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후암동에 있는 ‘창수린’의 국수. 박미향 기자
최근 몇 년 외식업계의 유행을 이끈 건 ‘베트남 국수’입니다. 이름도 낯선 베트남 국수 전문점들이 트렌드세터들이 모인다는 서울 이태원, 명동 등지에 생겨나더니 하루가 다르게 점포를 늘려갔습니다. 중장년층에게 끼니는 밥으로 통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에겐 국수가 ‘소울 푸드’죠. 본래 밥과 비벼 먹던 물회에도 이들 입맛의 영향으로 면이 들어갔습니다. 면이 들어간 물회가 마치 전통식인 듯 오해하는 이들도 있답니다. 우리네 전통음식도 이러할진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외식업계야 오죽하겠습니까.
저에게 국수는 아버지의 음식입니다. “자, 반죽 나왔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떨어지면 저를 포함한 딸 넷은 신문지를 깔고 찬장에서 국수 기계를 꺼내 어머니가 주신 반죽을 기계에 밀어넣고 룰루랄라 노래를 불렀습니다. 곧 ‘어머니표 국수’를 먹을 생각에 풍선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지요. 제가 기계 손잡이를 돌리면 동생들은 쭉쭉 밀려 나오는 얇은 반죽에 밀가루를 뿌려 가며 뭉치지 않게 폈지요. 그다음엔 길고 가는 가락을 뽑기 위해 기계를 다시 돌립니다. 동생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기계 손잡이를 돌리겠다고 떼쓰다가 그것마저 귀찮아지면 마당으로 뛰쳐나가 햇볕을 맞으면서 소꿉놀이를 하곤 했죠. 유난히 국수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입맛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면식 수행자’가 돼버렸습니다. 아련한 제 유년의 기억은 지금도 비 오는 어느 휴일이면 심장을 파고듭니다.
이번 호 주제는 국수입니다. 이병학 선임기자가 대구의 국수 골목을 이틀에 걸쳐 종횡무진하며 9가지 국수를 섭렵했습니다. 골목마다 장승처럼 버틴, 50년 넘는 국숫집 얘기를 읽고선 아버지가 왜 그토록 국수를 좋아하셨는지 알게 됐습니다. 경상도가 고향이었던 아버지의 ‘소울 푸드’는 국수였던 거죠.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먹을 때마다 3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우리 국수보다 요즘 트렌드인 베트남 국수가 궁금한 독자님은 호찌민 여행을 통해 현지 베트남 국수 맛을 본 이정국 기자의 아기자기한 얘기를 주머니에 쏙 넣으시면 됩니다.
보너스로 최근 제가 간 한 국숫집을 알려드릴까요? 고즈넉한 후암동 거리에 있는 ‘창수린’은 타이 음식 전문점인데 타이 여행을 다녀온 이들에 따르면 “현지 길거리 음식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박미향 ESC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