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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영어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해 보실래요?”

등록 2018-04-04 20:00수정 2018-04-04 20:15

[ESC] 커버스토리

서울 구로동 아줌마 영어모임 ‘영글로리’
영어 연극 하며 놀았더니, 어느새 실력이 ‘쑥쑥’
소통·놀이 창구···활력 넘치는 주민들
최근 영어 앱 등 새로운 학습법 인기
구로동 아줌마 영어모임 ‘영글로리’ 회원들이 영어로 <해님과 달님> 연극을 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구로동 아줌마 영어모임 ‘영글로리’ 회원들이 영어로 <해님과 달님> 연극을 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영어’ 앞에선 좌절모드가 된다! 영어를 배워본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혼자서 듣고 읽고 쓰기를 꾸준히 해보고 심지어 문장을 통째로 외워보기도 하지만, 정작 외국인들 앞에선 말문부터 닫힌다. 영어울렁증, 영어공포증 탓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왜? 영어 초보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영어 학습 사이트나 영어 고수들은 말하지만 정작 와닿을 때는 많지 않다. 정말 탈출구는 없는 걸까?

“딩동 딩동.”

지난달 30일 오전 9시30분, 서울 구로동의 한 가정집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 밖에 서 있는 이들은 30~40대 아줌마들. “애들 어린이집, 학교 빨리 보내느라 혼났네!” 밝은 표정으로 거실로 들어선 이들의 손엔 영어 동화책과 노래책, 영어로 된 게임카드, 캐릭터 머리띠,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다.

“노는 데 필요해요! 책 읽고, 노래하고, 연극도 하고, 퀴즈도 풀 거거든요.” 성윤주(41)씨가 말했다. “오늘 영어 연극 공연에 꼭 필요한 소품이랍니다.” 조은영(40)씨가 옆에서 거든다. <해님과 달님> 역할극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들의 정체는? ‘영글로리’(young glory·젊은 구로) 회원들. 구로동에 사는 아줌마들이 주축이 된 영어공부 모임이다. 윤주씨와 은영씨 외에 주윤경(39), 최은영(38), 이승현(42), 임수미(38), 이성실(39)씨, 그리고 기자까지 8명이 회원이다.

나이, 직업, 취미가 다른 이들이 모일 수 있었던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라는 공통분모 덕분이다. 4년 전 1학년 학부모 모임을 함께한 것을 계기로 친해져 이후 ‘영어 스터디’로 모임의 성격을 확장했다. 미국인과 결혼해 6년간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윤주씨의 제안이 결정적이었다. 현재 영어 강사로 활동 중인 그는 이들의 든든한 영어 선생님이자 멘토다. 그는 “자녀들의 영어 교육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 ‘엄마가 모범을 보이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영어 동화책을 읽고 있는 ‘영글로리’ 회원들. 왼쪽부터 이성실, 최은영, 성윤주.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영어 동화책을 읽고 있는 ‘영글로리’ 회원들. 왼쪽부터 이성실, 최은영, 성윤주.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들의 영어 학습 키워드는 연극이다. 일주일에 한번 모여 초등생 수준의 영어로 된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른 다음 연기를 통해 ‘놀이로서의 영어’를 실천하는 방식이다. 초등생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고,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며 생긴 영어 공백기도 고려해서다. “‘너무 수준이 낮은 것 아냐’ 싶기도 했는데, 어린이 교재가 훨씬 더 나은 거 같아요. ‘하기 싫어’, ‘어렵다’는 마음 자체가 안 생기니까.”(최은영)

쉬운 교재 덕분일까. 이들은 한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영어 울렁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영어 동화책의 주인공이 되어 연기를 해보는 일이 즐겁단다. 조은영씨는 “못 이룬 배우의 꿈을 이룬 것 같아 행복하다”고 했다. 이승현씨는 “외국 여행을 가도 영어 한마디 못했는데,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주윤경씨는 지난달 외국인 친구 가족과 1박2일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영어로 대화하는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다 모였죠? 이제부터 연극 시작합니다!” “넵!!”

드디어 연극 시간, 오늘 주인공은 해와 달, 나그네다. 표정 연기가 돋보이는 이성실씨가 나그네 역을 맡고 키가 큰 주윤경씨는 해, 조은영씨는 달이 되어보기로 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나그네가 옷을 벗어던지는 장면이다. 갑자기 성실씨가 남방의 단추를 풀고 어깨 쪽으로 옷을 내렸다.

