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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걷다 발견…등대 같은 맛집

등록 2017-11-15 19:30수정 2017-11-16 11:08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르 파르.  백문영 제공
르 파르. 백문영 제공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마포구 합정동까지는 지하철로 1시간 거리다. 가벼운 마음으로 결코 나설 수 없는 거리지만 합정동만이 줄 수 있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포기할 수 없다. 합정역 7번 출구에서 길을 건너면 골목이 하나 나온다. 그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한적한 주택가, 할인 마트까지 있는 살가운 옛 동네 정경이 나타난다. 세련된 ‘와인 바’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조용하고 차분한 동네 분위기가 오히려 새롭다.

10여분을 걸어 마주친 곳 ‘르 파르’(Le phare). 프랑스말로 ‘등대’를 의미한다. 은은한 암녹색 간판, 블랙보드에 손으로 직접 쓴 오늘의 메뉴까지. 내실 있는 맛집이 분명하다는 특유의 ‘촉’이 발동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와인도, 음식도 모두 당신(종업원)에게 일임한다’라고 말하고 실내를 찬찬히 살펴봤다. 단단한 나무로 만든 널찍한 바 테이블, 유리창 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3개의 작은 테이블까지. 막 데이트를 시작한 연인과도, 언제 만나도 편한 친구와도 부담 없이 와인과 음식을 나누기 좋은 공간이다.

독일 라인헤센 지역에서 생산한 리슬링 와인을 주문했다. “리슬링 품종으로 유명한 모젤 지역 리슬링보다 산도와 미네랄이 돋보이는 와인”이라는 김현수 오너 소믈리에의 설명이 뒤를 이었다. 스페인의 새우 요리 ‘감바스’와 마늘과 올리브유로만 맛을 낸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도 함께 골랐다. 차갑게 식은 리슬링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 마늘과 새우, 올리브오일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향이 레스토랑에 가득 퍼지는 듯하다. “여기 엄청 좋다. 역시 전문가 맞네”라며 일행과 농담을 주고받다 보면 음식이 등장한다. 친구 집에서 대접받는 듯,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넉넉히 넣은 이곳의 음식은 볼수록 정겹다.

새우 한 입, 리슬링 와인 한 모금에, 파스타 한 포크 돌돌 말아 상대방 입에 넣었다. 짠맛은 짠맛대로 살린, 고소한 마늘의 향도 제대로 살린 이곳의 음식은 산미가 강한 리슬링 와인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양갈비 스테이크’이다. 은은한 불에 천천히 구운 양갈비 두 대와 가지, 파프리카, 브로콜리 등 각종 채소가 커다란 접시에 한가득 나왔다. 뼈가 붙은 양갈비의 살을 솜씨 좋게 발라내 새콤한 소스에 찍어 먹었다. 양고기의 감칠맛과 소스의 깊은 맛이 어우러진다.

신나게 먹고, 마시고, 속삭이고 나니 마음에도 등대가 켜진 듯 모든 것이 선명하고 분명해졌다. 좋은 음식과 좋은 와인, 좋은 장소가 주는 포만감과 만족감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등대처럼 든든하게 앞날을 밝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문영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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