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준 대표가 수제 안경을 만들고 있는 모습.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안경 착용 여부에 따라 사람의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시경과 탁재훈은 안경으로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굳이 시력이 나쁘지 않더라도 도수가 없거나 렌즈가 없는 안경을 개성 표출의 수단으로 하는 이들이 많다. 안경이 단순히 시력교정의 목적뿐 아니라 ‘패션 소품’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다채로운 디자인과 색상 표현이 가능한, 세상의 단 한개뿐인 안경을 만들 수 있는, 수제 안경이 주목받고 있다.
처음엔 파란색 건물의 강렬함에 끌려 발길이 머물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요지경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형형색색에다 모양도 원, 타원, 삼각, 사각 등으로 다양한, 기존의 안경점에서 볼 수 없는 색상과 디자인의 안경들이 전시돼 있다. 흡사 진귀한 안경만을 모아놓은 ‘안경 박물관’ 같다.
이곳의 정체는 해가 진 다음 더욱 분명해진다. 밤이 되면 안경을 형상화한 네온사인이 켜진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의 안경은 가라!’가 이곳의 존재 이유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창작촌에 위치한 ‘로코안경공방’. 공방이란 말 그대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디자인의 안경테나 선글라스를 직접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안경사, 안경디자이너, 안경회사 직원 등 안경을 좋아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4년 문을 열었다. 지난 13일 이곳에서 김희준 대표를 만났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로코안경공방’ 간판. 로코안경공방 제공.
-수제 안경을 언제,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됐나?
“2013년 안경업계에 종사하면서 친분을 쌓은 7명이 수제 안경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한때 안경점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항상 같은 안경을 파는 일이 재미가 없었다.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안경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뭉쳐서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이한 안경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나라는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과 더불어 수제 안경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몇 안 되는 나라다. 하지만 지금은 수제 안경을 만들 수 있는 기술과 기술자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
-굳이 말조차도 생소한 수제 안경을 택한 이유가 있나?
“안경을 좋아하는 사람의 기본은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산다는 데 있지 않다. 그것만으로 만족 못한다. 전세계 희귀한 안경테를 다 모은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건 ‘내가 디자인한 안경’에 대한 갈증과 욕망이다.”
공방 벽에는 직접 디자인한 안경테의 도안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수제 안경의 가장 큰 특징은 뭔가?
“안경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재단, 형태를 만드는 과정을 모두 손으로 한다. 인터넷이나 몇몇 안경점이 ‘수제 안경’을 표방하지만 주로 기계로 만들고 수작업이 약간 더해지는 경우가 다수다. 우리는 자체 개발한 방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안경 형태를 만든다.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보면 된다.”
-수제 안경에만 사용하는 소재가 따로 있나?
“아세테이트다. 명품 안경테 재료나 고급 액세서리 재료로 주로 쓰이고 있다. 천연소재라 인체에 무해한 것이 장점이다. 도색용 칼라가 아니라 점토처럼 색상이 섞여 있어 깎아도 색상에 변화가 없다. 지금은 이 재질로 수제 안경을 만드는 곳이 거의 사라졌다. 작업 공정이 25단계에 이를 정도로 복잡하고 그만큼 사람 손을 많이 거쳐야 해서 값싼 티아르(TR·플라스틱)테로 바뀌었다. 티아르 재질의 뿔테는 기계로 모양을 찍어내지만, 아세테이트 안경은 깎는 방식이다. 아세테이트로 만든 안경은 테에 상처가 나면 다시 다듬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수제 안경의 매력은?
“만드는 과정 자체가 신기하고 흥미롭다. 무엇보다 얼굴 크기와 모양,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꼭 맞춤한 안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목공처럼 본인이 만드는 동안 마음의 휴식을 찾게 되는 등의 장점이 있다. 자신의 안경을 몸소 만드는 재미와 희열도 있다.”
수제 안경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들. 로코안경공방 제공.
-주로 어떤 고객들이 공방을 찾나?
