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그럼에도 꺼리는 것이 있었으니 ‘반죽’이다. 가루가 고루 섞여 윤기가 날 때까지 꾹꾹 눌러 치대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집에서 스파게티를 만들 때 시중에서 파는 건면(마른 면)을 고수하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바로 뽑아내는 생면으로 만드는 파스타가 인기라고 한다. 수분이 풍부하고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어 파스타 마니아 사이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으로 꼽힌다. 제면기의 대중화와 맞물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생면 파스타족’도 점점 늘고 있다. 이참에 배워볼까. 2012년 팝업스토어 ‘준 더 파스타’를 여는 등 생면 파스타의 매력을 꾸준히 알려온 이준 셰프(스와니예·도우룸 바이 스와니예 대표)에게 생면 파스타 만드는 법을 배웠다.
생면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본다니! 반죽 치대는 것을 싫어하는데도 들뜨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 맛보는 생면 파스타의 맛은 어떨까.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도우룸 바이 스와니예’를 찾았다. 매일 아침 직접 반죽한 수제 생면 파스타를 파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는 레스토랑이다. 동그란 원형 안경테에 짧게 자른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올린 이준 셰프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파스타는 공예와 비슷해요. 창의적이죠. 맛과 향뿐 아니라 두께, 모양, 크기, 색깔 등 원하는 대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죠. 반죽한 다음 썰거나 뜯는 칼국수나 수제비와 달리, 반죽할 때부터 두께나 길이를 달리할 수 있죠. 그때마다 이름도 제각각이고요. 오늘은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카르보나라 탈리아텔레’를 함께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생면으로 말이죠.”
‘카르보나라? 어렵지 않을까요?” “하하, 전혀 아닙니다. 달걀, 치즈만 있으면 돼요.” 지금껏 지레 겁먹고 한 번도 도전하지 못했던 카르보나라, 그것도 생면으로 먹는다니, 입안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생면 파스타 만들기에 들어갔다. 재료가 하나둘 조리대 위에 놓였다. 밀가루, 달걀노른자, 우유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가 전부다. 정말 단출했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 물을 쓰지 않는 게 신기했다. “생면 파스타는 물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죠. 일반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려면 물로 반죽할 수도 있겠지만, 파스타의 제맛을 제대로 살리긴 어렵죠. 맛과 풍미가 떨어지니까요. (흰자를 써도 되는데) 흰자를 덜어내고 노른자만 쓰는 것은 고소하고 담백함을 더하기 위함이에요.”
달걀의 수분만으로 밀가루 반죽이 가능할까. 호기심을 잔뜩 품은 채 본격적인 반죽에 들어갔다. 먼저 밀가루를 볼에 넣은 뒤 가운데 홈을 팠다. 그다음 준비한 달걀노른자, 우유, 올리브유를 섞었다. “밀가루는 어떤 것을 쓰나요?” 물었다. 이준 셰프는 “글루텐 함량이 적으면 반죽하기 힘들다”며 “크게 상관은 없지만 반죽을 수월하게 하려면 강력분”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소금이 빠진 것이 가장 의아했다. 한국인에게 ‘간간함’은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다. 그는 “취향대로 넣을 수도 있겠지만, 생면 고유의 맛을 즐기려면 넣지 않을 것을 권장한다”고 했다.
본격적인 치대기가 시작됐다. 역시나 손목이 아팠다. 이런 수고로운(?) 작업을 자주 하는 이준 셰프는 힘들지 않을까.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파스타는 소스보다 면이 더 중요하니까요.” 실제 그는 면이 파스타 맛의 90% 이상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밥이 맛있어야 다른 반찬들이 맛있는 것처럼, 면 요리는 면이 맛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가 미국의 요리학교 ‘시아이에이’(CIA)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링컨’의 창립멤버로 참여했을 당시 1년간 주방에서 파스타를 만들면서 얻은 결론이다.
그는 “소스가 면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면 요리의 장점은 면 자체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제 경우 면수를 약간 붓고 ‘파르미자노 레자노’(이탈리아 치즈 중 한 종류)와 후추를 뿌려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거든요. 면 자체의 맛을 즐기고 싶을 땐 종종 삶은 면만 먹기도 하고요.”
20여분쯤 반죽을 치댔을까. 하얗던 반죽이 점점 찰기가 생기면서 노르스름한 빛깔로 변하기 시작했다. 내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하, 하, 하’ 신음이 새어 나왔다. 손목의 힘도 조금씩 빠져 갔다. “절대 힘 빼면 안 돼요. 굉장히, 아주 열심히 치대는 것이 중요해요. 한 시간쯤.” 눈빛이 매서워진 이준 셰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1시간 남짓 지났을까. 의구심이 감탄으로 뒤바뀌었다. 물 없이도 파스타 반죽이 가능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이제 제면기에 넣고 면을 뽑으면 되죠?” 이준 셰프가 당황한 듯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내저었다. “끝났다니요? 가장 중요한, 숙성과 건조 과정이 남았어요.” 엥? 이건 또 무슨 뜻인가. “냉장고에서 2~3시간 숙성시켜야 합니다.” 밀가루가 수분을 빨아들이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으면 면 모양 자체가 어그러지거나 찢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란다. 조리기구로 자르는 등 면의 모양을 다 만들고 난 뒤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또 있다고 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나 냉장고에서 최소 하루 이상을 건조시켜야 쫀득한 식감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집에서 만들어 바로 먹을 땐 숙성 과정만 거쳐도 크게 상관없어요.”
