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대범은 인스타그램에서 ‘괴식 라면 전도사’로 통한다.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괴식이 화제라고요? 저부터 찾으셨어야죠. ‘라면’=‘김대범’ 아닙니까. 라면의 고급화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한국방송>(KBS)의 <개그콘서트> ‘마빡이’와 페이스북 ‘착한 공약’으로 널리 알려진 개그맨 김대범(39). 최근엔 방송에서보다 팟캐스트에서 맹활약 중이다. 박성호·황현희와 함께하는 ‘썰빵’, 우상호(국회의원)·한준호(전 <문화방송> 아나운서)와 함께 ‘아개정’을 진행하고 있다.
정작 그를 주목받게 만드는 건 ‘라면’이다. 에스엔에스(SNS)에서 그는 이색 라면 요리를 선보이는 ‘야매(?) 요리사’로 통한다. 실제 그의 인스타그램(@gagkdb16)엔 직접 개발한, 라면으로 만든 갖가지 조리법이 등장한다. 지난해 6월부터 1분짜리 짧은 요리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1년도 채 안 된 현재까지 팔로어가 3만3600명에 이른다. 대단한 인기다. 최근 그에겐 이름 하나가 더 생겼다. 위트 넘치는, 재미와 놀이로서 유쾌한 괴식 라면의 전도사.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내 한 커피점에서 만났을 때,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개그맨이 요리라니, 신기하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인데, 요리사 출신입니다.” 정식 요리사 자격증은 없는데, 개그맨 시험을 준비하며 경희대 인근 대형 이탈리아 음식 전문 레스토랑 ‘팬하우스’ 주방에서 1년 남짓 일했다고 한다. 군대에서는 장교 취사병을 하며 한식 조리법을 섭렵했다. “밀가루를 반죽해 면을 뽑을 줄도 알고, 돼지를 직접 잡아 잡냄새 없이 삶을 자신도 있어요. 야전(?)에서 더 치열하게 요리를 배운 덕분이죠.”
어쩐지 요리 동영상에 등장하는 그의 칼 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싶었다. 양파, 당근, 파, 고추 등을 어슷썰기 할 때는 유명 셰프 못지않은 정교함과 품격이 느껴졌다. 그가 만드는 요리의 주재료는 라면이다. 여기에 다른 식재료와 조리법 1~2개만 더해 유명 레스토랑이나 식당에서 먹는 것처럼 고급스러움을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라면, 수제비, 짜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3대 음식이죠. 라면은 거의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개그맨 김대범은 인스타그램에서 ‘괴식 라면 전도사’로 통한다. 왼쪽은 ‘먹방’을 담당하는 후배 개그맨 정영진.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지금껏 그가 개발한 라면 레시피는 100여개에 이른다. 파볶음라면, 냉짬뽕, 초계냉라면, 만두소 짜장라면, 비빔면으로 만든 부산밀면, 고기짜장볶음면, 낙곱새볶음면, 물회비빔면, 짜장찜닭면, 레알 나가사키짬뽕, 짜장라면으로 만든 중국식 쟁반짜장 등 다양하다. 고추, 파, 숙주, 오이, 깻잎 등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10~15분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그의 ‘라면 요리 동영상’마다 “당장 먹고 싶다” “형! 저도 불러줘요” “우리 집 전속 요리사가 되어 주세요” “형이 식당 차리면 좋겠어요” 등의 댓글이 달리는 이유다.
라면 요리의 장점은 자르고, 썰고, 볶아도 양념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이다. 그는 “한 가지 재료만 첨가했을 뿐인데, 맛이 달라지고 고급스러워진다”고 평했다. “‘저렇게까지 조리해서 먹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분도 있지만, 라면이야말로 요즘 말로 ‘가성비’ 뛰어난 요리 중 하나 아니겠어요?”
최근 화제를 모은 ‘우유콜라라면’에 대해 물었다. 그는 “솔직히 안 당겨서 만들 시도조차 안 했다”고 했다. “음식으로 장난치는 것 같고. 제 상식에서는 맛없어 보였어요. 한편으로는 이런 것이 이슈가 되는구나,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맛있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혹시 모르죠. 제가 타고난 ‘관종’(관심종자)이라 당장 내일부터 괴식,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음식을 선보일지도 몰라요. 하하하.”