“착용하던 명품 브랜드의 안경테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아 주문 제작이 필요한 경우, 할아버지 등 조상들이 썼던 안경테와 같은 모양을 원하는 경우 이곳을 찾는다. 즉,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시중에서 찾을 수 없을 때 직접 제작 체험을 하거나 주문 제작을 한다. 또 얼굴이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서 시중에 파는 안경테가 맞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는 고객이 주문 제작을 의뢰하기도 한다.”
-이곳을 찾은 유명인들이 있나?
“영화 촬영 콘셉트에 맞게 주문 제작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봉 예정인 영화 <공작>과 <1987>에 나오는 안경테를 최근에 제작했다. 가수 하림, 개그우먼 허안나, 장도연도 의뢰해서 제작한 적이 있다.”
-수제 안경을 만드는 기간은 보통 얼마나 걸리나?
“하루 2~3시간 작업한다고 했을 때 보통 한달 걸린다. 일반인의 경우 서너달 잡아야 한다. 제작 기간은 개인마다 시간적 여유와 능력 차가 있어 천차만별이다. 공방에서 전문적으로 수제 안경을 만든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한달 동안 5점밖에 못 만들고, 밤을 새워서 꼬박 만든다고 해도 2주 넘게 걸린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 정성이 투영되는 과정이다.”
-수제 안경 체험은 어떻게 진행되나?
“보통 4회 강습부터 진행된다. 색상과 디자인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 디자인을 결정하면, 우리가 도안을 만들어주고 본인이 그대로 테를 깎아 만들어가는 거다. 장소는 이곳 문래점과 노원구 화랑대점 중에서 편한 곳으로 오면 된다.”
-수제 안경테의 가격대는?
“안경을 좋아하거나 안경을 수집하는 분들, 안경 전문 브랜드를 선호하는 분들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안경테에 돈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다수의 입장에서 보면 고가로 느껴질 법하다. 주문 제작이 30만원이고, 직접 공방에서 제작 체험을 하는 경우 23만원이다.”
로코안경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명신(왼쪽부터)·신상균·박정미·김희준. 로코안경공방 제공.
-공방을 찾는 이들은 얼마나 되나?
“한달에 10명 남짓인데,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것이다. 어려운 작업이라는 편견 때문인지 여성보다는 남성이 월등히 많다. 하지만 여성들이 꼼꼼하고 섬세하게 잘 만든다. 고등학생이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대중에게 수제 안경은 아직 생소하다. 공방 운영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거 같은데.
“그렇다. 우리들은 각자 다 직업이 따로 있다. 돈이나 수익과 상관없이 하는 이유는 자긍심 때문이다. 우리마저 수제 안경과 그 제조 기술을 포기할 경우 손으로 안경테를 만드는 기술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가죽, 가구, 액세서리 공방처럼 언젠가는 직접 만드는 안경에 대한 관심과 인기도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수제 안경 마니아층이 따로 있나?
“안경 마니아 중의 50%가 수제 안경 마니아라고 보면 된다. 안경 마니아 저변이 상대적으로 넓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분들이 수제 안경에 대해 생소해한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수제 장인을 꼽으라면 세계적으로 일본에 한명, 유럽에 한명뿐이고, 그다음이 우리 공방이다. 우리가 개발한 수제 제작법을 널리 퍼뜨리고 하루빨리 수제 안경 저변을 활성화하고 싶다. 더 많은 분들이 수제 안경에 관심을 갖고, 또 수제 안경을 만드는 곳이 더 늘어났으면 한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Optician & Glasses
안경사·안경원과 안경. 안경은 인류의 오래된 시력보조 도구이자 패션 아이템. 이것을 다루는 이가 안경사, 이것을 거래하는 곳이 안경점이다. 안경은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스마트 디바이스로도 활용된다. 대량 생산하지 않는 하우스브랜드에서 나온 다양한 안경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자신의 안경을 직접 만드는 수제 안경 공방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미지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 어울리면서도 편안한 안경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