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술판 싱싱! 겨울올림픽,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록 2018-02-28 19:54수정 2018-02-28 20:00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기 사랑하기

‘가제트 술집’. 백문영 제공
‘가제트 술집’. 백문영 제공
온 나라를 시끌시끌 달궜던 평창겨울올림픽도 끝났다. 스포츠는커녕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하지만 이번 겨울올림픽은 남달랐다. 하이라이트 장면을 되감기로 다시 돌려보고, 또 돌려보기를 여러 번. 지금 당장 출전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마음만은 국가대표다. 숨죽여 경기를 지켜보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까? 가슴은 벅차오르고, 마음은 뭉클해진다. 스스로 애국자라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내가 국위선양의 아이콘이자 독립투사다. 경기를 지켜본 뒤 ‘뒤풀이하자’고 친구를 꼬여 낸 것은 술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애국심 때문이다. 어차피 마실 술, 오늘은 한국 술을 마시자고 결의하고 서울 합정동에 있는 ‘가제트 술집’으로 향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탁자 네다섯 개가 전부인 매장은 뒷사람과 등을 붙이고 앉아야 할 정도로 작다. 좁다는 느낌보다는 아늑하다는 기분이 먼저 드는 이유는 역시 술이 주는 안온함 때문일까? 벽면에 붙어 있는 ‘이번 달의 추천 술’은 전라남도에서 올라온 ‘정고집 옛날 생동동주’. ‘제대로 만든 동동주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는 내 말에 함께 간 친구는 “이 동동주는 꼭 마셔봐야 한다”고 말하며 위풍당당하게 1리터를 주문한다. 이곳에서는 모든 막걸리를 투명한 유리 저그에 담아 500㎖, 1L 단위로 판매한다.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생동동주는 일반적으로 마시던 동동주와는 색깔부터 혀에 닿는 느낌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식혜를 마시는 듯 가볍고 산뜻한 느낌에 쌀알이 떠 있는 모양새를 보고 “이래서 동동주라 부르는구나”라고 외쳤다. 와인잔을 돌리듯 잔을 휘휘 움직여 한입 후루룩 삼키고, 기본 안주로 나온 오징어젓갈도 집어 먹는다.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개운해지고 식욕이 폭발한다.

새콤달콤한 동동주와 어울리는 매콤한 낙지볶음을 주문하고 또 한 모금 마신다. 차림표엔 모든 안주의 조리 시간이 적혀 있다. 식탐 많고 성질 급한 취객을 배려한 모양새에 문득 웃음이 터졌다. 약 12분이 소요된다는 낙지볶음을 기다린 지 10분 만에 불향을 입힌 매콤한 접시가 등장한다. ‘정말로 잔에 구멍이 뚫린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동동주 한 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경상북도 봉화에서 만든 ‘청량주’를 주문한다. 달지 않은 깔끔한 뒷맛이 계속해서 ‘한잔 더’를 부른다. 뻔하고 흔한 조합이지만 막걸리와 전은 운명 공동체다. 녹두전, 가리비젓, 명태회 무침, 명란젓을 한 접시로 묶은 ‘가제트 대표 선수’를 주문하고 ‘김포 금쌀 생막걸리’도 추가한다.

코끝까지는 봄이 왔다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뜨끈한 실내에서 김 서린 창문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가운 한 잔의 막걸리는 그야말로 보약이다. 날카로운 스케이트날이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듯 식도를 따라 서늘하게 내려가는 한 잔의 술은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자 내일을 벼리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어느새 반달 모양 눈으로 웃고 있는 친구와 겨울올림픽 마스코트 반다비처럼 한껏 부푼 배를 떵떵 두드리며 잔을 부딪친다.

백문영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1.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2.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3.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ESC] 지구에서 가장 오래 안 잔 사람이 궁금해! 4.

[ESC] 지구에서 가장 오래 안 잔 사람이 궁금해!

인간이 닿지 않은 50년 ‘비밀의 숲’…베일 벗자 황금빛 탄성 5.

인간이 닿지 않은 50년 ‘비밀의 숲’…베일 벗자 황금빛 탄성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