. 기름진 고기, 차가운 술, 짜디짠 국물을 그렇게 먹고 마시면서 드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지울 수는 없을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순간을 즐기면 좋을 텐데, 사람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이렇게 된 이상 ‘길티 플레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안줏거리를 찾자는 생각으로 찾은 곳이 서울 용산 ‘고두리’였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삼각지역 인근에 있는 고두리는 외관부터 달랐다. 왁자한 고깃집과 맥줏집을 지나 조용한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건물이 낯설었다. ‘매일 두부 만드는 집’이라는 문구가 믿음직했지만 ‘두부가 안주가 될까’ 사뭇 걱정도 됐다. 먼저 도착한 일행은 이미 혼자만의 삼겹살 파티 중이었다. ‘두붓집이라면서 불판에 고기라니 이게 웬일인가’ 싶었지만 메뉴를 보고서야 이해가 갔다. 두부 김치 삼겹살, 흑돼지 두부 김치, 목살 같은 돼지고기 메뉴를 기본으로 곱창 두부 전골, 생 순두부, 차돌 순두부찌개, 두부 부침 같은 두부 음식을 듬직하게 갖춰 놓았다. 고기 마니아와 건강 주의자를 모두 배려한 처사이지만 술꾼의 눈에는 그저 술 마시기 딱 좋은 메뉴일 뿐이었다.

산처럼 쌓여 있는 두부 김치 삼겹살에 차디찬 소주 한 잔 마시고 구운 김치와 두부를 씹어 삼킬 때쯤 기본 안주인 순두부가 나왔다. 일 인당 한 그릇, 간을 하지 않은 뽀얀 순두부를 받아 드는 순간 ‘오늘은 안심하고 마셔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서 파는 그냥 두부도 그렇게 맛있는데, 매일 직접 만드는 순두부 맛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기름진 고기를 먹었는데도 느껴지는 구수한 콩의 풍미, 씹지 않아도 입안에서 뭉개지는 부드럽고 포실한 식감, 적당히 짭조름한 간까지 완벽했다. 

곱창두부전골. 백문영 제공
곱창두부전골. 백문영 제공

고기에 두부를 얹어 다시 한 입, 두부만으로 소주 한 잔이 쉴 새 없이 들어갔다. 이 기세를 몰아 ‘곱창두부전골’과 ‘루콜라 비지전’을 주문했다. 곱창과 모두부가 가득 들어있는 곱창두부전골은 사실 일반적인 곱창전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신선하고 부들부들한 곱창과 단단하고 짭조름한 두부를 함께 곁들여 먹는 재미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다. 피자나 샐러드에만 곁들여 먹는 줄 알았던 이탈리아 시금치를 비지전에 올린 루콜라 비지전의 맛이 흥미로웠다. 비지 특유의 꾸덕꾸덕한 느낌과 아삭한 루콜라의 식감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로 찌개 대신 전을 부친다는 발상도 흥미로웠지만, 발사믹 식초와 각종 버섯이 섞인 이국적인 맛도 인상적이었다.

술을 마시면서 건강을 생각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다. 하지만 기왕 마시는 술, 매일 마실 거라면 죄책감을 더는 과정도 필요하다. 맛과 건강, 죄책감과 양심 사이에서 타협하지 않고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술집은 그리 많지 않다. 고기와 두부, 흔한 조합일 수 있지만 이곳의 맛은 결코 흔하지 않다. 백문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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