이준 셰프가 제면기를 활용해 파스타면을 뽑아내고 있다. 사진 임경빈
숙성 과정을 거친 반죽을 도마에 올리고는 넓게 폈다. 제면기에 넣을 차례다. 수제 파스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제면기도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2만~3만원부터 수십만원대까지 가격도 다양하다. 이준 셰프의 손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반죽이 제면기를 한 번 통과하고 나올 때마다 덩이는 점점 얇아졌다. 언제까지 제면기에 반죽을 넣어야 할까. 이준 셰프는 “정해진 두께는 없어요. 취향대로. 오늘은 0.8㎜ 두께로 만들 거예요.”
0.8㎜로 얇아진 반죽을 도마에 얹었다. 알맞은 굵기대로 자르면 된다. 이때 이준 셰프가 반죽을 가로로 둘둘 말았다. “오늘 만드는 파스타의 특징이 ‘얇고 부드러운 면’이에요. 이에 맞춰 8㎜ 굵기로 썬 뒤 끓는 물에 넣고 삶을 겁니다.”
맛깔스러운 생면 카르보나라 탈리아텔레. 사진 임경빈
‘알 덴테’(al dente). 흔히 파스타 면을 삶는 최적의 팁으로 꼽힌다. 치아로 면을 끊었을 때, 너무 부드럽지도, 과다하게 딱딱하지도 않은, 살짝 덜 익은 듯해 씹는 식감이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한다. 생면 파스타도 ‘알 덴테’가 중요할까. “건조 면일 땐 ‘알 덴테’가 중요하지만, 생면 삶을 때는 굳이 개의치 않아도 돼요. 그냥 먹어도 고소해서 살짝 익히면 됩니다. 건조 면은 평균 7분 남짓 삶는데, 생면은 30초~1분 정도로 삶아야 합니다.”
삶은 면을 맛봤다. 부드럽고 촉촉한 맛이 시중에서 파는 건면 스파게티를 먹을 때와 차이가 확연했다. 음, 이 맛이었구나! ‘생면 파스타’를 찾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금이 안 들어가서인지 담백한 맛과 향이 더 진했다. 앞으로 ‘생면 파스타’만 찾게 될 것 같은 예감이 엄습했다. ‘반죽’하는 수고로움을 싫어하는데도 말이다.
카르보나라 소스를 만드는 과정도 놀라울 정도로 간단했다. 달걀노른자에 체에 간 ‘페코리노 로마노’(이탈리아 치즈 중 한 종류), 후추를 섞은 뒤 잘 익힌 베이컨을 마저 섞으니 완성됐다. 소스를 만드는 데 10분쯤 걸렸을까. 무엇이든 처음 해보는 것이 어렵고 두렵기 마련이다. 생면 파스타 만들어본 느낌? ‘생각보다 쉬운데!’ 자, 우리 모두 도전해 볼까요?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Noodles
국수. 밀, 쌀, 감자 등 곡물을 가루 내 반죽한 뒤 가늘고 길게 만든 음식. 다양한 재료로 만든 국물 또는 소스와 함께 먹음. 동양권에서는 긴 형태 때문에 장수의 상징으로 여김. 기원전 6000~5000년 전부터 인류가 먹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동서고금 최고의 인기 음식.
이준 셰프가 알려주는 생면 카르보나라 탈리아텔레 조리법
재료(4인분)생면: 밀가루 270g, 달걀노른자 170g,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5g, 우유 5g
(밀가루와 달걀노른자의 비율은 2:1.2)
소스: 달걀노른자 4개(6인분일 경우 달걀노른자는 6개), 베이컨,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 가능), 후추
생면 파스타 만드는 법1 볼 안에 준비한 밀가루를 넣는다. 밀가루 가운데를 움푹 파 공간을 만든다.
2 1의 공간에 달걀노른자,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우유를 붓는다.
3 포크를 이용해 2의 반죽을 섞고 한 덩어리로 뭉쳐질 때까지 1시간 정도 치댄다.
4 3의 반죽을 2~3시간 남짓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5 제면기를 이용해 원하는 두께에 맞춰 반죽을 편다.
6 5의 반죽 위에 밀가루를 약간 뿌리고, 가로로 길게 접은 뒤 원하는 두께로 썰어낸다.
7 끓는 물에 파스타를 넣고 30초~1분 남짓 삶는다.
8 파스타 면에 소스를 뿌리고 버무려 접시에 담는다.
생면 파스타 만들기 과정. 위에서부터 1 밀가루에 달걀노른자,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우유를 섞는다→ 2. 반죽하기→ 3. 반죽-숙성의 과정을 거친 뒤 제면기로 파스타를 뽑아낸 다음 적당한 크기로 썬다→ 4 .완성된 생면. 사진 임경빈
카르보나라 소스 만드는 법 1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살짝 두른 뒤 베이컨을 바짝 굽는다.
2 볼에 1의 구운 베이컨, 달걀노른자와 후추, 체를 이용해 간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넣고 섞는다. 베이컨과 치즈는 취향에 따라 더 넣어도 된다.
카르보나라 탈리아텔레 만들기 과정. 위에서부터 1. 생면을 끓는물에 넣어 삶는다→2 .달걀노른자와 후추, 체로 간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섞는다→3. 삶은 생면을 2의 카르보나라소스와 후라이팬에 바짝 익힌 베이컨으로 버무린다→4. 완성된 카르보나라 탈리아텔레. 사진 임경빈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