그가 만든 라면 중에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의외로 ‘진짜 새우탕면’이다. 프라이팬에 올리브기름을 두른 뒤 새우, 마을, 홍고추를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인 다음 면을 넣고 먹기 직전 숙주나물을 넣어 만든다. “물만 붓는 새우탕 컵라면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반응이 뜨거워서 놀랐어요. 아직도 미스터리예요.” 새우가 없는 새우탕면에 말랑말랑하고 신선한 진짜 새우가 떡하니 자리 차지하고 네티즌들을 노려보니 회자될 수밖에.
반대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데, 외면받은 라면 요리가 있을까. 그는 ‘3대 진미 라면’을 꼽았다. 거금 50만원을 들여 캐비아(철갑상어 알), 푸아그라(거위 간), 트러플(송로버섯)을 구입해 넣었는데, 맛이 영 별로였다. 누리꾼의 반응도 냉담했다. “라면은 서민 요리답게 소박하게 끓여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라면은 뭐니 뭐니 해도 1인 가구나 자취·취업준비생들이 부담 없이 조리하고 먹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비빔면으로 만든 양장피는 뛰어난 맛에도 호응이 낮았는데, 양장피 구입이 번거로워서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는 “요리는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토로했다. 사람들의 입맛과 취향을 잘 모르겠다는 것. 그런 점에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심지어 맛까지 뛰어난 요리 레시피를 전수하는 백종원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스스로 만든 라면 중에 ‘독보적’이어서 추천하고 싶은 메뉴가 있는지 물었다. “육회비빔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비빔면에 오이, 양배추, 깻잎, 육회, 계란 노른자를 올린 다음 참기름과 깨를 뿌려 만든다. 그는 “불닭볶음면에 닭발, 치킨을 더해 만든 붉닭발볶음면, 불통닭볶음면도 맛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개그맨 김대범은 인스타그램에서 ‘괴식 라면 전도사’로 통한다.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레시피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로 얻는 곳은 딱히 없다. 머리카락 뜯으며 쥐어짜기도 하는데, 주로 음식을 먹다가 불현듯 떠오를 때가 많다. 육회비빔면도 광장시장에서 육회비빔밥을 먹다가 생각해냈다. 불닭볶음면, 불통닭볶음면도 닭발과 치킨을 먹는 와중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삼겹살, 치킨, 닭발, 육회 같은 걸 굳이 구입해 넣어 먹느니 ‘차라리 사먹겠다’는 댓글이 없는 건 아니에요. ‘라면을 쓸데없이 번거롭게 해서 먹는다’는 악플도 있고요.”
그는 앞으로도 ‘라면 요리 전도사’로서 활약할 생각이다. 그의 조리법 덕분에 ‘라면의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이들의 응원 덕분이다. “짜파게티로 만든 야키소바, 라면으로 만든 팟타이의 경우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대패삼겹살, 새우, 양배추, 양파, 청경채 등을 넣어 볶다가 따로 데쳐낸 면과 라면 수프를 넣어 볶는 조리방식인데, 정말로 야키소바나 팟타이 맛과 흡사해요.”
최근 업로드된 ‘돈코츠 라멘’은 정말로 느끼해 보였다. 그는 주저함 없이 “돈코츠 라멘은 원래 느끼해야 제맛”이라고 했다. 삼겹살로 낸 국물로 끓이고, 수육을 가미해서 실제 국물에 돼지기름이 둥둥 떠 있어야 한다는 것. “잡냄새와 느끼함을 없애는 팁을 알려드릴까요? 삼겹살 삶을 때 마늘을 많이 넣으면 돼요.”
“요리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그가 웃었다. “요리하고, 요리 콘텐츠를 제작하는 제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에요.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김대범이 ‘제2의 백종원’이 되는 날이 될 때까지. 대신 ‘구독’ 버튼 많이 눌러주세요. 이 자리를 빌려 김대범표 요리를 푹푹 먹어주는 ‘먹방’ 주인공인 개그맨 후배 정영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개그맨으로서 넘치는 아이디어가 창의적이고 유쾌한 괴식 라면 전도사로 변신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우유콜라라면’ & 괴식 - ‘리틀 포레스트’ & 제철식
방송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태진아가 만든 ‘우유콜라라면’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괴식으로 화제가 됐다. 괴식은 아이스크림에 라면 수프를 뿌려 먹는 등 기이한 식습관을 뜻하나 최근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창조한 맛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같은 기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건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도시에 살다 고향에 돌아온 혜원(김태리)이 제철식을 해 먹으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얘기가 담겨 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