“아, 이츠 소 핫~ 핫~ 핫~~”(Ah, It’s so hot~ hot~ hot~~·오, 뜨거워 뜨거워)

“뭐야? 목소리가 왜 이렇게 느끼해? 더워서 막 벗어던져야 하는데, 이건 에로 버전이잖아?”(최은영)

“하하하. 우리가 하는데 에로 버전 되는 건 당연 수순 아님?”(이승현)

“내가 그 맛에 영어 공부 하는데.”(조은영)

조은영씨가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리슨 투 마이 하트비트 이츠 비팅 포 유 리슨 투 마이 하트비트 이츠 웨이팅 포 유”(Listen to my Heartbeat It’s beating for you Listen to my Heartbeat It’s waiting for you) 누군가 투피엠(2PM)의 히트곡 ‘하트비트’(heartbeat)를 불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춤 삼매경에 빠졌다. “미쳤어, 미쳤어.” “위 아 매드!”(We are mad·우리 미쳤어) 누군가 외쳤다. 그런데도 좀처럼 제어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 캔 테이크 오프 베터 댄 유!”(I can take off better than you·너보다 잘 벗을 수 있어)(조은영)

“플리즈 풋 온 유어 클로즈 어게인.”(Please put on your clothes again·옷 다시 입어줘)(이승현)

연극은 이미 엉망이 된 지 오래. 그럼에도 ‘영어 사용’ 규칙만큼은 철저히 지켜졌다. “우리 모임의 강점은 뭐든 에로 버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이성실) “에로 버전이면 어때? 재밌으면 그만이지!”(최은영)

웃고 떠드는 사이,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벌써?” 다들 아쉬운 표정이다. 윤주씨가 말했다. “영어 재밌죠? 연극으로 역할놀이 하니까, 지루할 틈 없죠?”

“넵!!! 물론입니다.”(모두)

‘영글로리’ 모임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연극의 대사를 통해 익히는 문장이다. 여행이나 외국인을 만났을 때, 활용하기 위함이다. 이들이 기회가 있을 때 한옥마을, 이태원, 연남동의 ‘연트럴파크’ 등에 나가 외국인을 상대로 무모한 짓(?)을 하는 이유다. 최은영씨는 “연극을 직접 해보니, 외국인 앞에서 짧은 문장으로 빨리 내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덧 3년차, 구성원들이 느끼는 모임의 만족도는 높다. 영어와 관련한 새로운 목표가 생긴 이도 있다. 이승현씨는 “방학을 이용해 외국에서 한달 살기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고 있다”고 전했다.

스케치북 속 한글 문장을 영어로 바꿔 말해야 하는 ‘스피드 게임’을 하고 있는 성윤주씨 모습.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스케치북 속 한글 문장을 영어로 바꿔 말해야 하는 ‘스피드 게임’을 하고 있는 성윤주씨 모습.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한글 문장을 영어로 바꿔 말하는 ‘스피드 게임’에 열중인 주윤경씨와 최은영씨.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한글 문장을 영어로 바꿔 말하는 ‘스피드 게임’에 열중인 주윤경씨와 최은영씨.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올해부터는 회원들의 호응에 힘입어 학습량도 절대적으로 늘렸다. 모임과 별개로 스스로 집에서 하는 소위 자기주도학습을 강화했다. 영어 앱 ‘리틀팍스’를 활용하는데 개인별로 매주 애니메이션 50개, 스스로 하는 영어 녹음 3개의 목표량을 채워야 한다. 단체 카톡방에 인증샷을 올리는데, 서로에게 자극제가 되고, ‘나도 빨리 해야지!’ 분발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당연히 벌칙(?)이 따른다. 밥을 사거나 차를 사야 한다.

‘리틀팍스’를 하면서 ‘아이들과 더불어 하는 영어 학습’이라는 ‘영글로리’의 목표도 구체적으로 달성되고 있다. 최은영씨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매일매일 ‘리틀팍스’ 학습량을 경쟁하는 사이가 되어 스스로 대견스럽다. 요즘 들어서는 아들의 진도를 몰래 체크하며, 경쟁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승현씨는 “아이들에게 하는 ‘영어 공부 해!’ 잔소리 자체가 없어졌다. 아이들이 알아서 영어 동화를 읽고, 영어 만화책을 보니 칭찬을 해줄 때가 더 많아졌다”며 웃었다.

기자가 이 모임에 들어간 지 6개월 남짓. 역시나 변화가 적지 않다. 초등학교 1학년, 4학년 두 딸과 함께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고, 영어 동요를 따라 부르는 일이 일상이 됐다. 그날그날 서로 보고 들은 동화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 아침에 아이들의 잠을 깨울 때 영어 동화나 영어 동요 시디(CD)를 틀어놓는 습관도 생겼다.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틀어 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영어 학습에 있어서도 재미와 즐거움이 우선이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외국어

다른 나라의 말. 국적이나 민족이 다른 사람끼리 소통할 때 필요한 수단. 한국에서는 입시나 스펙을 위한 도구로 변질돼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영어는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입지가 공고해 영어 제국주의로 인한 모국어 오염, 희소언어의 소멸 가능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언어의 본래 목적인 의사소통 기능을 회복한 외국어 배우기, 고전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한 외국어 배우기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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